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경제의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 보통 우리는 미국과 중국 중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계 경제가 특정 단일국가에 의해 좌우됐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보면 미국이 단독으로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했던 시기는 브레턴우즈 체제(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서 44개 연합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후의 국제 통화질서를 규정하는 협정을 체결한 체제) 기간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전후 브레턴우즈 체제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 질서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관리했다. 당시 미국은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의 무력이 있었기 때문에 무역에 필요한 해로와 항로를 안전하게 지킬 힘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기 때문에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의 옛 강대국들을 지원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지배력은 지속적인 무역적자와 ‘세계 경찰’ 역할이 요구하는 비용 때문에 종말을 맞게 된다. 결국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종료되고, 스미스소니언 체제(캐나다·프랑스·독일·일본·미국 등 선진 10개국 재무장관들이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모여 체결한 환율 체제)로 전환된 것은 세계 경제에 대한 미국의 유일 지배 체제가 선진국들의 집단 지배 체제로 전환됐음을 상징한다.
선진국들의 집단 지배 체제가 구체화한 것은 주요 7개국(G7)의 탄생이다. 1973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의 G4로 시작했다가 1975년에 일본과 이탈리아가 참여하고, 1976년에 캐나다가 추가되면서 현재의 G7이 됐다. G7의 참여 기준은 1975년 회의에서 구체화했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 △세계 GDP(국내 총생산)의 4%이상 경제 비중 등이다. 이후 G7은 세계 경제를 관리하고 이끄는 대표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조직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다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거대 신흥국들이 등장하면서 G7의 상대적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다. 아울러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되면서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의존이 필요 없게 되자 G7은 내부적 결속력도 약화해 이견도 표출되고 있다. 특히 G7의 리더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강력한 도전을 받았고, 이는 주요 20개국(G20)이라는 새로운 세계 경제 거버넌스 조직을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G7은 여전히 세계 경제를 운영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독자적인 역할 때문만이 아니라 G7 국가들이 G20 내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 국가들은 글로벌 표준을 정하고 강제하는 데에도 협력하고 있다.
미국이 안보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자 국제 금융 시장에서 투자지수를 생산하고 있는 FTSE, S&P, MSCI 등에서 중국 기업들을 제외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중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기 시작한 것을 시사한다.
중국의 경제력을 고려할 때 단일 국가가 중국에 대항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G7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이 글로벌 표준에 따라 제재하는 것은 가능하다. 세계 경제의 리더십은 내부적 영향력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개별국가가 아닌 집단에 의해 이뤄지고 있고, 그 주체는 여전히 G7 국가들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올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G7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한국을 대상국 중 하나로 꼽았다. 영국도 민주주의 10개국을 의미하는 ‘D10’의 협력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한국을 10개국 안에 포함했다.
물론 아직은 모두 논의 단계에 있는 수준이지만, 한국이 세계 경제를 관리하는 핵심 집단에 참여하는 것은 국제 시장에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기다리지만 말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내부적 전략 수립과 정책적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 입장에선 앞으로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나라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세계 경제를 이끄는 집단 리더십에 포함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