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28년에 발표한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에세이에서 “한 세기 안에 기술적 진보가 일어나 아무도 돈을 벌 걱정을 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로 얻은 자유와 여가를 최대로 활용하는 풍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적어도 4배에서 8배까지 개선되고 주당 15시간의 노동만으로도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경제는 그의 예언보다 더 급속히 성장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00년까지 10배 이상 성장했다. 신흥국들은 그보다 훨씬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케인스의 예언이 빗나간 이유는 그가 경제 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성장의 과실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소득이 없거나 부족한 시민들에게 생활 지원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사회에서나 일정 수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기술 발달로 로봇이나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이 가속될 전망이어서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제공하자는 기본소득 논의가 점차 활성화하고 있다.

기본소득의 도입 목적은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주장하는 사람마다 기본소득 필요성의 논리적 근거는 차이가 있다. 미국 시카고 경제학파의 대표 격인 밀턴 프리드먼은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개념으로, 소득이 소득세 면세점(면세 기준) 이하인 주민에게 그 부족한 금액을 일정 비율로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다른 모든 사회 보장적 지원이나 심지어 최저임금 제도까지 폐지해 더 효율적인 사회 보장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모든 국민에게 일종의 최저소득을 보장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호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합법적 의무라고 주장해, 사회 보장적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정치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모든 미국인 남녀가 21세가 되는 달에 기본 최저소득을 지급하고, 재원은 토지 상속세를 거둬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제안한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의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는 최저소득’이다.


기본소득처럼 막대한 재정 수요가 예상되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목표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기본소득처럼 막대한 재정 수요가 예상되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목표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공공 서비스와 사회보험 확대가 더 효과적

요즘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여야 지도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사회 보장 지출비가 가장 적은 국가군에 속한다. 아직은 의료나 교육 등 공공 서비스와 사회보험 확대가 국민의 생활 안정에 더 필요하고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에도 더 기여할 수 있다. 기술 발달이 고용 역량의 절대적 감소를 야기해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해진 상황도 아니다.

무엇보다 막대한 재정 수요가 예상되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목표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며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속도는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다.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을 고려해 제도의 유지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사회 급여나 공공 서비스 중심의 기본적인 사회 보장을 현금 급여로 대체하자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기본소득의 도입은 성급한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