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김우창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연봉 60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있다. 이 사람은 본인의 노후 보장을 위해 세전 소득의 몇 퍼센트를 저축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노후소득 보장제도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다층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도입했다. 3단계로 이뤄진 이 체계는 가장 아랫단에 국민연금, 2층엔 퇴직연금, 3층엔 개인연금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은 일정 수준 이상 소득이 있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기본적인 노후소득 수준 보장을 목표로 한다. 납입금은 소득의 9%다. 퇴직연금은 1년에 한 달치의 소득, 즉 8.33%를 납입한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임금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2016년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의무화한 퇴직연금은 그 범위를 차차 확대하여 현재는 10인 이상 사업장까지 의무 가입 대상이 되었으며, 2022년엔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회사에 적용된다.

최상단을 차지하는 개인연금은 전 국민이 가입 대상이지만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과는 달리 의무 가입이 아니다. 대신 국민의 자발적인 노후 준비를 독려하기 위해 연 700만원까지 소득에 따라 13.2~16.5%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 직장인은 최소 9%(국민연금)+8.33%(퇴직연금)를 본인의 노후 보장을 위해 꾸준히 납입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제도에 의해 납입이 강제되기에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세전소득의 17.33%는 무조건 납입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개인연금도 어느 정도 들기 마련이다. 웬만한 금융 상품도 수익률 5%를 넘기기 힘든 시대, 13%가 넘는 세액공제는 아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연금을 세액공제가 되는 최대 수준인 700만원까지 납입한다면 추가로 11.66%(700만원/6000만원)를 납입하는 셈이다.

즉 연봉 6000만원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은 ‘제도에 의해’ 세전소득의 최소 17.33%, 많으면 29%를 노후 준비 자금으로 이미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의무적으로, 혹은 세제혜택을 위해서 납입하는 금액 외에도 개인적인 노후 준비 목적으로 보험 가입이나 주식 투자,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를 감안하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전소득의 25% 정도는 노후 보장을 위해 투자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나라 노후소득 보장체계는 절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다. 국민이 납입하는 금액 측면에서만 보면 말이다.


연금 꼬박꼬박 내지만…얼마 받는지 몰라

노후 준비를 위해 평범한 직장인이 얼마를 내고 있는가. 이는 필자가 연금과 관련한 외부강연을 할 때 항상 청중에게 하는 질문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유관 업무를 하는 중앙정부 공무원이나 연금 사업자인 금융기관 임직원도 이 답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얼마를 내는지도 모르는데,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나아가 그것이 노후 보장에 충분한지,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제도를 만드는 사람과 이를 운용하는 사람도 모르는데 평범한 국민이 이를 알 리 없다. 납입금은 꼬박꼬박 떼어가지만 얼마를 주는지 잘 알려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납입금과 수령액의 명확한 기준이 있고, 정기적으로 납입금액과 은퇴 후 예상 수령금액을 가입자에게 통지한다.

하지만 사적연금인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은 이러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가입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5년이 지난 2020년 11월이 돼서야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태스크포스에서 퇴직연금 운용보고서 연 1회 통지를 의무화했다. 이 보고서는 납입원금 대비 누적 수익률과 연평균 수익률을 담아야 하며, 가입자가 운용 업체에 지불한 자산 그리고 운용 관리 수수료 누적 총액을 안내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연금수령예상액을 연령별, 연도별로 안내받을 수 있다. 반가운 일이지만,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


사적연금 수익률 1%대 불과…연금 사업자 배만 불려

그간 본 지면을 통해 국민연금의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내는 돈보다 훨씬 많이 받도록 설계되었기에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많은 비판과 우려에도 어쨌든 국민연금은 그동안 아주 우수한 운용 성과를 거뒀다. 폭락장에도 거의 손실을 보지 않는 안정적인 운용을 하면서도 연평균 수익률이 5% 중반을 넘었으니 말이다. 유례없는 저출산과 급격한 고령화로 제도 도입 시기에 가정했던 뒷세대가 앞세대를 부양하는 모델이 더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 국민연금의 문제이지, 운용만 놓고 보면 칭찬받아 마땅할 수준이다.

그에 비해 사적연금의 수익률은 국민연금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1%대의 처참한 수준이다. 그나마 국민연금은 운용보수를 따로 받지 않지만, 사적연금은 은행·보험사·증권사 등 모든 연금 사업자가 거둬가는 수수료가 매년 1조원에 달한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국가의 노후 보장체계의 일환으로, 제도에 의해 강제적으로, 혹은 국가가 제공하는 세제혜택 때문에 가입하는 것이다. 교육 서비스를 국가가 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사립학교가 있는 것처럼, 국민연금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기에 사적연금이 존재하는 것이다. 연금은 금융 상품이 아닌 국가복지제도의 일환이다. 정부와 금융 업체가 이러한 자각이 있었다면 적금 이자만도 못한 수익률을 주면서 매년 꼬박꼬박 거액의 수수료를 받아 가는 현실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노후소득 보장체계는 총체적 난국이다. 공적연금은 지속 가능성이 없고, 사적연금은 본연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 채 연금 사업자의 배만 불리고 있다. 경제 활동을 하는 동안 세전소득의 4분의 1을 쉬지 않고 부으면 노후 걱정이 없어야 할 법도 한데, 강남에 건물 몇 채 있는 자산가가 아니라면 누구도 은퇴 후 삶에 대한 걱정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민은 이미 많은 돈을 내고 있지만, 정부와 업계가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 지금이 마지막 기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공적연금이든 사적연금이든, 개혁이 늦어질수록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창궐하고, 정치적으로는 어수선한 이 시기, 연금 개혁을 생뚱맞은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금 개혁에 좋은 시기란 없다. 선거가 있어서, 북한이 핵실험을 해서, 경제가 안 좋아서…, 이유를 대자면 끝이 없다. 그 핑계로 우리 사회는 그간 연금 개혁을 도외시해왔고,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2020년 10월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이 끝나간다는 본 칼럼이 인용된 바 있다. 여야 모두 연금 개혁 필요성에 공감했고, 여·야·정이 합의하는 사회적 기구를 만들자는 주장까지 나온 바 있다. 필자는 여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제도에 의한 노후소득 보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다.

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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