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세계 교역량이 급감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무용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WTO는 무역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세계 무역량은 지난해 2분기보다 27%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분기 세계 상품의 교역 가치가 지난해 2분기보다 29.3% 줄어들며 국제 교역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WTO는 최근 ‘중국 편향성’에 대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비판을 받으며 공정성을 의심받았다. 특히 무역 분쟁 해결의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 기구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임 위원 임명 동의 거부로 2019년 말부터 마비됐다. 여기에 세계 경제 불안감이 극대화한 상태에서 미국의 압력에 로베르토 아제베도 사무총장이 지난 5월 중도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리더십 공백까지 발생했다. 이번 칼럼은 WTO 사무총장 후보에 등록한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세계백신면역연합(GAM) 이사장의 출사표이자, WTO를 대신하는 항변의 글이다. 그는 국제 무역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본다. 다자간 무역협정의 순기능을 강조하며 “글로벌 경기 회복을 위해 빈사 상태의 WTO를 소생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응고지 오콘조-이웰라(Ngozi Okonjo-Iweala)나이지리아 외무부 장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사무총장, 나이지리아 재무부 장관
응고지 오콘조-이웰라(Ngozi Okonjo-Iweala)
나이지리아 외무부 장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사무총장, 나이지리아 재무부 장관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 이래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 많은 사람이 WTO를 시대에 뒤떨어진 규칙서를 지닌 무능한 경찰로 여긴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존재 의의를 위해 WTO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는 회원국도 많다.

최근 몇 달간 WTO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회원국 간 무역 분쟁 해결의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 기구는 2019년 12월 상소 위원 선임 관련 불협화음이 일면서 ① 사실상 기능이 마비됐다. 로베르토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은 임기 1년을 남긴 지난 5월 ② “8월 말 사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제베도 사무총장의 후임자가 누구든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WTO는 1995년 출범 이후 국제 무역의 새 규범을 만들기 위한 다자간 무역 협상을 단 한 건도 완료한 적이 없으며, 회원국의 상호이익 창출 기회를 놓쳤다. 2011년 11월에 시작한 ③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은 애초 2005년 1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회원국은 DDA 관련 절차를 계속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어떤 회원국은 상황이 급변하면서 더 이상의 절차가 무의미하다고 보지만, 다른 회원국은 추가적 협상을 요구한다.

WTO는 2017년 2월 ④ 무역원활화협정(TFA) 발효와 2015년 ⑤ 농업 수출보조금 폐지 결정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주목할 만한 협정을 발효한 적이 없다. 그러는 동안 몇몇 회원국은 디지털 경제, 투자, 경쟁, 환경, 기후 등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무역협정을 맺었다. WTO 규칙서의 현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DDA 협상조차 앞서 언급한 긴급한 문제 중 극히 일부분만 다룬다. 그리고 현재 WTO의 규칙 중 일부는 쉽사리 무시되고, 회원국에 부여한 권리와 의무 간 균형이 흔들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일부 회원국은 의약품이나 식료품 부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수출 규제 조치를 했다.

그렇지만 WTO 체제를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오히려 WTO는 1948년에 발효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성공에서 비롯됐다. GATT로 시작된 규칙에 기반을 둔 다자간 무역협정은 관세장벽을 낮추며 지난 70년간 글로벌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많은 국가의 생활 수준이 향상됐다. 게다가 무역 상대국을 대할 때 무력을 쓰기보다 협상을 통해 입장 차를 좁히면서 규칙에 기반한 국제 무역 체제는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에도 도움이 됐다.

그렇지만 WTO에 리부트(reboot·재시동)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회원국이 많다. 선진국은 자국이 너무 오랫동안 무역 자유화의 부담을 떠안았고, 개발도상국이 더 많은 의무를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경제를 키우고 현대화하려는 노력을 WTO가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사진 블룸버그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사진 블룸버그

무역은 제로섬 게임(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0’이 되는 게임)이 아니다. 1948년 이후 세계 무역과 지역 무역 규칙의 진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WTO와 회원국이 직면한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진전을 이루고 상호 유익한 합의에 도달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는 WTO가 신뢰를 회복하고 규칙 제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모든 회원국은 이에 동참해야 한다. 새로운 협상은 회원국의 다양한 경제 발전 수준을 고려하고,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공평한 합의에 도달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또한, 투명성 강화, 효과적 분쟁 조정 등도 중요하다.

빈사 상태의 WTO는 어느 회원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효성 있는 규칙 기반의 국제 무역 체제는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 WTO를 소생시키지 못하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전 세계적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려는 각국의 노력은 빛이 바랠 것이다.

WTO는 회원국의 경제와 국민의 삶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맡고 있다. 비록 현재는 조직의 건강이 악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세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회원국의 정치적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유연성이라는 해독제가 필요하다.


Tip

2019년 7월 WTO에 제소돼 있던 미·중 상계관세 분쟁에서 중국이 승소했다. 이에 미국 행정부는 WTO 상소 기구 위원 임명을 거부했다. 2019년 12월 WTO 상소 기구 위원 3명 중 2명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WTO는 무역 분쟁 심의를 할 수 없게 됐다. WTO 상소 기구 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제소된 무역 분쟁을 심의하기 위해서는 3명의 위원이 필요하지만, 미 행정부는 계속해서 위원 임명을 거부해왔다. 상소 기구 위원은 164개 회원국의 인준을 받아야 임명되며 임기는 4년, 재선임되면 8년까지 할 수 있다.

아제베도 WTO 사무총장이 지난 5월 임기를 1년 남기고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화상으로 진행된 비공식 대표단 회의에서 8월 31일 자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아제베도 사무총장은 “최근 코로나19 봉쇄 조치와 무릎 수술로 평소보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면서 “가족과 상의한 끝에 개인적인 사유로 (사임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건강과 관련이 없다”라며 “또한, 어떠한 정치적 기회를 추구하지도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제4차 각료회의에서 합의돼 시작된 다자간 무역 협상이다. 1986년 9월부터 1993년 12월까지 진행돼 WTO를 탄생시켰던 우루과이라운드(UR)의 뒤를 이어 새로운 세계 무역 질서를 만들기 위해 추진됐다. 농업과 비농산물, 서비스, 지식재산권 등의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 무역 자유화를 목표로 한다. 

수·출입 절차를 담당하는 창구를 일원화하거나 전자화하는 등의 개선 노력을 통해 통관 업무가 빨리 이뤄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 다자간 협정이다. 2013년 12월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타결됐고 2014년 11월 WTO 일반이사회에서 의정서가 채택됐다. 이후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이 의정서 수락을 위한 국내 절차를 완료하면서 2017년 2월 정식 발효됐다. WTO 설립과 DDA 협상 개시 이후 타결된 최초의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2015년 12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10차 WTO 각료회의에서 농업 분야 수출 경쟁 분야가 타결됐다. 농업 분야의 공정한 수출 경쟁을 위해 농업 보조금 제도 폐지에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WTO 회원국은 2018년까지 농업 분야에 지원하고 있던 수출 보조금을 철폐하고, 선진국은 즉각적으로 농업 수출 지원을 중단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