배경 설명 미국이 세계 최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국’으로 떠오르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진 3월 초까지도 별다른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적인 인플루엔자와 비교해 대책이 필요 없다”라고 말해 미국이 초기 방역 대응에 실패한 원인 제공자로 꼽힌다. 역사학자인 맥스 부트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코로나19 부실 대응을 지적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관심 때문에 공중 보건에 심각한 혼란이 야기되고 보건 전문가들의 급박한 메시지가 부정당했다”며 “이는 진단 검사를 충분히 시행하고 보호 장비와 호흡기를 비축하지 못한 사태를 비롯해 관료 조직의 대혼란까지 불렀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대 교수인 로먼 프리드먼과 거노트 와그너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특히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을 확보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두 석학은 코로나19 대응에 필수적인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은 사회적 재화이며 이를 확보하기 위해 민간 부문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먼 프리드먼(Roman Frydman)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자본주의 사회 센터 설립, 미 뉴욕대 경제학 교수(왼쪽)거노트 와그너(Gernot Wagner) 미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 환경보호기금 수석 경제학자, 미 뉴욕대 기후경제학 교수(오른쪽)
로먼 프리드먼(Roman Frydman)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자본주의 사회 센터 설립, 미 뉴욕대 경제학 교수(왼쪽)
거노트 와그너(Gernot Wagner) 미 하버드대 정치경제학 박사, 환경보호기금 수석 경제학자, 미 뉴욕대 기후경제학 교수(오른쪽)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미국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하는 일은 쉽다. 부인(否認)과 늦장, 정치적 내홍 그리고 체계적 결함 탓에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는 10만 명을 넘었고 사회·경제적 위기가 깊어졌다. 3월 이후 실업급여를 신청한 미국인은 누적 기준 400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탓에 4명 중 1명꼴로 실직한 것이다. 현재 국가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많은 미국인은 하루빨리 ‘정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당은 코로나19 탓에 어려움을 겪는 실업자와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자고 주장했고, 공화당은 이에 반대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원인이 정치적 분열 때문만은 아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역시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재화를 민간 기업이 생산하도록 정부가 명령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국가가 ‘물자 전달’을 관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신발 생산 과정에서 모양과 치수까지 결정했던 소련식 중앙 계획경제의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 사유재 시장에서 국가는 간섭할 필요가 없다. 계획경제 체제에서 발생했던 인위적 결핍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도 정부는 특정 재화나 서비스 공급을 위해 직간접적 역할을 맡고 있다. 예를 들면 국방 서비스 같은 공공재는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 미국의 방산 물자 생산은 공공 부문에서 이뤄지지 않지만, 정부가 민간 부문에 방산 물자 생산을 주문한다. 전쟁권한법(WPA·War Powers Act)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줬다. 이 법을 본떠서 만든 ① 국방물자생산법(DPA·Defense Production Act)을 미국 정부가 발동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국 군 당국은 국방물자생산법 발동으로 민간에 매년 약 30만 건의 주문을 해왔고 이러한 관행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응에서 국방물자생산법 발동을 꺼렸다. 3M이 방역용 N95 마스크 생산을 우선순위에 두고 수출하지 못하게 하거나, 제너럴 모터스(GM)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지시하는 등 특정 경우에만 국방물자생산법을 적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물자생산법을 십분 활용하지 않았다. 3M과 GM에 한정해서만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했다.

국가가 부드럽게 명령하는 것이 막강한 권력을 더 잘 활용하는 방법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정부가 민간 부문에서 특정 재화를 생산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②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책의 하나로 구매 보증을 해줬다. 목표는 분명했다. 독일 기업에 의료 물자 생산을 직접 명령하는 대신 스스로 생산에 나서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을 가만히 둔다면 사회가 필요한 양만큼의 방역 및 의료 장비나 인공호흡기, 치료제가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백신 개발도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독일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다. 국방물자생산법에는 연방 구매 보증 조항이 있다. 이러한 권한을 발휘하지 않는 것은 되레 이념적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미국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의 데보라 브릭스(왼쪽) 박사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3월 5일(현지시각)미네소타주 메이플우드에 있는 3M 본사를 방문해 회사 임직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미국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의 데보라 브릭스(왼쪽) 박사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3월 5일(현지시각)미네소타주 메이플우드에 있는 3M 본사를 방문해 회사 임직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마스크, 인공호흡기, 백신은 사유재도 공공재도 아니다. 보라색 구두에 대한 한 개인의 선호도가 다른 이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떠한 외부 효과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유재인 신발과 다르다. 또한 ③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 예를 들면 공기와도 같을 수 없다. 마스크, 인공호흡기, 백신은 사회적 재화다. 사회적으로 혜택을 주기 때문에 정부가 적절한 공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재화 공급을 위해 정부는 때론 민간 부문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코로나19 대응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후 변화 대응에도 같은 원리가 작용한다. 민간 부문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체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기후 변화는 기업의 자원봉사나 자선활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의 강점이기도 한 민간 부문의 역동성을 극대화하려면 민간의 자본과 역량을 재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가 발휘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실기(失機)를 거듭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예상하거나 대비하지도 못했고 경제적 여파를 완화하는 데도 실패했다. 2조달러(약 250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 법안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긴급 재정 투입 사례이지만, 민간 부문을 동원할 인센티브는 없었다. 코로나19와 직접 맞서는 것보다 더 나은 경기 부양책이 없는데도 말이다.

성과를 내려면 정부 역할을 재고해야 한다. 소련식 계획경제는 오늘날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 역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공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민간 부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부만이 사회적 재화 확보를 보장할 수 있다.


Tip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 제정된 법으로 전시처럼 긴박한 상황에 대통령이 민간 기업에 국방, 에너지, 우주, 국토 안보를 지원하기 위해 주요 물자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8일(현지시각) 국방물자생산법 발동 계획을 밝혔지만, 이행을 미루다 3월 27일에야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했다. 그러는 동안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인공호흡기 확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신경전을 벌였고, 전직 국가 안보 당국자 100여 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방물자생산법의 발동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독일 연방 정부는 코로나19 관련 의료진 보호장비 구매를 위해 10억유로(약 1조3600억원),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1억4500만유로(약 1941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이에 산업계는 화답했다. BMW, 폴크스바겐 등 독일 굴지의 완성차 회사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병원용 인공호흡기와  마스크를 생산·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자동차제조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연방정부의) 요청에 대해 회원사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필요한 장비의 공급이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며 “지금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최우선 순위는 사람의 안전과 보호”라고 밝혔다.

공공재는 사유재와 반대로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라는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지닌 재화다. 즉 어떤 사람이 재화와 서비스에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에도 그 소비를 막을 수 없는 비배제성과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재화와 서비스를 동시에 소비할 수 있고 한 개인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감소시키지 않는 비경합성이 동시에 충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