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지난 칼럼에서 국민연금은 750조원의 천문학적인 기금을 쌓아놓고 있으나 실제로 갚아야 하는 돈, 즉 연금충당부채(이하 충당부채)가 1500조원을 훌쩍 넘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충당부채를 국가채무에 포함하면 국가채무비율은 40%가 아닌 100%에 육박하게 된다. 더 무서운 사실은 기금의 증가 속도보다 충당부채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추정이지만, 2040년쯤에는 국민연금의 기금은 2000조원가량 되고, 충당부채는 5000조원 가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국민연금제도는 지속 불가능하고, 따라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바다. 단적인 예로 올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장에서도 어김없이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과 개혁의 필요성에 관한 지적이 나왔다. 문제는 지난 수년간 국감장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온 주제였으나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장 개혁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집단적인 착각 혹은 암묵적인 방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복잡한 수식이나 법률적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모든 가입자가 은퇴 후 약속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지속 가능성이다. 공적연금의 재정 방식은 적립식과 부과식으로 구분된다. 이 중 적립식, 즉 내가 낸 돈을 국가가 굴려서 은퇴 후에 돌려주는 방식이라면 항구적인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 투자 실패나 전용으로 기금을 날리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구구조가 악화되거나 심지어 국가가 망하는 경우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부과식, 즉 뒷세대가 앞세대에게 바로 연금을 지급하는 형태라면 뒷세대의 지급 능력에 따라서 지속 가능성이 결정된다. 안타깝게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2060년 전후로 우리나라 인구구조는 최악일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의 수보다 은퇴한 사람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9%만 내고 있는 보험료가 2060년에는 최소 30%까지는 올라가야 현세대가 약속받은 연금을 겨우 받을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적립식과 부과식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다. 국민연금이 적립식이 돼야 할지 부과식이 돼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는 없다. 그저 관성적으로 2060년 즈음에 기금이 고갈되니 그때 부과식으로 전환하면 될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문제는 부과식 전환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자살’이라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악화되는 인구구조는 뒷세대가 앞세대를 부양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냉혹한 현실은 올해, 늦어도 앞으로 2~3년 안에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국민연금의 파탄은 확정적이란 것이다.

국민연금의 수입은 기본적으로 보험료 납부액과 기금 운용 수익으로 이루어진다. 덜 내고 더 받는 것이 문제이니 보험료를 올리고, 기금 운용을 잘해 수익률을 높이면 된다. 또한 국가도 재정을 투입할 여지가 있다.

다만 보험료를 하루아침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실적인 상한은 5년에 1% 정도다.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공짜가 아니다. 수익은 위험에 비례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기금 운용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큰 투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제까지 국민연금은 국제적인 폭락장에서도 거의 손실을 보지 않았지만,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만 투자하면 연간 투자 손실이 50%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올릴 수 있는 투자수익은 한계가 있다. 사회적으로 국민연금에 용인되는 수준의 투자 위험을 고려하면 추계 대비 연 최대 0.5% 정도의 초과수익을 내는 것이 한계일 것이라 판단한다.

2015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그 당시 국민연금 기금은 약 500조원가량이 쌓여 있었다. 2013년에 실시된 국민연금 제3차 재정추계 결과 2060년이 되면 기금이 고갈된다는 결과가 나왔기에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이 처음으로 큰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또한 공무원연금 개혁과 맞물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기구가 설치됐고, 이를 기반으로 진지한 논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속 가능성을 위한 의미 있는 변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그 시점에 제대로 된 개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국가 재정 투입도, 초과 운용 수익도 없이 보험료만으로 향후 100년간 완전 적립재정을 달성하려면 14.29%까지 보험료가 올라야 했다. 국가 재정 100조원을 향후 30년간 분할해 투입하면 13.67%, 공격적인 투자로 기금 운용 수익률을 0.5% 증대시키면 12.68%까지만 보험료를 올리면 됐다. 만약 국가 재정 300조원과 공격적인 투자가 동시에 적용됐다면 원보험료율 9%에서 2%도 채 안 되는 보험료 상승만이 필요했다. 2015년에 개혁이 실시됐다면, 큰 부담 없이 준항구적인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골든타임, 무의미한 논쟁으로 허비”

하지만 우리는 골든타임을 무의미한 논쟁으로 허비해버렸고, 2020년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5년 만에 기금은 1.5배로 성장했고, 충당부채는 그보다 훨씬 많이 늘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올해 개혁이 실시된다면 어떨까. 우선 국가 재정 투입이나 운용 방식의 변화가 없다면 완전 적립식 달성은 불가능하다. 보험료 상승으로 늘어나는 기금보다 이미 쌓여있는 부채의 상승분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 100조원이 투입돼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공격적인 투자와 함께 국가 재정이 투입된다면 20% 전후까지 보험료율을 올림으로써 적립식 달성이 가능하다. 5년을 더 기다린다면 남은 가능성마저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2015년과 2020년의 차이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연금은 사회적으로 큰 부담 없는 수준의 개혁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쌓인 재정 불균형은 지난 5년 사이 임계점에 이르렀고, 2020년 현재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급변점)에 도달한 것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가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었던 당사자들이 이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8년 시행된 국민연금 제4차 재정 추계에 필자도 위원으로 참여했고, 이 칼럼에 담긴 내용을 이미 상세하게 보고서로 남겼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연금의 특성상 변화를 금방 이끌어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5년간의 골든타임을 허비했고, 이제 더 이상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의미 있는 개혁이 이뤄져야만 한다. 국민연금이라는 거함이 침몰하기까지는 앞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침몰이 확정되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