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대학 진학률이 낮은 미국에서 대학의 위기론은 낯선 주장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런 위기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감염 환자 확산으로 대학 캠퍼스는 폐쇄됐다. 미국의 대부분 대학이 이번 학기에 대면 수업을 재개하겠다고 예고했지만, 그마저도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신 무료 온라인 강의 플랫폼 ‘무크(MOOC)’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유일한 지성의 요람으로 여겨지던 대학의 존재 의미가 희석되는 것이다. 일리안 미호브 인시아드 학장은 교육의 관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학의 역할론이 무엇인지 다뤘다.
일리안 미호브(Ilian Mihov)인시아드 학장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호프만 글로벌 기업사회연구소(Hoffmann Global Institute for Business and Society) 학술 디렉터
일리안 미호브(Ilian Mihov)
인시아드 학장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호프만 글로벌 기업사회연구소(Hoffmann Global Institute for Business and Society) 학술 디렉터

대학이 학생, 직원 교직원에게 캠퍼스를 개방할지 여부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논쟁이 격렬하다. 이미 미국 노터데임대, 노스캐롤라이나대, 미시간주립대가 캠퍼스 내 코로나19 감염 사례 급증으로 이번 학기에도 대면 수업을 연기했다. ① 동시에 크리스티나 팍슨 브라운대 총장을 필두로 반대 측에선 캠퍼스가 계속 폐쇄된다면 학생과 대학이 직면할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취약계층이 원격 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육의 관점에서 이 모든 논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온라인 교육이 안전한 상황에서 캠퍼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까. 대학이 온라인 교육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이외에 다른 근거는 없을까. 실제 물리적 교육 공간이 필요한 간호학과나 화학과 학생의 수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고등교육의 미래에 대면 교육이 존재하기는 할 것인가.

수많은 교육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글로벌 경영대학의 학장으로서 고등교육이 과거에 수없이 많은 기술 혁신을 받아들여 왔다는 점을 안다. 그중 가장 큰 혁신은 15세기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다. 이 혁신적인 발명은 고등교육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발전시켰다. 계산기,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또한 마찬가지의 역할을 했다.

고등교육은 과거 기술 혁신을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교육에 적응하고 더욱 발전할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한 교육 기관들은 새로운 기술의 도움으로 더욱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수 세대에 걸쳐 익숙해진 고등교육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어떻게 바꿔야 할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고등교육의 배경을 잠시 짚어보도록 하겠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고등교육 모델은 원활하게 작동했다. 수직적 학습(하향식 교육)과 수평적 학습(사회 교육)이라는 두 가지 상호보완적 교육 방식에 균형을 유지한 덕분이다.

수직적 학습은 강의실이나 교수실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학생들이 전문가의 말을 받아 적거나 함께 토론하는 방식을 말한다. 사실상 교수나 전문가가 대부분의 대화를 주도하는 공간이 수직적 학습 공간과도 같다. 일종의 공식적인 형태의 교육이다.

반면 수평적 학습은 대개 학생들 사이에서 이뤄진다. 교육자가 그룹 과제 등으로 인위적으로 수평적 학습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수업 이후 이동하는 동안이나 학생 식당에서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도 한다. 수평적 학습은 흔히 비공식적이고,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공식 일정과는 무관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학이 집중할 영역은 학생들 간의 자발적인 수평적 학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수직적 교육은 온라인상에서 이뤄져도 충분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일은 캠퍼스에서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이뤄진다. 사진 인시아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학이 집중할 영역은 학생들 간의 자발적인 수평적 학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수직적 교육은 온라인상에서 이뤄져도 충분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일은 캠퍼스에서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 이뤄진다. 사진 인시아드

온라인은 수직·수평 교육의 통합 도구

수직적 학습은 미리 계획할 수 있고 어느 수준까진 정형화할 수 있다. 덕분에 수직적 학습은 온라인 교육의 문맥으로 치환하기 수월하다. 새로운 현실을 고려하면, 수직적 학습은 계속해서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백신 개발 이전까진 빽빽한 강의실과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대면 수업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온라인 수업에 단점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수는 대면 수업에서 훨씬 쉽게 강의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학생이 집중하고 있는지, 지루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교수가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다.

