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세계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던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7%, -2.5%다. 개발도상국 및 신흥국 중에 중국 정도만 플러스 성장(1.0%)이 점쳐졌고, 러시아(-6.0%), 브라질(-8.0%), 인도(-3.2%) 등은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ADB는 최근 발표한 연례 경제 성장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아시아·태평양 46개 개발도상국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보다 0.7% 감소하면서 1960년대 초 이후 최초로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가운데 많은 개발도상국 역시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셀레스탱 몽가 세계은행 선임 경제고문은 일부 개발도상국이 추진했던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전략이 확산할 것을 우려한다. 그는 산업화 단계를 건너뛰고 서비스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주장의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셀레스탱 몽가(Célestin Monga)세계은행(WB) 선임 경제고문, 전 아프리카 개발 그룹 부사장 겸 최고 이코노미스트, 전 유엔산업개발기구 전무이사
셀레스탱 몽가(Célestin Monga)
세계은행(WB) 선임 경제고문, 전 아프리카 개발 그룹 부사장 겸 최고 이코노미스트, 전 유엔산업개발기구 전무이사

최근 수십여 년간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맡았던 개발도상국에 산업화 대신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전략은 매력적일 수 있다. 기술 발달로 인해 마치 상품처럼 서비스를 생산·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개발도상국이 제조업 단계를 건너뛰고 농업에서 ① ‘성장의 에스컬레이터’인 서비스 산업으로 직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많다.

서비스 산업이 개발도상국을 위한 ‘성배’라는 믿음은 2000년 이후, 특히 2011년 상품보다 서비스 교역이 더 빠르게 늘었다는 경험적 연구에 기인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붕괴는 이 믿음을 더욱더 강화했다.

더욱이 5세대 이동통신(5G),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기술 발달은 서비스 산업을 세분화하고, 고임금·고비용의 기업 활동을 아웃소싱(외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이러한 경향은 소위 ② ‘3차 언번들링(unbundling·분리)’을 일으켰는데, 이를 통해 이전에는 거래되지 않았던 서비스까지 거래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전 세계 교역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이가 디지털화가 가능하고, 관세 및 기타 물류 장벽에 덜 민감한 서비스 산업을 경제 성장과 고용 확대의 동력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이 주도하는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한 환상에 불과하다.

첫째는 지난 10년간 세계 총생산 대비 무역 비중이 떨어졌지만, 이는 조금 더 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세계 무역량은 1800년 이후 일시적으로 감소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였다. 무역과 세계화는 세상을 더욱더 부유하게 했고, 번영과 평화로 향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둘째는 서비스 산업이 아닌 제조업이 여전히 세계 성장의 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혁신은 물리적 생산 시스템과 디지털 생산 시스템의 경계를 허물고, 농업·제조업·서비스업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법을 바꾸고 있다. 가령, 정보통신기술(ICT)의 등장으로 기존의 농부들은 농업 생산 및 서비스 부문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에도 산업화는 경제 발전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디지털 혁명은 혁신을 가속화하고 제조업 생산에서 부가가치를 확대하고 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에 따르면 1991~2018년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는 연평균 3.1% 증가, 세계 총생산의 연평균 성장률(2.8%)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제조업의 세계 총생산 기여도는 1990년 15.2%에서 2018년 16.4%로 커졌다.

셋째는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서비스 산업이 GDP의 75%, 고용의 80%를 담당하더라도 서비스 산업의 생산 가치는 제조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시장성이 높은 서비스 분야에서 선진국의 고용 비중이 높은 것은 산업 고도화 및 구조 전환 측면에서 당연한 수순이며, 숙련된 노동력과 금융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선진국의 비교 우위를 시사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발도상국의 비교 우위는 저렴한 노동력이며, 기술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선진국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서비스 산업 주도 성장 전략을 모방해선 안 된다. 볼리비아, 부룬디, 부탄 등이 단순히 육지로 둘러싸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위스식 서비스 산업 주도 성장을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점점 더 많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화의 고용 창출 효과는 과거에 비해 작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③ 자동화는 기존의 일자리를 많이 없애겠지만, 또한 더 숙련된 노동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산업을 활성화할 것이다. 글로벌 가치사슬 전반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면 제조업에서 로봇 도입은 일자리를 만든다. 게다가 기술 발달과 인공지능(AI) 확산이 실업을 부추기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공공 정책이 필요하다.

넷째는 개발도상국이 서비스 산업을 성장의 원천으로 삼는 경우 산업화 전략이 실패한 데 따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숙련도가 높은 노동력이 없어도 되는 서비스 산업은 극도의 빈곤 상태를 벗어나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의 해답은 아니다.

확실히 ICT, 금융 중개, 보험, 과학, 기술, 의료 서비스 등 시장성이 높은 서비스는 국가 간 임금 차이가 크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통합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이 인적 자본 기반을 개선할 때만 가능한 일인데, 여기에는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보틱스, AI, 3차원(3D) 프린팅, 데이터 분석 등 디지털 생산 기술의 등장은 원격 의료, 텔레로보틱스(telerobotics·원격 로봇 제어) 등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도로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 교육 시스템으로는 그러한 노동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러한 제약 조건을 고려하면, 인적 자본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는 주장은 더 심각한 빈곤을 초래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의 산업화는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위한 주요 수단이다. 생산성 성장세를 지속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역량을 쌓아야 한다. 오늘날의 기술 수준은 후발 국가도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한다. 요약하자면, 개발도상국은 미래 번영을 위해 산업화를 버리라는 주장을 버려야 한다. 고급 단계의 서비스 산업은 기다릴 수 있고 기다려야 한다.


Tip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은 제조업을 발전시키기보다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제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니 로드릭 미 하버드대 교수는 개발도상국에서 제조업 비중이 커지지 않는 현상, 즉 ‘조기 탈산업화(premature deindustrialization)’를 경고한다.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생산성 향상이 빠르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는 제조업을 육성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가속하는 패턴을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분업 구조가 약화하면서 개발도상국이 제조업을 통해 성장을 도모할 가능성은 작아지고 있으며, 따라서 개발도상국의 저성장이 고착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2000년대 들어 정보통신기술(ICT) 혁명과 모바일 기기 보급으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해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금융, 유통 관련 서비스 산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1차 언번들링은 생산과 소비가 지역적으로 분리된 산업혁명 시기, 2차 언번들링은 생산 공정이 개별 지역으로 분리된 1980년대를 의미한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17년에 발표한 ‘없어지는 일자리와 생겨나는 일자리’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로봇과 자동화의 영향으로 오는 2030년 전 세계에서 최대 8억 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현재 세계 노동력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특히 기계 운영자, 패스트푸드 종사자, 비영업 부서 직원이 자동화가 빠르게 정착할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