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전 세계 빈곤 퇴치와 개발도상국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하는 세계은행(WB)그룹과 국제금융공사(IFC) 이사회는 3월 17일(현지시각) 각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진단·대응 지원을 위해 긴급 융자 지원 패키지를 140억달러(약 16조5300억원) 규모로 증액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에 앞서 WB그룹은 같은 달 3일 120억달러의 융자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20억달러를 추가한 것이다. WB그룹의 산하 기관인 IFC는 140억달러 규모 융자 패키지의 일환으로 가용 융자를 기존의 60억달러에서 80억달러로 증액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부진으로 타격을 입은 민간 기업과 그 직원을 지원하는 게 목표다. 당시 필립 르 우에루 IFC 최고경영자(CEO)는 “개발도상국의 민간 부문이 신속하게 경기를 되살릴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르 우에루 CEO는 이번 칼럼에서 민간 부문을 회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을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기업 파산 절차 재정비, 민간 사업자의 체납 처분 유예, 전략적인 산업 육성 정책 시행 등이다. 그러면서 각국 정책 입안자에게 “민간 부문이 도태하지 않고 기업이 성장세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창의력을 발휘하라”고 강조한다.
필립 르 우에루(Philippe Le Houerou)미국 컬럼비아대 MBA, 프랑스 파리정치대 철학 박사, 전 세계은행(WB) 부회장, 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부회장, 현 국제금융공사(IFC) 최고경영자
필립 르 우에루(Philippe Le Houerou)
미국 컬럼비아대 MBA, 프랑스 파리정치대 철학 박사, 전 세계은행(WB) 부회장, 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부회장, 현 국제금융공사(IFC) 최고경영자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일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처럼 보인다. ① IFC는 올해 신흥국의 민간 투자와 외국인 직접 투자는 지난해보다 각각 7000억달러(약 826조6200억원), 2500억달러(약 295조23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려면, 2023년이 지나야 할 것으로 IFC는 예상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번 위기가 수십 년간에 걸쳐 어렵사리 얻은 개발 이익을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가난한 취약 계층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WB는 올해 ② 세계 빈곤율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반등하고, 최대 1억 명이 극도의 빈곤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기업이 불확실한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고용, 장기 성장, 글로벌 개발 성과의 회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현 상황에서 시장을 재정비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팬데믹은 우리가 일하고, 소비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기 때문에 많은 기업은 사업 모델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 전반을 재편성하는 한편 혁신적인 역량을 갖춘 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경제를 안정시키고 회생 가능한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부실하거나 쓸모없기 때문에 사라져야 할 기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 정·재계 리더들은 전략적 비전과 실용주의를 발휘할 때다.

각국 정부가 경제 회복을 가속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게임의 규칙’을 새로운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장기화하면 신흥국은 수많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할 여건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저소득 국가에서 기업 파산 절차는 평균적으로 3년 이상 걸리며, 이는 글로벌 평균보다 반년이나 더 길다.

법정 밖에서 이뤄지는 비공식 절차나 간소화한 재판 절차 등을 통해 정부는 회생 가능한 기업에 폭풍우를 헤쳐나갈 기회를 줄 수 있고 법적 절차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개발도상국은 록다운(lock down·이동 제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의 청산을 막기 위해 기업 부실의 기준을 높이는 등 기업 구조조정 규정을 바꿀 수 있다.


미국 워싱턴 DC의 세계은행(WB) 본부. WB는 6월 8일 세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5.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직전 전망(2.5%)보다 7.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워싱턴 DC의 세계은행(WB) 본부. WB는 6월 8일 세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5.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직전 전망(2.5%)보다 7.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사진 블룸버그

둘째는 정부가 이번 위기 대응에서 ③ ‘해를 주지 않는(Do No Harm)’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공공 부문은 가능한 한 민간 사업자의 납기를 연장하거나 체납 처분을 유예해야 한다. 이는 대차대조표상 피해를 줄이고, 회생 가능한 기업의 도산을 방지할 뿐 아니라 경기 회복에 방해가 되는 파급 효과를 막을 수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공공 부문 체납액은 국내총생산(GDP)의 3.3%를 차지하는데, 이를 해소하면 대규모 부양책과 맞먹는 효과를 낼 것이다. 또한, 의사 결정자들은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을 하는 ‘좀비’ 기업을 지원하는 데 공적 자금을 투입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강력한 회복 효과를 위해서는 민간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의 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각국 정부는 지출과 관련해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특정 부문과 산업은 재정비하고, 다른 부문과 산업은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가령 정부와 시장이 저탄소 에너지 생산을 확대하려는데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산업에 계속해서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은 내일의 기업을 만들고 육성해야 할 때다. 친환경적 가치 사슬, 탄력적인 관광 산업, 양성 친화적 업무 환경 등 선택할 수 있는 핵심 분야가 많다.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 격차가 큰 나라에서는 모바일 머니,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을 활용하면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될 디지털화를 앞당길 수 있다. 이러한 나라의 정부가 투자를 유치하려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IFC가 개발도상국의 민간 투자와 민간 부문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민간 투자를 확대하려면 사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고,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을 위해 정책 및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팬데믹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개혁이 시급하다.

개발을 담당하는 각국 실무자는 투자 기회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 자본 확충, 스타트업과 유망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그리고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으로 투자자를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민관 협력 확대 등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게 많은 산업과 일자리에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위기 이후에 강력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희망은 아직 남아 있다. 정책 입안자는 민간 부문이 도태하지 않고, 기업이 다시 성장세를 탈 수 있도록 모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Tip

1956년 7월 유엔(UN)의 특별기관으로 개발도상국의 민간 부문 발전과 민간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촉진해 세계은행(WB)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기구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국제개발협회(IDA) 등과 더불어 WB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IBRD 가맹국은 IFC에 가입할 수 있다. IFC는 민간 기업이 충분한 민간 자본을 얻기 힘들 때 자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아시아·중남미·동유럽 등의 저개발 지역에 대한 원조를 중점 사업으로 하고 있다.

WB는 6월 8일(이하 현지시각) 세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5.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직전 전망(2.5%)보다 7.7%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경제 양상이 극명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세일라 파자르바시오글루 WB 부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감염병 대유행만으로 나타난 첫 경기 침체”라며 “추후 추가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WB는 하방 리스크가 큰 시나리오상으로는 세계 경제 성장률이 -8%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봤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특수가 끝난 1945~46년 이후 최악의 침체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산가보다 빈곤층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WB는 전 세계 7000만~1억 명이 코로나19가 낳은 이번 침체로 극도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루 1.9달러 미만, 한국 돈으로 2000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사실상 연명하는 이들이다. 파자르바시오글루 부총재는 “가난과 실업을 막으려면 가능한 한 빠르게 경제를 회복할 방안을 찾기 위해 단합해야 한다”고 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의료진에게 첫 번째로 강조하는 철칙으로, 신기술이 등장하고 이에 대한 규제안을 내놓을 때 신기술의 발전에 해를 입히면 안 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2018년 2월 6일 미국 상원이 개최한 암호화폐 청문회에서 당시 미국상품선물위원장인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는 “미국 정부가 인터넷의 발전에 대해 ‘해를 주지 않는(Do No Harm)’ 정책을 취해 온 것은 의문의 여지 없이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정부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 사후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를 통해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인터넷 역기능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서비스를 개발해 인터넷 공룡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