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숙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안명숙
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청약 저축통장을 매달 10만원씩 꼬박 부으며 납입금이 2800만원에 육박하도록 지금까지 한 번도 집을 마련하지 않았던 김조선(가명·50세)씨. 2년 전 1.5룸 오피스텔에서 신혼살림을 꾸리다가 최근 아이를 낳고 아파트 반전세로 옮긴 이경제(가명·32세)씨. 대기업에 다니며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집값이 상승하면서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는지’ 물어오던 단골이다.

이들은 그간 아파트를 사기 위해선 대출받아야 하는 자금이 너무 많아 내 집 장만을 미루고 있었다. 김조선씨는 청약저축 통장을 청약예금으로 전환해 서울에 청약하면 가점 68점이라 당첨 가능하다. 하지만 입지가 좋은 곳은 전용 60㎡ 규모 분양가가 10억원이 넘어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경제씨는 청약통장은 가입했으나 가점이 너무 낮고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소득 기준 제한으로 청약이 불가능해 사실상 청약통장을 장롱 속에 넣어두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달라졌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입지가 우수한 서울을 포함한 인근 택지지구에서 저렴한 아파트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의 관심사는 기존 아파트 매입이 아닌, 입지가 좋고 가격 경쟁력이 조금이라도 우수한 곳을 골라 청약하는 것이다.


뜨거운 청약 열기…과천도 하남도 흥행

무수히 많은 김조선씨와 이경제씨가 가세하면서 청약 시장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과천지식정보타운에서 동시 분양한 3개 단지의 1순위 청약에 48만여 명이 몰려 최고 경쟁률은 1812 대 1을 기록했고 세 단지 특별공급 청약에도 각각 3만 명이 넘는 청약자가 몰렸다.

청약은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 공급하는 민영주택 기준을 적용받아 면적별로 30%는 과천시 2년 이상 거주자(해당 지역), 20%는 경기도 2년 이상 거주자(기타 경기), 50%는 서울·인천과 경기 2년 미만 거주자(기타 지역)로 나눠 받았다. 전용면적 85㎡ 이하는 가점제가 100% 적용되며 85㎡ 초과분은 가점제 50%, 추첨제 50%다.

100% 가점제 물량만 있는 과천푸르지오오르투스의 전용 84㎡B는 1812.5 대 1을 기록해 가장 높았다. 지난 8월 분양한 DMC SK뷰아이파크포레 전용 102㎡의 경쟁률(1976.8 대 1)에는 못 미치지만 이례적으로 높은 경쟁률이다. 과천푸르지오어울림라비엔오와 과천르센토데시앙은 추첨제 물량인 전용 99㎡A의 평균 경쟁률이 각각 521.8 대 1과 744.2 대 1이었다.

3개 단지는 대규모 택지개발지구에 공급하는 민영주택에 해당해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됨에 따라 10년의 전매 제한 기간이 부여돼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요는 접근이 제한된다. 그러나 평균 분양가가 3.3㎡당 2400만원 안팎으로, 전용면적 84㎡ 분양가 8억원 기준 당첨 시 시세 차익이 8억~1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청약 열기는 과천지식정보타운뿐만이 아니다. 11월 초 분양한 하남 감일지구 ‘감일푸르지오마크베르’의 특별공급 청약에 3만 명 가량 몰렸다. 10월 3일 한국감정원 청약홈에 따르면 이날 180가구(기관 추천 32가구 제외)를 모집하는 특별공급 청약에 2만7608명이 접수했다. 특히 가점을 따지지 않는 추첨제 물량으로 관심을 모았던 ‘생애 최초 특별공급’은 배정된 49가구에 1만5426명이 청약을 넣었다. 최고 경쟁률은 526.33 대 1로, 84㎡B 기타 경기에서 나왔다. 6가구만 배정됐는데 3158명이 청약을 넣은 셈이다. 최근 소득 문턱이 낮아진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66명을 모집하는데 9441명이 넣어 성황을 이뤘다. 하남 감일푸르지오마크베르 분양가는 3.3㎡당 1636만원이라 전용 85㎥ 기준 5억4000만원 기준으로 예상 차익은 7억~8억원 선이었다. 전매 제한 기간은 8년이다.


