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채프먼대학교(Chapman University)에서는 주기적으로 사람들의 공포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다. 2016년에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60%가 넘는 응답자가 “정부와 관료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테러, 가난, 가족의 사망과 같이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공포를 가지는 사건에 대해 느끼는 공포지수보다 더 높았다. 이처럼 시민이 정부에 대해 가지는 공포를 영어단어 ‘government(정부)’의 앞 글자를 따서 ‘G의 공포’라고 부른다.

G의 공포는 정부의 제도나 규제가 일상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제계에서는 시장의 질서나 게임 룰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 과거에는 G의 공포가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간주해 왔다.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지기 힘든 사회에서 뇌물이나 특정 권력 집단의 사적 동기가 국민의 의사와 다른 정책 결정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 사회에서도 대다수의 국민이 G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 정부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보다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시행한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의 확대와 인종 갈등의 심화는 관련된 정책의 향배에 수많은 시민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국민이 정책에 대한 공포를 더 심각하게 느끼게 하는 배경이다.

G의 공포를 생성시킨 주된 원인은 사실상 정치다. 선거로 당선된 정치 지도자들이 행정부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양산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정 집단에 편향된 정책을 상대방 후보가 제시하면, 경쟁자도 자신의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선거에 이기는가에 따라 정책 내용이 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선거 과정에서는 상대방 후보와 상대 후보의 정책을 비난할 뿐 아니라 지지자들 간 대립과 갈등 구도가 만들어지고 정책 편향도 확대된다. 정치가 만들어 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은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국민이 느끼는 정치에 대한 공포를 ‘P의 공포’라고 부른다. ‘politics(정치)’의 앞 글자에서 따온 말이다.


약속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이 공포 주범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2019년 11월 발표한 ‘미국인의 스트레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56%는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중요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지적했다. 이 결과는 4년 전 선거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변한 52%보다 더 증가한 것이다.

국민이 가지는 P의 공포는 선거로 임명된 정치 지도자들의 두 가지 행태 때문에 더 증폭된다. 첫째,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태 탓이다. 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여러 가지 약속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손쉽게 뒤집는 탓으로 사회적 안정성을 해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게 된다.

둘째,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라 정책을 수시로 변경하는 행태 때문이다. 정책에 민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특정 집단을 위한 제도라는 점과 제도의 불안정성 증가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이 된다. 올해 미국 대선은 결과가 밝혀지는 순간까지 P의 공포를 사회 전체에 확산시켰다. 이제 새로운 미국 정부에서 G의 공포를 얼마나 양산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포가 남의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G의 공포와 P의 공포를 호소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2021년에는 우리나라도 대선 정국으로 들어간다. 더 많은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정부의 개입을 더욱 확대하고 있어서 그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가 만드는 공포를 줄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들은 약속을 지키고 국민은 국민 전체를 위하는 후보와 정당을 선택하면 된다. 결국 모든 국민이 정치와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