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는 현실이 될까.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 관련 협상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다. 2020년 1월 31일 EU를 공식 탈퇴한 영국은 올해 말까지 과도기인 전환 기간을 갖고 있다. 연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2021년 1월 1일부터 영국과 EU 간 교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게 돼 큰 혼란이 예상된다. 현재 양측 견해차가 큰 부분은 영국 해역 내 EU 어선의 어업권, 공정 경쟁 여건 마련, 향후 분쟁 발생 시 해결을 위한 거버넌스 문제 등 세 가지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12월 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여전히 양측 의견 차가 크다는 데 공감하고 추가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만큼 극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 여론이 있는 반면, 국가 주권에 관한 갈등이라 쉽게 타협점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부정론도 만만치 않다. 필자는 노딜 브렉시트가 세계에 던질 메시지는 유럽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며 양측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호적인 합의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셀 프라츠(Marcel Fratzscher) 독일 경제연구소(DIW) 소장,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거시경제금융학과 교수, 전 유럽중앙은행(ECB) 수석 매니저
마르셀 프라츠(Marcel Fratzscher)
독일 경제연구소(DIW) 소장,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거시경제금융학과 교수, 전 유럽중앙은행(ECB) 수석 매니저

우리는 곧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협정이 합의될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합의되더라도 그 결과는 유럽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공동의 규칙과 무역은 물론 세계에서 유럽연합(EU)의 지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중국 등에 맞서 자국의 입장을 견지하고 이익을 유지하려면 EU가 영국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현재 브렉시트 협정의 포인트는 피상적으로 영국이 EU를 탈퇴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수해야 할 때의 상업적 비용과 연결돼 있다(그러나 이는 향후 공급망에 큰 혼란을 야기할 게 분명하다). 더 중대한 문제는 다가오는 정치·사회·전략적 비용이다.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 시나리오로 가게 되면, 유럽은 영국과 미래에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기반 자체를 잃게 된다. 많은 이가 유럽은 영국의 자주권을 인정해주는 장기적이고 강한 파트너십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둬야 하며, 유럽과 영국 양쪽이 각자 이익을 좇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화 시대라고 해도 국가 주권은 제한적으로나마 필요하다.

노딜 브렉시트란 메시지는 유럽에 치명적이다. 이는 주요 정책 분야에서 유럽의 희망 사항을 존중해줄 필요가 없다는 시그널을 다른 나라에 보낼 수 있다. 양극화가 한층 강해진 현재 중국은 점점 자신감과 단호함을 키우고 있고, 미국은 자국 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꾸릴 행정부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지속할 것이다). 유럽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원과 영향력을 결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상호 번영을 누리기 위한 끈끈한 관계는 영국뿐 아니라 EU에도 중요하다. 영국에는 유럽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예컨대 유럽 유일의 국제 금융 중심지인 런던은 글로벌 투자의 매력적인 장소이자 금융 혁신의 선두주자로서 유럽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런던은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오른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2월 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연합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오른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2월 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연합

브렉시트 합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타격을 입는 건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국가적 청렴도는 ① 1998년 성(星)금요일 협정(벨파스트 협정)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의 물리적 국경 부재라는 작은 척도로 좌우된다. 하지만 최근 폴란드와 헝가리 내부의 도전이 보여주듯, EU 역시 자신들의 청렴성을 당연시할 수는 없다.

EU와 영국이 협상안에 동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EU는 협상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위치에 있다. 브렉시트가 EU 내부의 기능을 많이 바꾸지는 않을 테지만, 영국은 EU 밖에서 자국 기관을 재건하고 새로운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 기존의 국가 원조 및 분쟁 조정 체제와 동등한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양보함으로써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영국과 같이 큰 국가가 다른 작은 국가들처럼 EU에 무임승차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더 나아가 EU는 ② 어업권에 대한 주장을 접어야 한다. 이는 국가 주권을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는 영국에 경제적으로 중요하지 않지만, 정치적으로는 중요하다.

남은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향후 EU와 영국의 관계를 재구축하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느냐다. 점점 양극화하는 세계에서 양측은 기후 변화와 디지털 시대 전환 등을 비롯한 여러 이슈에 협력할 수 있도록 공동의 목표에 원칙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

EU와 영국의 미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브렉시트 딜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과정은 향후 몇 년 동안 베일을 벗고 진화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결정되고 있는 결별 여부는 양측 관계의 추가 발전과 세계 속에서 유럽의 역할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EU와 영국의 밝은 미래를 위한 견고한 토대를 다지려면 우호적인 합의는 필수적이다. 유럽 위원회와 독일·프랑스 정부 등은 장기적인 관점을 반영해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시점에서는 교착 상태부터 깨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조치라는 사실을 보여줄 때다.


Tip

과거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통합을 추구하는 분리주의 세력과 반대 세력의 갈등으로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서 영국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을 보장했고,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 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했다. 이 지역의 국경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된 건 브렉시트 때문이다. 영국이 EU를 떠날 경우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역시 EU 단일 시장과 관세 동맹을 떠나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EU에 속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엄격한 국경 통제가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영국과 EU는 협상 끝에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인 국경을 만들지 않고,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사이에만 관세를 물리는 ‘관세 국경’만 만들기로 했다. 이 내용은 올해 1월 말 발효된 EU 탈퇴 협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영국은 ‘국내시장법안’이라는 별도의 자국 법안을 통해 본토와 북아일랜드 간 통관 수속을 거치지 않도록 협정 내용을 변경하는 걸 추진해 EU와 갈등을 빚었다.

어업권은 브렉시트 협상에서 EU와 영국의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 중 하나로, 영국 관할 수역에서 EU 어선이 가지는 조업 권리에 관한 내용이다. 양측은 영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대한 접근 범위와 영국이 조업 과정에서 EU의 환경·노동 규제를 얼마나 준수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장기간 협상을 진행해왔다. 독일·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한 EU 국가들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이 어업 분야에서 EU 규제를 지켜주길 바란다. 반면 영국은 기존 EU 규제에서 벗어나 시장 우위를 차지하려고 해,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마르셀 프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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