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규서울대 법학 학사, 사법시험 28회, 사법연수원 18기, 특허법원 판사, 대법원 지식재산권 담당조 재판연구관,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이명규
서울대 법학 학사, 사법시험 28회, 사법연수원 18기, 특허법원 판사, 대법원 지식재산권 담당조 재판연구관,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가정해 보자. 내가 식료품 가게 주인인데, 신선한 과일과 채소 상품을 종류별로 정리해서 쇼핑하기 편리하도록 멋지게 배치하는 방법을 새로 알아냈다. 이렇게 근사한 방법을 여러 경쟁 업소에서 모방한다면, 나는 지식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 ‘컴퓨터 코드가 저작권 보호 대상인가’를 놓고 벌어진 오라클과 구글 법정 공방에서 나온 질문이다. 미국 대법원 구두변론 과정에서 케이건 대법관은 오라클 측 대리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라클은 자바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무료로 제공하되 경쟁 플랫폼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사용료를 받았다. 구글은 자바로 작성한 애플리케이션(앱)이 모바일 기기에서 안드로이드 시스템과 호환될 수 있도록 자바 API를 사용하면서 오라클의 승낙을 받지 않았다.

오라클은 구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2012년 1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API의 저작물성이 부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항소심은 저작물성을 인정하면서 1심 판결을 파기했다. 다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은 구글이 자바 API를 모바일 시스템에 사용한 것은 ‘공정 이용(fair use)’이라고 판정해 구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은 1심 배심원이 공정 이용이라고 본 건 부당하며 구글이 오라클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대법원이 구글의 상고를 허가해, 상고심 변론이 지난 10월에 진행됐고, 양사는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대법관들과 양사 대리인 사이에서는 쟁점 대상 프로그램의 성격이나 관련 법령의 해석에 관한 사항 외에, ‘지식재산권으로 보호할 대상인가 아닌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비유 차원에서 타자기의 쿼티(QWERTY) 자판 배열, 금고와 자물쇠의 조합,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인터넷에서 스트리밍하기 등 다양한 사례에 관한 문답이 오갔다.

위 사례처럼 10년간에 걸친 지루한 지식재산권 법적 공방이 이뤄지는 이유는 지식재산법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재산법은 컴퓨터 코드를 포함해 아이디어·정보·노하우·지식 등 무형물(intangi-bles)을 놓고 공공 영역(public domain)과 특정인의 독점·배타권에 속하는 영역을 나누는 기준과 보호 두께를 정한다.

지식재산은 부동산이나 가구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비(非)경쟁성 및 비배타성을 지닌 다양하고 유동적인 무형물이다. 무형재산의 종류와 범위는 경제 문화 활동의 다양성 및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새로운 유형의 무형물이 생겨나기도 하고 보호 선례가 없는 목적물을 대상으로 분쟁이 빈발한다.

그러다 보니 지식재산권으로 보호하는 기준에는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분 △창작성 △공정 이용 △진보성 △유사성처럼 윤곽이 모호한 개념이 많다. 개별 사건에서 그 해석을 놓고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유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은 오라클과 10년에 걸쳐 지식재산권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구글 본사.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은 오라클과 10년에 걸쳐 지식재산권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구글 본사.

윤곽 모호한 지식재산권의 범위

지식재산법 영역에서 어떤 무형물에 대한 보호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관한 응답은 입법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른바 퍼블리시티권(publicity·사람의 초상·성명·목소리 등 인격 표지에 관한 재산권)에 관한 저작권법 개정 동향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오랫동안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적용법이 불명확해 논란이 많았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저작권법 개정안에 ‘초상 등에 대한 재산적 권리는 저작권법에 따른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한 조항을 신설했다. 이제 해당 입법안에 대해 공청회를 진행한 단계이지만 ‘초상 등 재산권’의 울타리를 두르는 방식을 논의하는 마당이 마련된 것이다.

아울러 무형물의 보호 문제는 입법이나 판결 같은 시간을 끄는 절차 없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논란이 된 이른바 ‘덮죽 사건’도 일종의 지식재산 분쟁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여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포항의 한 자영업자가 출연해 ‘덮죽’을 소개한 후 그 업자와 무관한 외식 업체에서 ‘덮죽덮죽’이라는 브랜드의 프랜차이즈를 론칭했다. 포항 덮죽집 운영자는 소셜미디어(SNS)에서 모방을 하소연했고, 이에 누리꾼 사이에서 프랜차이즈 ‘덮죽덮죽’에 대한 비난과 불매 움직임이 일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덮죽덮죽’은 사과문을 올리고 ‘덮죽’ 프랜차이즈 사업을 접겠다고 밝혔다.

법정으로 갔더라면 심급을 오가며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를 이 사건은 빠르게 봉합됐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과연 후발 업자는 포항 자영업자가 보유한, 보호 가치 있는 무엇을 침해한 것일까. 조리법(레시피)? 메뉴 명칭?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됐다는 유명도? 수개월간의 노력? 과연 조리법은 다른 업체의 모방으로부터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 보호한다면 어떤 요건을 두는 것이 실효성 있고 적정한가? 소비자가 동네 음식점에서 방송에 나온 그 덮죽을 쉽게 맛볼 수 있는 쪽으로 협업을 이루도록 하는 방안은 없었을까?

중요한 점은 여론에는 사회 통념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론이 항상 예견 가능한 방향으로 공정하고 정교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업에 유용한 아이디어의 귀속 다툼을 매번 여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산업구조가 기술 및 지식기반 경제로 변모하면서 기업에서 무형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확대되는 추세다. 지식재산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지식재산권 보유 주체는 경제 활동에서 합법적 독점 기회를 잡아 유리한 지위를 선점하는 반면, 경쟁 업체를 비롯한 이해 관계인은 그만큼 제약이 따른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지식 창작물은 나눌수록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왜 누군가에게 특권을 허용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내가 피땀 흘려 개발한 성과를 남이 함부로 모방하는 행위는 부당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 반면 정책 결정자의 관점에서 지식재산권 제도는 조세 혜택, 시상(prizes), 보조금(grants), 정부 과제 등 기술 혁신 및 창작을 장려하는 다른 방안과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조화롭게 설계해야 할 대상이다. 무형재산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는 정책 수단으로서 지식재산권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지식재산 제도는 점진적 발전 영역

분쟁 해결의 신속성만 도모한다면 개별 사안에서 ‘그건 이쪽 편의 것’ 수준의 결론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재산권은 독점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 선(善)만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양질의 아이디어 생산 측면뿐 아니라 그 이용과 확산 측면도 사회적 맥락에서 균형 있게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속성 및 명확성은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가치이지만, 더딘 절차와 애매모호한 기준이 항상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는 전형은 아니다. 숙의, 이익 형량, 다양한 입장의 용해(鎔解)를 위해 시간이 걸린다면 그 과정은 바람직하다고 봐야 한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유형의 사건에 지식재산의 보호 원리를 섬세하게 구현하는 해결 방안을 끌어내고, 동일 범주의 사안에 일관성 있게 적용되는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면, 불확정 개념은 재량의 폭과 해석의 공간을 부여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넓게 보면 소스 코드이든 요리법이든 연예인의 초상이든 사회 구성원이 산출하는 무형물을 어느 정도로 보호하고 어떤 조건으로 이용하게 할 것인지 정하는 시스템 자체도 가치 있는 지식 창작물이다. 지식재산보호 방식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등 사회적 자원을 쏟아부어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일종의 공공 자산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