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미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서 재정 지출을 급격히 늘리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연방정부의 2020년 회계연도 재정적자를 3조7000억달러(약 4391조9000억원)로 추산했다. CBO는 3월 전망 때는 올해 재정적자를 1조730억달러(약 1273조6510억원)로 예상했는데, 불과 한 달여 만에 재정적자 전망치를 대폭 높인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도 대폭 상향 조정했다. 3월 전망 땐 4.9%로 예상했지만, 4월 전망에선 17.9%로 수정했다. 블룸버그는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두 배에 달한다”고 전했다. CBO의 4월 전망은 미 의회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3~4월 네 차례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한 걸 반영한 결과다. 1~4차 경기부양책 규모는 총 2조8000억달러(약 3323조6000억원)에 달했다. 미 의회가 추가 부양책을 내놓는다면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더 악화할 수 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저자로 유명한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이번 칼럼에서 미국 부채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코로나19 사태가 미국의 파산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50년, 100년물 국채 발행이다. 그는 “초장기 국채를 발행해 후손에게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며 “오늘날과 같이 낮은 금리를 오래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하버드대 로스쿨,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 타이거 펀드매니저, 미국 대통령 경제담당 비서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저자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
하버드대 로스쿨,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사, 타이거 펀드매니저, 미국 대통령 경제담당 비서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저자

오늘날 미국은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무일푼이 됐다.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던 1930년대 수준으로 경제 수준이 곤두박질칠 것을 우려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미 의회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빚어진 ① ‘대중단(Great Cessation)’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거대한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돈을 쏟아부었다. 이로써 올해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8% 수준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곧 10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B-29 폭격기를 일본에 보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이후 이런 수치는 처음이다.

끝내 코로나19를 몰아낸 미국의 미래가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디스토피아와 다를 것이라고 가정하면, 다가오는 재정절벽과 국가파산 위기는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119%까지 치솟았지만, 국가파산은 면했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GDP 대비 부채 비율은 4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비용의 40%를 세금에서, 60%를 국채 발행으로 조달했다. 당시 연준이 1년 만기 국채 금리를 연 0.375%로 유지하면서 ② 미국 국채를 산 사람이 얻은 이득은 거의 없었다. 10년물 국채 금리도 연 2%에 불과했다. 많은 미국인이 애국심으로 액면가격이 25달러 이하였던 국채를 사들였다. 연준 직원들도 경쟁이라도 하듯 국채 구매 행렬에 합류했다. 1943년 연준 직원들이 8만7000달러어치의 국채를 사들이면서, 미 육군이 105㎜ 곡사포와 머스탱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애국심이 아니더라도 미국인에게 국채를 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1980년대 전까지 연방법에 따라 은행은 고객에게 높은 금리를 제공할 수 없었다. 수익률이 높은 해외 자산에 투자했다간 FBI가 집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 주식시장은 투자자들에게 열려있었지만, 거래 수수료가 비쌌다. 당시 미국 가구 중 2%만 주식을 보유했다. 주식 투자는 뉴욕의 최상류층인 파크 애비뉴 사람들이나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을 잊은 기억 상실증 환자들만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가정 대부분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의 가계 저축이 늘었는데, 채권 증가분이 컸다. 그러나 미 재무부 채권, 즉 미국 국채는 수익성이 낮고 만기가 길었다. 이러한 기념비적인 ‘전쟁 부채’가 줄어든 데는 세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첫째는 미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약 3.75%로, 미 재무부는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많은 미국 제조업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상대가 없었다. 영국, 독일, 일본의 공장은 전쟁 속에 잿더미로 변했고 산업화에 뒤처진 중국 공장에서 자동차와 전자기기를 생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둘째는 미국 정부가 전후 가격 통제에서 손을 떼면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1946년 3월부터 1947년 3월까지 물가가 20%나 뛰었다. 1941년부터 1951년까지 물가가 76%나 올랐지만, 국채 가격은 그만큼 오르지 않으면서 실질적인 국가 채무 부담이 크게 줄었다.

셋째는 미국이 장기간에 걸쳐 차입금리 상승을 억제하면서 수혜를 봤다는 것이다. 1947년 당시 평균 채무 기간은 오늘날의 두 배 수준인 10년 이상이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요인 때문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 집권 말기인 1961년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50%까지 떨어졌다.

이를 통해 오늘날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미 재무부는 ③ 50년,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해 후손에게 숨통을 틔워 줘야 하며, 오늘날과 같이 낮은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50년, 100년 후 정부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이미 초장기 채권을 성공적으로 발행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993년 디즈니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을 때 시장은 싹 쓸어 담았다. 미국 철도회사 노퍽서던이 2010년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을 때도 시장의 환영을 받았다. 코카콜라, IBM, 포드를 비롯해 수십 개의 회사가 100년짜리 빚을 냈다.

많은 교육기관이 팬데믹 탓에 재정 상황이 악화했고 펜실베이니아대, 오하이오주립대, 예일대 등이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다. 멕시코가 2010년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했고 최근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벨기에가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했다.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환 기간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은 은퇴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다음번에 논의하기로 하자.

끝으로 부채를 줄이기 위해 물가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어떨까. 나는 이에 반대한다. 투자자들은 더는 1940년대에 있을 법한 포로 같은 청중과 다르다. ④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은 사전에 평가절하 계획을 찾아내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가치 하락을 이끌 것이다. 부채 가격을 올리려는 시도는 금과 가상화폐 투자 붐으로 이어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전쟁과 달리 폭격과 조약 그리고 타임스스퀘어에서의 기념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빚은 시한폭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책적 관성과 어리석음을 극복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파산으로 끝날 수 있다.


Tip

코로나19로 인한 중단 현상을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빗댄 표현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재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 재무부 명의로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만기에 따라 단기 국채(T-bill), 중기 국채(T-note), 장기 국채(T-bond)로 구분된다. T-bill은 1·3·6개월물로 발행되는데, 국채인 데다 만기가 짧아 가장 안전한 투자자산으로 분류된다. T-note는 만기가 1년 이상 10년 이하(2·3·5·7·10년)로 액면가는 1000달러에서 100만달러까지 다양하다. 만기가 가장 긴 T-bond는 10년 이상 장기채로 만기가 10년에서 30년에 이른다.

블룸버그는 2019년 8월 미 재무부가 50년 만기 혹은 100년 만기의 ‘초장기’ 국채 발행에 대한 시장 반응을 살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가 초장기 국채 발행을 시사한 것은 당시 초장기 국채 발행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서다. 경기침체 우려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에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미 국채 금리가 연일 하락했고, 한 달 전 연준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정책 금리를 인하했다. 국채 발행자 입장에서 만기가 길어지면 안정적인 자금 조달과 만기 구조 다양화를 통한 채무 관리가 가능해진다. 
 
인플레이션이나 정부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채권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국채를 대량 매도해 채권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자를 말한다. 1984년 경제학자 에드워드 야데니가 만든 용어다.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와 아일랜드 등이 자경단의 표적이 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