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 한국외국어대 졸업, 전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한국외국어대 졸업, 전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삼성전자와 TSMC.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10나노 이후의 최신 공정을 제공할 수 있는 단 두 곳의 이름. 이들이 펼치고 있는 최신 공정 싸움에 대한 이야기는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은 꼭 한번쯤 들여다봐야 할 핵심 요소가 됐다. 더 작은 공간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높은 성능을 구현하고, 전력 효율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최신 공정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이 최신 공정 활용에 미온적인 기업이 있다. 바로 GPU(그래픽을 처리하는 프로세서) 시장의 전통 강자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그들의 경쟁자인 AMD가 차선단 7나노 공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제품 세대 간 유의미한 성능 향상을 이뤄낸 지난 몇 년 동안 10나노 밖의 공정에 머물러 있었다. 가장 최신의 그래픽카드인 RTX 2000시리즈도 여전히 12나노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러던 엔비디아에 변화가 찾아왔다. 엔비디아도 올해 말에 출시될 새로운 지포스 RTX 3000시리즈부터 드디어 10나노 아래의 선단 공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강력해진 지포스 RTX 3000시리즈

선단 공정에서 생산된 새로운 엔비디아의 지포스 RTX 3000시리즈는 그 어느 세대보다 강력한 진보를 이뤄냈다.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제품을 두고 성능을 이야기하는 것을 나무랄 것도 없이, 새로운 지포스는 GPU 성능의 핵심이 되는 각각의 코어(셰이더․RT․텐서)를 전작에 비해 두 배씩 품고 등장했고 메모리는 현재 가장 빠른 메모리인 GDDR6에 마이크론과 협업을 통해 개발한 추가적인 기술을 적용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RTX 3000시리즈를 발표하며 엔비디아는 이전 세대 라인업보다 최대 두 배가량의 성능 향상이 있음을 밝혔다. 최근 신제품을 출시한 경쟁 기업들이 세대 간 30~50% 수준의 성능 개선을 보여준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RTX 3000시리즈가 보여줄 성능 향상은 각사가 이야기하는 성능의 척도가 상이함을 염두에 두더라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생산 공정의 열위 속에서도 가장 앞선 설계 능력을 바탕으로 성능 우위를 지켜냈던 엔비디아는 이번에는 공정 전환에 의한 수혜를 더해 이례적인 성능 향상을 이뤄낸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엔비디아는 최선단 공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첫 번째로는 앞선 설계 역량을 통해 공정 열위 속에서도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고, 두 번째는 이미 수율이 확보된 차선단 공정을 이용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나노 이상의 선단 공정을 택한 올해에도 이러한 엔비디아의 운영 기조는 변함이 없다. 엔비디아는 또 한번 첨단 EUV(극자외선) 노광 기술이 적용된 7나노 공정이 아닌 안정적이고 생산비가 저렴한 8나노 공정을 택했다.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19’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 2019’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TSMC의 증설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엔비디아가 RTX 3000시리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반드시 ‘가장 앞선’ 공정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차선단 공정을 통해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퀄컴, AMD 등 최선단 공정 활용을 최우선 방향으로 잡는 다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파운드리는 팹리스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 생산)의 모습과는 대조적인데, 이러한 엔비디아의 행보는 TSMC와 삼성전자가 벌이고 있는 파운드리 선단 공정 경쟁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찾아올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우선 최선단 공정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 팹리스의 생산 전략이 수율이 확보되고 생산비 부담이 적은 차선단 공정과 점차 이원화할 수 있음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현재 업계 최고 수준의 공정을 제공할 수 있는 TSMC의 최선단 공정 생산 용량은 애플과 퀄컴 그리고 유력 팹리스의 물량을 생산하기에 벅차고 12나노와 14나노 공정에서 생산하고 있는 중소 팹리스 기업들의 수주 물량도 하나씩 선단 공정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자인 삼성전자는 멀찍이 3나노 이후의 싸움을 준비하며 계속해서 다음 공정으로의 전환을 부추기고 있다.

물량은 선단 공정으로 몰리고 그 어느 때보다 노드 전환이 빠른 최근의 파운드리 시장. 삼성전자에 대한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5나노, 3나노를 넘어 2나노까지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TSMC의 모습에 결국 그들의 설비 증설에는 한계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된다. 여러 개의 공정을 한꺼번에 증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기회 엿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팹리스에 파운드리 이원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기술 경쟁력을 증명할 최상위 라인업은 생산비 부담을 지더라도 최선단 파운드리를 이용하고 매스 타깃 제품들은 다른 파운드리 공정에서 생산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파운드리 이원화 전략을 통해 팹리스 기업들은 더욱 안정적인 생산 구조를 확보하고, 가격 협상 시에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이러한 파운드리 이원화 전략상에서 삼성전자는 전략의 완성을 위한 필수 요소이자 전략의 효과를 배가시켜줄 이름이다. 다음 세대로의 공정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최근의 시장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는 특정 공정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낮은 가격에 충분한 성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인데, 차선단 공정이 되는 삼성전자 8나노에서 생산된 RTX 3000시리즈를 통해 엔비디아가 보여준 압도적인 성능은 이와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 준다.

최근 일부 외신은 TSMC의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가까이 늘어난 점이나, 50%에 달하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근거로 파운드리 선단공정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TSMC에 완벽히 패배한 것처럼 설명한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상황을 두고 볼 일이다.

10나노 이후의 선단 공정 싸움이 지금처럼 TSMC-삼성전자 이원 체제로 유지된다면, 또 계속해서 TSMC의 공정을 삼성전자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추격할 수 있다면, 삼성전자에 충분한 기회가 남아 있다.

장지훈 가젯서울 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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