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서울대 법학 학사, 미 조지타운대 조세법 석사, 사법연수원 29기, 사법시험 39회, 전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성환
서울대 법학 학사, 미 조지타운대 조세법 석사, 사법연수원 29기, 사법시험 39회, 전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이 세상에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죽음과 세금 외엔 없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세금 문제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겪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에서 발생한다. 돈을 버는 활동뿐만 아니라 쓰는 것 또는 심지어 그냥 갖고만 있는 경우에도 세금이 부과된다.

부동산의 예를 들면 집이나 땅을 살 경우에는 취득세·농어촌특별세·지방교육세 등을 내야 하고, 팔아서 양도차익이 생기면 양도소득세·지방소득세 등이 발생한다. 팔지 않고 누군가에게 공짜로 줘버려도 증여세 문제가 따라붙는다. 팔거나 주지 않고 가만히 보유하고만 있어도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의 부과고지서가 해마다 날아온다. 그러다 사망하면 상속인은 상속세 신고 대상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처럼 거의 모든 경제활동마다 문제가 되는 세금은 일단 발생하면 반드시 ‘제때’ ‘정확한’ 금액을 내야 한다. 헌법 제38조가 국민의 납세의무를 선언하고 있기도 하지만, 세법은 명시적으로 납세자에게 세금을 제때 신고하고 납부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세기본법은 최소 10%, 최대 60%의 신고 불이행 가산세와 9% 남짓의 납부 불이행 가산세라는 제재가 뒤따르도록 정하고 있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제재를 얻어맞지 않으려면 납세자는 세법이 요구하는 납세의무를 올바로 파악해서 제때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세법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세법은 납세자가 세금을 언제, 얼마씩 내야 하는지를 정하는 법률이다. 세법이 갖춰야 할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바로 법적 안정성이다. 납세자가 경제활동을 할 때 세금이 발생하는지 아닌지를 사전에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예측할 수 없었던 세금 문제가 사후에 불거져 뜻하지 않게 손해를 입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세법이 법적 안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납세자가 세법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번 정해진 세법은 가급적 자주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세법을 공부하고 실무를 다뤄 온 필자에게도 세법은 흡사 난수표나 암호 책처럼 느껴질 때가 많을 정도로 어렵고 복잡하다. 게다가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해마다 상당한 폭의 개정이 이뤄진다.

이런 와중에 납세자가 납세의무를 제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해석상 논란 여지가 큰 한국 세법

십여 년 전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세금 법학 석사(TAX LLM) 과정을 공부하면서 인상 깊었던 대목 중 하나가 우리 세법과 미국 세법의 차이점이었다. 복잡하고 난해하기로는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미국 세법은 우리 세법보다 훨씬 더 자주 개별 조항마다 ‘용어 정의(definition)’를 두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동일한 용어라도 조항마다 의미가 다르게 쓰일 수 있음을 고려해서,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최소화되도록 정의 규정을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미국 재무부가 만드는 세법 시행규칙(regulation)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법 규정이 불확정적이거나 해석상 불분명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사례(examples)’를 자세히 나열하고 있었다. 우리 실무로 치면 유권해석에 해당하는 것일 텐데, 거기에 들어맞으면 과세 또는 비과세가 된다고 하는 구체적인 사례 유형들을 시행규칙에서 명확히 제시한다. 지극히 추상적인 용어들의 나열로만 이뤄진 우리 세법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차이점은 제안 시행규칙(proposed regulation)과 임시 시행규칙(temporary regulation)이라는 제도였다. 미국 재무부가 만드는 시행규칙이 효력을 가지려면 입법 예고 및 의견수렴(notice and comment)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거치기 전의 시행규칙은 아직 공식적인 효력이 없는 ‘제안 시행규칙’ 상태로서 다만 해석지침 정도로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입법 예고 및 의견수렴 절차가 수개월 또는 수년이 걸리기도 하는 까닭에, 만일 재무부가 즉시 효력을 갖는 시행규칙을 만들고자 하면 3년 이내의 효력만 갖는 임시 시행규칙을 공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요컨대 상당한 기간의 의견수렴 없이는 원칙적으로 재무부가 함부로 시행규칙을 만들기 어렵게끔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


김용범(오른쪽)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원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용범(오른쪽)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원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핵심 용어조차 정의 불분명

이러한 미국 세법과 비교해보면 한국 세법은 불친절하다. 세법을 해석하는 데 핵심이 되는 용어조차 정의 규정이 따로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때문에 세법 해석을 둘러싸고 납세자와 과세관청 사이에 견해차가 발생하면 그 불이익은 일단 과세처분을 당하는 납세자 쪽으로 돌아간다.

납세자 쪽의 의견이 옳다고 인정되는 것은 대개 여러 해가 지나 납세자가 천신만고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한 리스크를 피하고자 사전에 과세관청의 입장을 확인해두더라도 나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번복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아울러 우리 세법은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바뀐다. 요즘도 언론을 통해 해마다 소관 부처에서 그해에 바뀐 세법 내용을 해설하는 개정세법 해설 관련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개정된 세법의 내용과 취지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 자체는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려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세법의 개정이 너무 잦다는 점이다.

세법 개정이 소관 부처의 한 해 동안의 주요 업무인 상황이 해마다 반복되는 것은 필자가 보기엔 바람직한 현상이 못 된다. 전문가에게도 난해할 수밖에 없는 세법을 끊임없이 개정하면 납세자들이 그때그때 세법을 정확히 해석해서 세금을 제때 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정된 세법 법률과 시행령 등의 정확한 취지조차 간략하게만 해설하거나 또는 아예 별다른 설명도 없이 넘어가 버리는 우리 현실에서, 잦은 세법 개정은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법적 안정성 제고할 방안 필요

특히 세법이 이처럼 불친절하고 자주 바뀐다면, 그 해석에 관해서 납세자가 과세관청과 다른 의견을 갖더라도 최소한 가산세 제재는 가급적 덜 하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을까? 그러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어지간해서는 가산세 부과를 면하기 어렵다. 판례의 글귀를 그대로 빌면 ‘세법 해석상 의의(疑義·의심스러운 부분)’가 있는 경우여야만 가산세를 면할 수 있는데, 여기에 해당한다고 실제로 대법원이 인정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세법 자체의 정확한 해석이 쉽지 않고 잦은 개정까지 이뤄지고 있는데도 이를 똑바로 해석하지 못했다고 해서 가산세까지 엄격하게 부과한다면 납세자로서는 쉽게 승복하기 어렵다. 세금이 갖춰야 할 미덕 중 하나인 법적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세법 개정의 빈도를 낮추고, 부득이하게 개정할 때에는 친절하게 법령을 만들고 이를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또한, 법원은 입법 현실을 고려해서 납세자가 최선을 다해 세법을 준수하고자 노력했다면, 설령 결과적으로는 세법 해석을 그르쳤더라도 가산세만큼은 면하도록 유연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이 합쳐져야만 ‘세금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라는 납세자의 호소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