② ‘줌 피로감(Zoom fatigue)’이라는 새로운 증상도 생겨나고 있다. 온라인 강의와 관련된 크고 작은 문제와 수일, 수 주간 씨름하는 동안 교수들의 에너지가 고갈될 수도 있다. 학생들 역시 온라인 수업에는 실제 교실에서 느끼는 친밀감과 상호작용이 결여된다고 불평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수행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대면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비교한 결과 학생들의 학습량이 온라인 수업에서 적다고 한다.

다만 적응 기간이 지나면 온라인 교육은 그들에게 제2의 천성으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온라인 수업의 부가 기능에 익숙해지면서 전통적인 교실 환경에선 부족했던 기술적 역량이나 자유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예컨대 대형 강의에선 학생을 소그룹으로 나누고 다시 대강의실로 부르는 수업방식은 쉽지 않다. 그러나 줌에서는 쉽게 가상 소그룹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소그룹 활동이 활성화하면, 학생들은 긴 시간 수동적으로만 강의를 듣지 않게 된다. 이는 소통이 부족한 온라인 수업의 단점을 보완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즉, 디지털 도구는 수평적 교육과 수직적 교육의 통합을 실현하는 매개체다.


수평 학습 기회 극대화하는 ‘확장형 모델’로 고등교육 재구성해야

그러나 활기찬 캠퍼스가 존재하지 않으면, 자발적 수평적 교육은 사라질 것이다. 캠퍼스는 학생들 간 우연한 상호작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물리적 플랫폼이다. 수평적 교육은 강제될 수 없는 것으로, 사회적인 교류가 활발한 공간에서 더 수월하게 발생한다.

연구가들은 캠퍼스가 사라지면 학생들에게 엄청난 손실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2018년에 진행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수업 시간에 필기하지 않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만으로 다른 학생을 직접 가르친 학생들의 1주일 후 지식은, 수업 시간에 필기했지만 다른 학생을 가르쳐보지 않은 학생들의 지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는 학생들이 서로를 가르치면서 공식적인 수업을 보완할 때, 전반적으로 더 많은 양을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상호 교육의 장인 캠퍼스가 없다면 이런 귀중한 기회가 사라질 것이다.

필자는 대안적인 시나리오가 있다고 믿는다. 캠퍼스 활동과 온라인 교육을 결합해 전통 교육 모델을 발전시키는 ‘확장형 모델’이다. 온라인 도구가 계속 생겨나면서 대학은 강화할 것이다. 대학이 이 도구들을 활용해 사회 교육을 위한 적합한 환경을 만든다면 말이다. 현재 변화의 물결은 혼란이 아니다.  이런 듀얼 시스템에서는 수평적 학습의 기회가 더욱 부각된다.

학교들이 확장형 학습 모델을 선택하면 캠퍼스의 미래는 덜 구조화한 교육으로 선회할 것이다. 이런 미래의 캠퍼스를 거니노라면, 다음 수업에 가려고 서두르는 사람보다 열정적인 토론에 오랜 시간 몰입하는 집단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캠퍼스는 교육이 이뤄지는 유일한 공간이 아닌 역동적인 허브로 거듭난다. 팍슨 총장이 언급했던 취약계층 학생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적인 캠퍼스의 분위기가 ‘애플 스토어’와 비슷해질 수도 있다. 즉, 학생들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자 모이고, 집에서 수업에 임하기 전에 사회적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대학교육은 학생 서로 간에, 혹은 전문가로부터 지식을 배우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명성을 유지할 것이다. 대학이 변화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대학은 더욱 경쟁력 있고, 연결성이 높아지고, 민첩해질 것이다. 이는 미래의 교육 기관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Tip

크리스티나 팍슨 브라운대 총장은 4월 26일 뉴욕타임스에 ‘대학 캠퍼스는 가을에 재개방해야 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라는 기고 글을 냈다. 9월에도 캠퍼스를 폐쇄할 경우 대학의 수익이 불안정하다는 점, 미국 경제에 해가 된다는 점 등을 들어 캠퍼스 개방을 주장했다.

영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과 ‘피로(Fatigue)’의 합성어. 줌을 활용하면서 심리적·기술적 이유로 이용자가 피로감을 호소하는 증상을 의미한다. 화상회의 중에 사용자마다 지연 속도가 달라 대화가 끊기거나, 화면에 나오는 자신을 보고 싶지 않으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현상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