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올해 중국 경제 개혁의 메카인 광둥성 선전시(深圳市)가 경제특구 1호로 지정된 지 40주년을 맞았다. 선전은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의 시금석인 4개 경제특구(SEZ·Special Economic Zone) 중 하나로 작은 어촌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및 첨단 제조업 기반의 혁신도시로 변모했다. 2019년 선전 국내총생산(GDP)은 3740억달러(약 416조원)로 홍콩을 뛰어넘었고, 1인당 GDP는 3만달러에 육박했다. 시에서는 7대 신흥 산업(첨단제조업·신소재·바이오·신에너지 등)을 지정해 육성하고 있으며 텐센트, 화웨이, 비야디(BYD) 등 글로벌 기업은 물론 로열, 광치 등 신흥 혁신기업들도 선전에서 신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선전의 시장 개발, 경제 통합 개혁에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려는 조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선전 경제특구 출범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세계가 격변기에 접어들었다. 중국이 글로벌 기술혁명에서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홍콩의 정치적인 갈등에 따라 중국 정부가 선전을 키워 홍콩의 경제적 중요성을 희석하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필자들은 이런 견해는 매우 좁은 시각이라고 지적한다.
앤드루 셩(Andrew Sheng) 홍콩대 아시아 글로벌연구소 연구원, UNEP 회원(왼쪽)샤오 겅(Xiao Geng) 홍콩 국제금융연구소 총장, 베이징대 HSBC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
앤드루 셩(Andrew Sheng) 홍콩대 아시아 글로벌연구소 연구원, UNEP 회원(왼쪽)
샤오 겅(Xiao Geng) 홍콩 국제금융연구소 총장, 베이징대 HSBC 경영대학원 교수(오른쪽)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10월 선전시(深圳市)의 경제특구(SEZ·Special Economic Zone) 지정 40주년을 맞아 선전을 무역·금융·기술 중심지로 건설하겠다는 ① 청사진을 발표했다. 많은 중국 연구자는 이 청사진이 홍콩과 상하이 또는 기껏해야 광둥·홍콩·마카오·대만 지역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러한 좁은 평가는 선전 개발 계획의 진정한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 주석의 선전을 포함한 광둥성 순방은 1992년 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의 유명한 ② 남부 순방을 연상시킨다. 덩샤오핑은 이 기간에 본인이 추구하는 경제 개발 이론의 근간을 알리는 일련의 연설을 계속했다. 시 주석이 제시한 이번 청사진은 중국 개혁과 개방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로 보인다.

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이 가져온 대혼란은 중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광둥성 주민은 심각한 식량난을 겪으면서 가까운 홍콩으로 피신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홍콩을 포함한 해외 중국인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해 SEZ를 만들기로 했다.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은 광둥성의 초대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선전·주하이·산터우·샤먼 등에 SEZ를 세우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홍콩의 번화한 항구와 세계적인 금융 덕에 선전은 기업 활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자원을 접할 수 있었다. 최근 40년 동안 선전은 연평균 20.7%의 놀라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달성했다. 가난한 어촌이었던 선전은 현재 중국 본토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으며, 총GDP는 홍콩을 능가하는 3740억달러(약 416조원)에 이르렀다.

세계는 최근 몇 년 동안 그리고 심지어 최근 몇 달 동안에도 크게 변화해 왔다. 많은 연구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그것이 촉발한 세계적 불황, 지정학적 긴장 고조 속에서 중국의 다음 단계 성장을 위한 개혁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개혁과 개방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SEZ 중 첫손에 꼽히는 선전은 그러한 접근법을 시험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중국의 경제 개발 계획은 항상 기존의 기회, 위협, 장벽 그리고 가능한 돌파구에 대한 냉철한 평가로부터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최근 ③ 쌍순환(雙循環·이중순환) 발전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쌍순환 전략은 곧 공개될 2021~2025년을 망라한 중국의 제14차 5개년 계획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많은 사람이 주장하듯 “중국의 경제 정책이 외부에서 내부로 전환하고 있다”고 간단히 암시하기는커녕, 대외적으로 개방성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경제 정책을 광범위하게 시행하기 전에 특정 지역에서 새로운 개혁이나 접근법을 실험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선전이 바로 그 지역이다. 선전이 지금처럼 계속 성공을 거둔다면 앞으로 중국 전체의 경제와 혁신 향방을 가늠해볼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시(深圳市) 전경. 사진 조선일보 DB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시(深圳市) 전경. 사진 조선일보 DB

중국의 ‘실험’은 하향식으로 이뤄지지만,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된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시 주석의 선전 연설 나흘 만에 시장 발전과 경제 통합의 시범 개혁을 촉진하기 위해 선전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선전은 자본·토지·인재·지식재산권 배분에 대한 권한이 증대되고, 새로운 사업 규제(분쟁 해결 제도 포함)와 혁신 인센티브를 창출할 힘이 세지게 된다. 또한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승인을 기다릴 필요 없이 국제적으로 호환되는 규칙(금융시장 규제 등)과 제도(교육·의료·사회보장 포함)를 만들 수 있는 권한도 커진다.

선전시와 광둥성 정부는 물론, 관련 중앙 정부 부처들은 향후 2년 이내에 자율성을 높여 개혁을 촉진할 수 있는 추가적인 영역을 식별하는 임무를 맡았다. 선전은 비록 전국인민대표대회나 국무회의의 승인은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법과 규정을 제안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식은 복잡하고 시스템적인 개혁의 장벽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제14차 5개년 계획이 완성될 때면 선전은 경제, 사회, 환경, 기술 진보를 관리하는 세계적인 기관들의 종합적인 생태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중국 정부가 나머지 지역을 희생시켜 선전을 번성시키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선전 계획이 홍콩의 경쟁 우위를 잠식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좁은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선전의 발전이 지역 시장을 확장하고 심화시킴으로써 모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시 주석은 10월 연설에서 ④ ‘그레이터 베이 지역(Greater Bay Area)’ 구상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고, 선전 계획에는 홍콩 젊은이의 고용과 주거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포함돼 있다.

중국처럼 크고 복잡한 경제의 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이 모방할 모델은 사실상 전 세계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대적인 대외 여건 속에서의 개혁은 더욱 의미가 있다. 앞으로 중국 선전 개혁의 향방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Tip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0월 14일 선전시 경제특구 지정 4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선전시는 그동안 중국 발전을 위해 거대한 공헌을 했다”고 했다. 이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시장화 △상업(기업) 환경 혁신 △과학 기술 혁신 △대외 개방 △ 공공 서비스 강화 △생태 환경 및 도시 관리 강화 등 6개 분야 40개 청사진을 발표했다.

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은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남부 도시 순방 연설)를 통해 새로운 경제 개발 청사진을 제시했다. 골자는 생산력, 종합 국력, 인민의 생활 수준 등 세 개 요소에 이롭다면, 결국 좋은 것이라는 내용이다. 덩샤오핑은 특히 “먼저 부자가 돼도 좋다(先富起來)”고 선언해 불균형 성장을 용인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는 평등을 중시하던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겠다는 선언이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내수를 위주로 한 ‘쌍순환(雙循環·이중순환)’ 발전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도한 수출 및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 비중을 키우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는 2019년 2월 광둥성, 홍콩, 마카오 등 총 11개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역으로 통합하는 ‘그레이터 베이 지역(Greater Bay Area)’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곳을 첨단 기술 권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