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영국 출신으로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절망사(deaths of despair·絶望死)’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자살, 알코올 중독, 마약과 연관된 일종의 사회적 죽음을 절망사라고 정의했다. 20~64세 미국 백인 남성을 대학 졸업자(대졸자)와 고졸 이하로 나눠 1992년부터 2017년까지 사망 원인의 변화를 비교한 결과, 대졸자의 사망 원인에서 절망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이나 2017년이나 큰 차이가 없는 반면, 고졸자는 그 비중이 두 배 이상 치솟았다. 디턴 교수는 과거 매체와 인터뷰에서 “저소득층은 지나치게 비싼 의료비,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시장 때문에 고통받지만 제약사와 보험사,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한 기업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면서 “이는 개인 간 불평등 문제를 넘어서 사회 시스템 자체가 불공정해졌음을 방증한다”고 비판했다. 디턴 교수는 그의 아내 앤 케이스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와 공동 저술한 ‘절망사와 자본주의의 미래’를 올해 출간하기도 했다.
(왼쪽부터)앤 케이스(Anne Case) 프린스턴대 공공정책학과 박사, 코차렐리상 수상앵거스 디턴(Angus Deaton)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왼쪽부터)
앤 케이스(Anne Case) 프린스턴대 공공정책학과 박사, 코차렐리상 수상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훨씬 전, 미국에는 또 다른 걷잡을 수 없는 감염병이 있었다. 자살, 알코올 관련 간 질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을 이르는 소위 ‘절망사(deaths of despair·絶望死)’가 1990년대 중반부터 많아지기 시작했다. 1995년 연간 6만5000명이던 사망자는 2018년 15만8000명에 이르렀다. 코로나19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는 점에서 마치 감염병 같았다.

또 다른 감염병인 절망사로 인한 사망자 증가는 4년제 대학 학위가 없는 미국인에게 거의 전적으로 국한됐다. 학사 학위가 있는 이들의 사망률은 전반적으로 하락했지만, 저학력자의 사망률은 증가했다.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2014년부터 2017년 사이 감소했다. 1918년부터 1919년까지 발생한 스페인 독감 유행 이후 처음으로 기대 수명이 감소한 것이다. 현재 두 개의 감염병(절망사와 코로나19)이 동시에 유행하면서 기대수명은 다시 하락할 전망이다.

사망률 통계만큼이나 우울한 경제 데이터가 그 원인이다. 최근 ‘절망사와 자본주의의 미래’에 기술했듯, 학사 학위가 없는 미국 남성의 실질임금(물가 상승률 조정)은 50년 동안 감소했다. 같은 시기 이들과 비교해 대졸자의 소득 프리미엄은 80%까지나 올랐다. 저학력 미국인이 직업을 갖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남성 핵심 노동 연령층의 노동자 비중은 수십 년간,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2000년 이후 감소세를 보였다.

고학력 미국인은 소득뿐만 아니라 건강 측면에서도 저학력 미국인 대다수를 앞질렀다. 고통, 외로움, 장애는 학위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만연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의 전야제였다. 현재 이미 존재해온 불평등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새롭게 노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건강과 소득 격차 확대

역사적으로 유행병은 틀림없이 사회를 더욱 평등하게 만들었다. 14세기 유럽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을 죽인 흑사병이 대표적 예다. ① 흑사병은 노동력 부족을 야기했는데, 덕분에 노동자의 협상력이 향상됐다. 이후 19세기에는 콜레라가 ② 질병의 세균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처음엔 부유한 국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엔 나머지 국가에서 현대 사회의 장수가 보편화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전 세계적 생애주기 격차가 하나의 대통합을 이루는 계기였다.

그러나 미국은 두 세대에 걸쳐 국내에서 건강과 소득의 격차를 경험했고, 코로나19는 이미 존재하는 이런 거대한 불평등을 확대할 전망이다. 바이러스가 미치는 영향은 교육적 성취도에 따라 계층화한다. 교육을 더 많이 받은 집단일수록 집에서 일하고 돈을 벌 가능성이 크다. 의료 등 일선 분야의 고학력 노동자가 아니라면, 주식시장이 은퇴 자금의 가치를 그 어느 때보다 끌어올리는 것을 편안히 앉아서 관전할 수 있다.

