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우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박재우
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1936년에 제작된 영화 ‘모던타임즈’는 찰리 채플린이 연출하고 직접 주연을 맡았다. 오래전의 영화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 봐도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의 기계화 과정에서 무시되는 인간성을 잘 풍자했다는 평을 받는다. 영화 속에서 채플린은 공장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반복하는 공장 근로자로 등장한다.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의 속도에 맞춰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작업 교대 후에도 나사를 조이던 주인공의 몸동작이 계속되는가 하면, 여성의 옷에 달린 단추 등 나사처럼 동그란 것만 보면 조이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고, 급기야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영화에 대한 평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위 장면은 노동법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이유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산업혁명 이전의 노동은 대체로 본인의 생활 리듬에 맞춰 이뤄졌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값비싼 기계가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동이 기계의 작동 속도와 시간에 맞춰졌다. 사용자는 장시간 노동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을 얻고자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부작용이 나타났다. ‘모던타임즈’가 풍자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19세기부터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산업화한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내용의 초기 노동법이 등장했다. 1802년 영국에서 하루 12시간을 상한으로 하는 근로시간 규제가 시작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공장법(factory act)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후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된 후 만든 첫 번째(1호) 협약은 1919년의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협약’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법을 제정하면서 ILO 1호 협약을 받아들여 1일 8시간 근로제를 도입했고, 기준 근로시간을 주 48시간으로 정했다. 그 후 1989년 법을 개정하면서 주당 기준 근로시간을 44시간으로 줄였고, 2003년에 40시간으로 변경했다. 2018년 7월부터는 연장근로를 포함하더라도 주 52시간(기준 근로 40시간 + 연장근로 12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례로 도입됐다.


여전히 애매한 근로시간 개념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에 따라 기존의 근무 형태를 바꿔야 하는 많은 사업장은 무엇이 근로시간이고 무엇이 근로시간이 아닌지에 관해 관심이 커졌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준수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감독 아래 종속된 시간, 즉 노동력을 사용자의 처분 아래에 둔 실구속 시간을 의미한다. 근로시간 해당 여부는 사용자의 지시 여부, 업무 수행(참여) 의무 정도, 수행이나 참여를 거부한 경우 불이익 여부, 시간·장소 제한의 정도 등 구체적 사실 관계를 따져 사례별로 판단된다.

로펌 현장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경우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지만, 일정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등 자유로운 이용이 어려운 경우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의 대기시간으로 보아 근로시간으로 취급된다.

근로자가 작업 시간 도중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시간 등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휴게시간으로서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하에 놓여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최근 대법원은 근무시간 중 10~15분의 짧은 휴게시간은 생산직 근로자가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거나 작업 중단 및 장비의 정비에 필요한 시간으로서 근로시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둘째, 교육시간은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경우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반면 근로자에게 교육 이수 의무가 없고, 사용자가 교육 불참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면, 이를 근로시간으로 볼 수는 없다. 사용자가 강제하지 않았다면, 사용자가 근로자의 교육 이수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교육 수당을 지급했다고 해서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거래처 접대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다.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근무시간 외에 거래처 담당자를 접대하는 경우 근로시간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구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거래처 담당자와 휴일 골프 라운딩을 했다면 이것 전체를 근무시간으로 볼 수 있을까?  실제 A보험사 영업 담당 임직원이 휴일에 47회 접대골프를 한 것이 근로 제공이라고 주장하며 휴일근로수당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은 해당 임직원이 자신의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고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한 활동이 근로시간에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회사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휴일 골프에 참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노동법은 ‘산업의 기계화’로 이해되는 1차 산업혁명 이후에 만들어졌다. ‘산업의 디지털화’로 요약되는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법도 그 근간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고 평가된다. 이는 근로시간 규제에서도 마찬가지다.


1936년에 제작된 영화 ‘모던타임즈’는 찰리 채플린이 연출하고 직접 주연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그가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나사를 조이고 있다. 사진 IMDB
1936년에 제작된 영화 ‘모던타임즈’는 찰리 채플린이 연출하고 직접 주연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그가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나사를 조이고 있다. 사진 IMDB

지나치게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

그러나 오늘날 사무직 중심의 근로 환경에서 근로시간을 명확히 구분해낼 수 있는지, 근로 성과가 근로시간과 정비례하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자유로운 근무 환경 아래에서 시간 활용을 상당 부분 재량에 맡기면서 지식근로자의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21세기 첨단 디지털 기업에 현행 근로시간 규제는 지나치게 경직적이고 획일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향후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 근로를 했는지보다는 근무 성과의 양과 질에 따른 평가가 점점 더 중요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획일적 근로시간 규제 방식이 미래에도 적절할지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특히 최근 스마트 기기의 발전에 따라 퇴근하더라도 이메일 또는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업무상의 연락이나 업무 처리가 가능해지는 등, 근로시간과 여가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제조업 및 주요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만 20세 이상 만 60세 미만 임금근로자 24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개인적 여가시간에 스마트 기기를 통한 업무 수행을 권유받는 근로자가 약 30%에 달한다고 한다.

업무시간 외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업무 처리를 한 경우뿐만 아니라 실제 업무를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회사와 연락이 가능하도록 스마트 기기를 켜놓고 있어야 하는 경우, 이것이 근로시간과 관계에서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는지 모호하다.

근로시간과 자유시간 사이의 모호한 시간을 ‘근로 대기, 대기 근로, 호출 대기’로 구분해 달리 취급하는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의 현행 노동법은 ‘근로시간, 휴게, 대기시간’이라는 세 가지 개념만을 인정한다. 구체적인 경우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우리도 근로시간에 대한 규율을 지금보다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일하는 방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전통적인 노사 관계하에서 만들어진 노동법 제도를 고집한다면, 현실과 법제도 간 괴리가 심화하고 결국 법이 그 역할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근로 환경을 담아내면서도 근로자 보호라는 노동법의 근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근로시간법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