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연세대 경영학,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드디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영국 정부는 12월 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제약사 화이자에서 개발한 백신을 세계 최초로 긴급 승인한 뒤 12월 8일부터 접종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 내 다른 국가들도 연내 코로나19 백신 긴급 사용을 승인하고 공급에 나설 전망이다. 미국은 12월 10일 화이자 백신에 관한 승인 심사를 시작했고, 유럽연합(EU)은 12월 29일까지 화이자 백신 사용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백신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지금 당장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금융투자 시장에서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일 년 만에 백신이 등장하고, 빠른 속도로 보급에도 성공하자 시장은 뜨겁게 반응하며 상승 랠리를 시작했다. 코스피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2700선을 돌파했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2년 6개월 만에 1100원이 무너졌다. 원화 강세와 주가 상승이 선순환하는 양상이다.

투자자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은 만능 키워드가 돼 가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제 충격이 처음보다 약해졌고, 백신 공급에 대한 기대는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글로벌 경제도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투자자가 많다.

또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접종자 전자증명서 도입을 검토하고, 접종자만 여행을 허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백신발(發) 랠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이런 금융시장 흐름을 보며 어떤 이는 2000년대 중반 자산 버블 당시를 떠올리기도 한다. 진짜 버블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실제 버블 상황이라고 해도 버블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를 예상하는 건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금융시장에 팽배한 기대감을 현실이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를 진단하는 것만이 최선의 대응이다. 상승장에 올라타고 싶은 투자자라면 시장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절대적 존재’ 코로나19 백신의 보급 진행 상황과 효과, 부작용 등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건 현재 쏟아지는 장밋빛 시나리오에 심취해 백신의 실제 효과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임상 데이터를 공개한 주요 글로벌 제약사의 코로나19 백신 예방률은 90%를 웃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상 결과일 뿐 현실 세계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투자 시장에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은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 듯하다. 마땅한 치료제 없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2020년이 억울한 사람들에게 백신 부작용이나 바이러스 변종 등에 관한 문제 제기는 불편할 수 있다. 그래도 현명한 투자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축제 분위기에 너무 심취하지 말고,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실제 효과가 기대 효과와 얼마나 차이를 보이는지 반드시 확인하기 바란다.

금융시장은 백신 공급 과정에서도 흔들릴 수 있다. 12월 3일 화이자가 공급망 문제를 이유로 코로나19 백신 출하량을 당초 계획(1억 도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고 밝혀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사실을 잊지 말자. 화이자와 모더나는 연말까지 각각 5000만 회, 3000만~4000만 회분의 백신을 생산할 예정이다. 또 내년에는 화이자 10억 회, 모더나 5억 회분의 생산 계획을 밝혔다. 이 스케줄이 얼마나 지켜지는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만약 코로나19 백신 생산이 원활히 이뤄진다면 2021년 1분기 중 선진국 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접종이 이뤄지고, 2분기에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접종이 실시될 것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신흥국도 순차적으로 접종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백신 보급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21년 상반기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정부의 재정 지원이 가장 집중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할 때는 정부 정책의 초점이 ‘구제’에 맞춰졌다. 백신 보급과 함께 본격적인 경제 회복이 필요한 시점부터는 구제뿐 아니라 수요 창출에도 집중하게 된다. 당연히 수혜 업종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12월 8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확보 관련 브리핑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2월 8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확보 관련 브리핑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재정 지원 단축이 증시 약세 야기할 수도

일각에서는 백신의 글로벌 보급으로 전 세계 경제가 정상 궤도에 복귀할 경우 재정 부양책의 필요성이 자연스레 힘을 잃을 수 있다고 관측한다.

필자 생각은 다르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인 미국의 경우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20만 명을 상회하고 있다. 아이오와·뉴저지 주등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백신 보급에 대한 기대감과 무관하게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추가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가 힘을 잃기 어려운 분위기다.

미국만큼 심각한 건 아니지만 한국의 위기감도 여전하다. 최근 하루 코로나19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서며 지난 2월 말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고,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수도권 2.5단계, 비(非)수도권 2단계로 강화했다. 2.5단계에서는 중점관리시설의 집합 금지뿐 아니라 일반관리시설도 이용 인원이 제한되며 오후 9시 이후 운영이 중단된다. 결국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는 더 커졌고, 완화적 정책 기조는 경기 회복이 가시화될 때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백신 보급과 별개로 말이다. 경기 부양에 따른 수혜주를 살피는 안목이 요구된다.


파티는 당분간 계속

투자자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포인트는 경제 정상화 시점이다. 경제 정상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진다면 정부의 재정 지원 기간은 단축될 수 있다. 유동성과 소득 보전 조치가 당초 계획보다 축소된다는 말이다. 앞서 정부의 소득·유동성 지원의 상당 부분이 소비나 투자가 아닌 금융시장으로 유입돼 증시의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을 크게 높였던 만큼 향후에는 밸류에이션이 완만한 하락 추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는 넘치는 유동성에 힘입어 올해 증시가 크게 상승한 만큼 당장 내년부터 증시 환경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꿈틀거리는 미국 장기금리와 중국 기업의 연쇄 부도 소식이 내년도 증시 하락설에 힘을 보탠다. 그러나 필자는 위험 요인이 증시에 당장 반영될 시점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파티를 끝내고 나오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참고로 코스피지수는 2017년 2500선을 돌파한 다음 2018년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는데, 이는 최고치 경신 이후 6개월 만에 400포인트나 더 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