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우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박재우
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노동의 사전적 정의는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대부분 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노동법의 영역에서 ‘노동자’ 내지 ‘근로자’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노동하는 사람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은 아니다. 우선 노동자와 근로자의 관계부터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 모두 일상에서 사용되는 표현들인데, 어떤 표현이 더 적정할까? 노동계 등 일각에서는 ‘근로’가 근면할 근(勤), 일할 노(勞)를 쓰는 한자어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부적당하므로 단순히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노동자’라는 말이 대등한 노사관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더 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더 정확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법은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를 법률 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법정휴일인 5월 1일도 ‘근로자의 날’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론매체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정부)도 두 가지 표현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두 가지 표현 중 어느 하나만 옳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위 두 가지 표현을 혼용하되, 사회 현상이 아닌 법적 쟁점을 설명할 때에는 근로자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자 한다.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되는지 아닌지가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 노동법의 보호 범위와 정도에서 근로자와 근로자가 아닌 자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우선 근로자의 날에 회사가 나오지 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근로자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런 식의 구분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회사가 근로자로 취급을 하는지와 무관하게 근로자의 지위는 법에 따라 정해진다. 근거 법령에 따라 근로자로 인정하는 범주가 다소 다르지만, 여기서는 근로관계의 기본법에 해당하는 근로기준법상의 정의를 기준으로 본다.

근로기준법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근로자라고 정의한다. 법원은 실질에 있어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를 중요 지표로 본다. 이때 종속적이라는 것은 노동력 제공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판단에 있어서 참조한 표의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위 몇 가지 체크리스트만으로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가름하기는 무척 곤란하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두 가지는 법상 근로자인지 아닌지가 자주 다퉈지는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위임계약을 체결한 임원들이다. 어느 임원이 어느 날 느닷없이 대표이사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면, 관할 노동위원회에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을까? 단순히 말하면, 이것이 임원의 근로자성 문제이다. 많은 경우 임원들은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임계약의 형식을 취하며, 취업규칙의 적용 대상도 아닌 경우가 많다. 또한, 소관 업무에 있어서 상당한 권한이 인정되며, 처우도 일반 직원들의 그것보다 나은 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판례는 임원이 법인등기부상 등기된 임원인지 여부를 근로자성 판단의 중요한 고려 요소로 보고 있다. 즉 등기임원은 회사로부터 일정한 사무처리의 위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 주류적인 판례의 태도다. 비등기 임원인 경우에는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나뉜다.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근로자로 인정되는 케이스가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소관 업무에서 전결권의 크기, 경영 회의 등에 참석해 회사 경영 사항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지, 소속부서의 직원에 대한 임면, 승진, 연봉, 상벌 등에 관한 결정권이 있는지, 출퇴근 시간 체크 등 근태관리를 받았는지, 성과나 처우가 일반 직원들과 얼마나 다른지 등을 고려해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 사례도 다수 발견된다.

이렇듯 같은 임원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근로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임원 인사를 관리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임원과의 위촉 관계를 종료하고자 할 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사전에 해당 임원이 근로자로 인정될 가능성이나 해임의 법적 절차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 맞지 않는 노동법제도 개선해야

두 번째는 특고·플랫폼노동의 문제다. 우리가 보통 ‘특고’라고 줄여 말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독자적인 사무실, 점포, 작업장이 없고 계약된 사업주에게 종속돼 있지만 스스로 고객을 찾거나 맞이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고 일한 만큼 실적에 따라 소득(수수료, 봉사료, 수당 등)을 얻으며, 근로 제공 방법, 근로 시간 등은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는 형태로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퀵서비스 배달 기사, 골프장 캐디(경기보조원), 방문판매원, 대리운전자, 목욕관리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플랫폼노동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애플리케이션(앱)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력이 거래되는 근로 형태로서 배달대행업·대리운전업·우버 택시업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특고나 플랫폼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임이나 도급의 성격을 가지는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근무 장소나 시간의 제약도 덜 받는 경우가 많으며, 고정급 없이 실적에 따른 수수료만을 지급받는 등 노동법의 전통적인 근로자성 판단기준하에서는 근로자라고 보기 어려운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업무수행 방식에 따라서는 이들도 근로자라고 인정받는 케이스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전형적인 특고나 플랫폼노동의 경우에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일단 근로자로 분류되면 법의 면밀한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보호를 거의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임금근로자 중심의 노동법제도는 이제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특고나 플랫폼노동에서의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 산업재해나 산업안전에서의 보호 영역 확대, 고용보험 가입 자격 확대에 대한 입법 동향 등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내년부터 음식 배달원, 택배 기사, 골프장 캐디 등 특고를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에 포함하기로 하면서 관련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의견 청취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라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 상황과 직업적 특성에 따라 정교하게 다뤄져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일하는 모습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법도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담아낼 수 있도록 유연하게 변신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