반면 4년제 대학 학위가 없는 노동자의 3분의 2는 (노동 시장에서) 필수적이지 않아서 소득을 잃을 가능성이 있고, 필수적이어도 감염의 위험이 있다. 대졸자들은 건강과 부를 모두 가질 수 있지만, 저학력 노동자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절망사의 추세가 드러낸 소득과 수명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다만 저학력 백인이 첫 번째 감염병(절망사)으로 큰 피해를 본 반면, 아프리카계나 히스패닉계 미국인은 코로나19로 불균형적으로 과도하게 사망했다. 그 결과 통합되던 백인과 흑인의 사망률이 탈선했다.

인종 간 격차에는 거주 분리, 혼잡한 생활 환경, 통근 패턴을 포함한 많은 이유가 있다. 이런 요소가 뉴욕시에서는 특히 중요해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예컨대 뉴저지는 아프리카계나 히스패닉계 모두 코로나19 사망률이 불균형적으로 높지 않다.


자본 힘은 커지고 노동의 입지는 줄어들어

미국의 값비싼 의료 체계는 계속해서 팬데믹의 영향을 악화시킬 것이다. 올봄 일자리를 잃은 수천만 미국인 중 상당수가 고용주가 제공한 건강보험을 상실했고, 많은 사람이 대체 보장 제도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19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치료를 거부당하지 않았지만, 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 중 일부는 치료를 시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미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는 최소 11만3000명이고, 20만 명 이상이 입원했다. 평생 신용을 망칠 만한, 지불하기 어려울 정도(보험에 가입한 많은 사람도 포함)의 의료비가 유발됐다. 연방정부는 제약 회사에 백신 개발 비용으로 수십억달러의 공적 자금을 줬고, 로비스트의 공으로 가격에 조건을 붙이거나 특허에 공공 청구권을 부과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어온 오프라인 기업은 희생되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전자상거래 대기업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오랜 기간 불변의 상수라 여겨진 국내총생산(GDP)의 노동력 비중은 최근 몇 년간 감소했는데 상품과 노동 시장의 시장 지배력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만약 실업률이 앞으로 몇 년간 높게 유지된다면, 노동과 자본의 거래 조건은 후자(자본)에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흑사병에 현재를 비유하는 일은 유효하지 않다. 재앙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의 낙관론은 정당화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경제가 절망사를 촉발한다고 믿지 않는다. 분석 결과 절망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코로나19가 야기한 것 같은) 경제적 변동이 아니었다. 절망사는 미국의 실업률이 4.5%에서 10%로 증가했던 2008년 금융 위기와 대공황 이전에도 증가했고, 팬데믹 이전에 실업률이 3.5%로 떨어져도 계속 증가세를 보였다. 한때는 미국에서 자살과 실업 사이에 관계가 있었을지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럼에도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2020년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직장 생활 전반에서 더 낮은 소득 경로에 진입할 것이며, 이는 어쩌면 자살, 술,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죽음을 초래하는 절망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코로나19 이후 미국은 그 이전 미국과 동일할 가능성이 크다. 불평등과 기능 장애가 훨씬 더 심할 뿐이다.

사실, 경찰의 폭력이나 엄청나게 비싼 의료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구조적인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좋은 사회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잿더미에서 솟아나는 것이 언제나 불사조는 아닐 테니 말이다.


Tip

흑사병으로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소작농이 크게 줄었다. 노동력이 희소해지면서 실질임금이 크게 상승했고, 지대는 하락했다. 봉건 영주의 경제적 지위는 약화하고 농촌 노동자의 협상력과 이동성은 강화됐다.

콜레라 전파 초기에 의학자들은 유행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세균이 질병을 전파한다는 세균 이론과 오염된 물질이 나쁜 기운을 유발한다는 장기 이론이 경합을 벌였다. 로베르트 코흐가 콜레라균을 발견해 세균 이론이 정립됐다. 이는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근대적 공중보건 체계를 도입하는 계기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