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첫 공식 모델 로드스터가 등장한 2000년대 후반. 여전히 많은 사람은 전기차의 미래를 믿지 않았다. 초고가의 스포츠카에서나 꿈꿀 수 있는 강력한 토크와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분명히 매력적이었지만, 1억원이 넘는 높은 가격은 장점을 상쇄시켰다. 배터리 충전을 위한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였다.
2020년이 된 지금, 상황이 바뀌었다. 시장에는 전기차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 최대 완성차 시장인 유럽, 북미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 정부는 정책 어젠다로 전기차로의 전환을 내세우며 기업에 대한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며 독려하고 있다.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던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시간. 전기차 시장의 개화를 이끈 기업, 테슬라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시장이 테슬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배경에는 단순히 이들이 전기차 시장에 남들보다 먼저 진입했다는 점을 넘어서는 더 설득력 있는 근거가 있다.
테슬라는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평균 판매가에 차량을 팔지만, 판매량 측면에선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018년 12%, 2019년 19%의 점유율을 기록한 테슬라는 올해 1분기에는 무려 2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더 주목할 점은 테슬라가 이 대부분의 판매량을 단 세 종인 모델 S, 모델 X, 모델 3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업계는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와 그들의 생산시설인 기가팩토리로 만들어가고 있는 이야기를 규모의 경제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5년 후 테슬라가 계획하는 생산 규모는 무려 연 150만 대에 이른다. 테슬라에 대한 시장 수요가 공급을 훌쩍 초과하는 지금, 더 이상 시장은 테슬라가 공표한 150만 대라는 숫자를 의심하지 않는다. 미국 텍사스에 건설 계획 중인 테라팩토리라는 이름에서 추가 설비 확장과 규모의 경제 달성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규모의 경제 달성과 함께 테슬라의 비전을 높게 평가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기술력이다. 파워트레인(동력 계통)과 엔지니어링 역량이라는 작은 가능성에서 출발한 테슬라의 비전은 전기차 생산과 관련한 기술을 계속해 쌓아나가고 있고, 그들의 기술 역량에 대한 이야기에 방점을 찍을 기술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바로 업계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는 자율 주행이다.
테슬라 오토파일럿의 핵심은 데이터를 활용해 스스로 학습하는 도조 시스템이다. 100만 대가 넘는 테슬라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데이터를 활용해 스스로 학습하는 도조 시스템의 무한한 확장성은 기술 측면에서 테슬라의 미래 비전을 더 높이 평가하게 한다. 도로에는 계속해 더 많은 테슬라가 등장할 것이고 테슬라 오토파일럿의 진화는 그 속도를 더해 갈 것이다. 경쟁사보다 더 완벽한 테슬라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 우위. 이제 테슬라의 비전은 작은 가능성이 아닌 명백한 당위성 위에 세워지고 있다.
어느새 전기차 점유율 1위, 전기차 업체 시가 총액 1위 기업이 된 테슬라는 또 한 번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배터리 사업 내재화에 대한 계획, 프로젝트 로드러너에 대한 이야기다.
테슬라의 배터리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제프 단 캐나다 댈하우지대 교수는 지난해 기존 배터리보다 수명이 두 배 긴 배터리 제조가 가능한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시기를 맞춰 테슬라는 배터리 기술 확보를 위한 추가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배터리 고속 생산 기술이 있는 하이바시스템과 맥스웰테크놀로지가 그 주인공이다. 맥스웰테크놀로지는 추가 공정을 대폭 줄여 배터리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배터리 양극 제조기술을 보유했다. M&A의 대상이 되는 기업과 그 기술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는 제프 단 교수의 연구 성과와 최적의 시너지를 내는 기술이자 생산 효율을 제고할 수 있는 기술이다.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와 때를 맞춰 이뤄진 M&A. 이제 테슬라 내부적으로 배터리 내재화라는 비전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9월 테슬라 주주총회에 있을 이벤트의 이름이 ‘배터리데이’라는 점도 이 같은 견해를 뒷받침한다. 파나소닉 독자 공급 구조를 깨고 CATL과 LG화학을 추가 배터리 공급선으로 확보한 테슬라는 배터리 내재화라는 세 번째 단계로 향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사도 더 큰 목표 향해야
아무나 꿀 수 없는 꿈을 꾸고 결국은 이를 실현시키는 기업,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는 테슬라의 행보는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의 배터리 기업들이 조금씩 주춤하고 있는 사이 한국 기업이 약진하고 있다. 특히 LG화학은 배터리 공급을 맡은 테슬라 모델 3의 판매 증가와 함께 2020년 1분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다음 이야기에 대한 청사진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수성을 넘어서는 더 높은 목표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테슬라를 넘어 폴크스바겐그룹을 비롯한 벤츠, BMW 등 기성 완성차 기업들이 더욱 가열하게 전기차로의 전환을 시작하는 2020년. 추가적인 수주와 점유율 확보가 국내 배터리 기업이 좇아야 할 유일한 목표가 돼서는 곤란하다.
완성차 기업, 반도체 기업들과 손을 잡고 함께 고민해보는 것도 좋다. 자율주행을 넘어 자율비행, 무인배달을 통한 신물류 시스템 구축 등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목표는 수없이 많다.
우리에게도 달나라 탐사를 꿈꾸는 자신감, 좀 더 커다란 꿈을 좇을 수 있는 담대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