과천지식정보타운 3개 단지 1순위 청약에 약 48만 명이 몰렸다. 집값이 오르는데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는 낮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시세 차익 규모가 더욱 커진 탓이다. 사진 연합뉴스
과천지식정보타운 3개 단지 1순위 청약에 약 48만 명이 몰렸다. 집값이 오르는데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는 낮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시세 차익 규모가 더욱 커진 탓이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아파트 매입에서 청약으로 눈 돌린 실수요자

무수히 많은 김조선씨와 이경제씨는 사실상 서울 아파트 ‘영끌’로 대변됐던 수요자 중 하나다. 이들이 과다하게 오른 기존 서울 아파트 매입에서 청약으로 눈을 돌리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눈에 띄게 둔화하고 거래도 크게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영향이 있으나 강력한 정부 규제에 대한 부담과 내년부터 공급될 3기 신도시 등의 완화된 사전청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기존 아파트 매매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내년에는 정부가 예고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으로 청약 시장이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밝힌 사전청약 물량을 보면 △하남 교산 3600가구 △고양 창릉 4100가구 △남양주 왕숙 8900가구 등 3기 신도시 물량이 2만2000여 가구에 달한다. 2022년에는 서울의 가장 인기 지역인 용산 정비창에서 3000가구 사전청약을 실시할 예정이다. 향후 서울에서 나오는 사전청약 물량은 1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서울 분양에 갈증이 난 무주택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전망이다.

특히 지난 9월 특별공급 관련 소득 기준 등이 크게 완화되고 물량이 늘면서 무주택자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은 70%가 우선공급으로, 나머지 30%가 일반공급으로 공급된다. 공공주택 특별법 적용 국민주택의 일반공급 소득 기준은 130%(맞벌이 140%)로 완화된다. 완화된 일반공급 물량은 소득, 자녀 수, 청약 저축 납입 횟수 등에 따른 점수가 높은 순으로 선정하고 있는 기존의 입주자 선정 방식을 보완해 추첨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신혼희망타운의 경우 내년부터 소득 요건이 130%(맞벌이 140%)로 단일화된다. 민영주택과 공공주택 특별법 미적용 국민주택은 소득이 많은 맞벌이 신혼부부에게도 청약 기회를 주기 위해 소득 요건이 160%까지 완화된다.

생애 최초 특별공급의 소득 요건도 완화된다. 국민주택(공공주택 특별법 적용)은 우선공급이 100% 이하, 일반공급 130% 이하다. 민영주택과 공공주택 특별법이 적용되지 않는 국민주택은 우선공급 130%, 일반공급은 160% 이하까지 완화된다. 생애 최초 특별공급이란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기회로, 신청을 위해서는 주택 구입 이력이 한 번도 없어야 한다. 또 △1순위에 해당하는 무주택가구구성원 △혼인 중이거나 미혼 자녀가 있는 자 △5년 이상 소득세를 납부한 자 △월평균 소득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그동안 아파트값 상승을 지켜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청약을 포기한 ‘청포자’들이 수도권 아파트 청약으로 눈을 돌리면서 내년 아파트값 향방에 눈길이 쏠린다. 정부의 추정대로라면 신혼부부의 92%가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해당하는데, 무주택 신혼부부들이 ‘영끌’로 서울 아파트 매입에 나서는 추세가 사그라들면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집값 불안 요소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매물 쏟아지지는 않아…이어지는 눈치 보기 장세

또한 기준 시가 현실화를 통해 보유세 압박이 가중되면서 기존 주택 보유자들은 늘어날 세 부담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국 매도 매물이 늘면서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정부가 기대하는 시나리오로 가게 되지만 아직은 매도 매물이 쏟아지지 않는 눈치 보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단기간에 매도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현행 양도소득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지금까지 이어온 정책 프레임을 깨야 하는 정부의 정책적 부담이 커서 쉽지 않아 보인다. 항상 싸움에서 지는 편은 마음이 급한 쪽이다. 이번 게임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