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35년 전 개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티는 타임머신 발명자인 브라운 박사와 실험을 하던 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30년 전(1955년)으로 시간 여행을 가게 된다. 그는 현재(1985년)로 돌아오기 위해 스포츠카 형태의 타임머신을 재작동시켜야 하는데 마침 원료가 바닥 난 상황에 부닥친다. 물론 원료인 플루토늄을 쉽게 구할 리 없다. 유일한 방법은 번개의 에너지를 직접 이용하는 것.

마티는 우연히 시계탑에 벼락이 떨어질 정확한 시점을 알고 있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번개가 칠 타이밍에 해당 장소에  타임머신 작동 조건인 시속 88마일을 넘겨 도착해 현재로 무사히 돌아왔다. 모두가 행복하게 이야기가 끝나는가 했다. 하지만, 미래의 브라운 박사는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의 마티에게 다가가 “너의 아이들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고 말한다. 곧 타임머신은 바퀴를 접으며 비행을 시작하고 “후속편에 계속”이라는 문구와 함께 영화는 끝난다. 1980년대 최고의 흥행작이자 시간 여행과 관련한 창작물의 영원히 깨지지 않을 문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시간 여행과 관련한 대부분의 창작물 이야기는 대동소이하다. 현재에 뭔가 문제가 생긴다. 이를 고치기 위해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한다. 문제 자체는 어찌어찌 해결하지만, 그러다 보니 다른 뭔가가 바뀌어 버린다. 그 변화가 좋은 것이면 ‘백 투 더 퓨처’ 같은 희극이 되고, 나쁜 것이면 ‘12 몽키즈’ 같은 비극이 된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도 하나고, 우리가 만들어 갈 미래도 하나지만, 과거의 작은 선택이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이다. 평행 우주나 타임 패러독스 같은 어려운 물리적 개념을 평범한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과거의 선택이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거시 세계는 복잡계다. 작은 변화가 미래에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나비효과’가 있다. 만약 실제로 시간 여행이 가능해 누군가 과거로 간다면, 그 자체만으로 미래는 엄청나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quantum) 세계에도 나비효과는 있을까. 양자 세계에서는 시간을 과거로 돌려 지엽적인 사안이 바뀌었더라도 그것이 현재의 전체 시스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양자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부 단위인 양자는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서로 굉장히 강하게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의 빈 얀 박사와 니콜라이 시니트신 박사는 양자 세계에도 나비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이들은 IBM이 만든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몇 개의 큐비트(Qubits·Quantum bits)로 이뤄진 양자 시스템을 구성했다.

일반적인 컴퓨터는 최소 처리 단위가 비트(bit)로 0이나 1, 둘 중 하나의 값만 가질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최소 구성 단위인 큐비트가 0과 1의 값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 컴퓨터와 동일하지만, 중첩(superposition)을 통해 둘 중 하나의 값만 갖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두 값을 모두 가질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작은 단위로 더 많은 값을 처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IBM의 양자컴퓨터 ‘IBM Q’. 사진 IBM
IBM의 양자컴퓨터 ‘IBM Q’. 사진 IBM

얀 박사와 시니트신 박사는 준비된 양자

시스템 내에서 스크램블링(quantum scrambling) 과정을 통해 큐비트가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것과 유사한 과정이다. 어느 정도 과거로 거슬러 간 이후 그 시점에서 이들은 특정 큐비트를 선택한 후 그 값을 삭제했다. ‘백 투 더 퓨처’에서 과거 시점의 마티 어머니가 마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자 마티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양자 밖 세상에서는 당연히 해당 큐비트의 값이 원래 값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얀 박사와 시니트신 박사의 실험에서는 시간을 돌려 현재 시점으로 오면 해당 큐비트의 정보가 대부분(정확히는 98.3%만큼) 복원됐다. 복원의 정도는 시스템이 클수록, 더 먼 과거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강해졌다. 결국 양자 세계에서는 나비효과가 존재하지 않음을, 그리고 세계가 자체적으로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양자 세계는 기차를 타든 못 타든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 같은 모양이다. 이 결과는 올해 7월 ‘피직스 리뷰 레터스(Physics Review Letters)’에 발표됐다.

사실 이론적으로 양자 세계에서는 나비효과가 있을 수 없음이 예견돼 왔다. 바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 때문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양자들이 서로 아주 강하게 얽혀 있고, 따라서 인위적으로 지엽적인 변화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은 이를 다시 복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불과 10여 년 전 ‘네이처(Nature)’에 양자 세계에서 나비효과가 관측됐다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연구 결과는 양자컴퓨터의 실용화에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발견이다.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기술로는 양자를 100%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 양자 시스템을 구성하는 큐비트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 0도(-273.15℃)에 근접하는 극저온 환경을 구성하고 초전도체를 활용하는 등 현존하는 최고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아직은 외부 영향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부 영향으로 양자컴퓨터 내에 작은 오류가 지속적으로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양자 세계에 나비효과가 있다면 이런 작은 오류는 점차 큰 오류로 바뀌어 갈 것이며, 따라서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될 때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번 실험 결과는 양자 시스템이 강건함(robustness)을 가지고 있고, 외부 영향 때문에 발생한 작은 오류를 자연스럽게 복구할 수 있는 특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머지않은 미래, 그러니까 우리가 죽기 전에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될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이다.


양자컴 실용화되면 고차원 AI 현실화 가능

양자컴퓨터의 실용화가 가까워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상상하는 고차원 인공지능(AI)의 현실화는 컴퓨터의 처리 속도가 현존하는 일반 컴퓨터 수준을 넘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양자컴퓨터 실용화 단계로 넘어가면 가능성이 커진다. IBM에서 인공지능 기반 로보 어드바이저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는 파올로 시로니(Paolo Sironi)도 금융의 4차 산업혁명, 즉 진정한 의미의 맞춤형 자산 관리 서비스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돼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고성능 인공지능 구현을 위해서는 어려운 최적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전통적인 컴퓨터로는 수억 년의 시간 동안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낼 가능성이 있다. 핵융합이 신의 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양자컴퓨터는 신의 두뇌를 창조해내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 개봉 30년을 맞이했던 2015년, 사람들은 ‘백 투 더 퓨처’가 그린 미래의 모습 중 몇 가지나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해본 바 있다. 자동으로 신발 끈을 조여주는 나이키 운동화나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 실험적이긴 하지만 호버보드까지, 놀랍게도 아주 많은 것이 현실화됐다. 결국 상상력이 미래를 만드는 힘이 아닐까. 줄어드는 인구, 약화되는 국제 경쟁력, 어려워지는 국제 정세 등 당장은 희망적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 다음 세대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것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에게도 아주 밝은 미래가 주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