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서울대 물리학 학·석사, 사법시험 48회, 사법연수원 38기
김창환
서울대 물리학 학·석사, 사법시험 48회, 사법연수원 38기

지난해 그림 동화책 ‘구름빵’ 작가로 유명한 백희나(49)씨가 출판사 등과 벌인 저작권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대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문학상’을 받은 백씨는 ‘구름빵 그림책(이하 구름빵)’에 관한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이유로 계약의 효력을 다퉜지만, 대법원은 백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름빵은 구름을 반죽해 만든 빵을 먹고 하늘로 떠오른 아이들이 회사에 간 아빠에게 빵을 가져다준다는 이야기를 3차원 공간에 2차원 평면의 캐릭터들을 통해 독창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2003년 출판사로부터 850만원을 지급받고, 출판사에 구름빵의 이차 저작물 작성권까지 포함한 저작재산권 일체를 포괄적으로 양도하기로 하는 내용의 저작물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작가는 이후 구름빵을 창작해 출판사에 제공했다. 출판사 측은 구름빵을 국내외에서 출판하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등의 수익 사업을 전개해 수십억원의 이익을 얻었다. 그사이 작가와 출판사 간 분쟁이 생겨 작가는 2017년 계약 해지 등을 주장하며 출판사 측을 상대로 저작권침해금지 등의 소를 제기했지만, 그 소송이 작가의 패소로 최종 종결된 것이다.

소송에서 작가는 포괄적인 저작재산권 양도 조항이 불공정해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해당 조항이 계약이 체결된 2003년 당시 원고가 신인 작가였던 점을 고려해 저작물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적절히 분담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봤다.

구름빵 사건이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출판계에서 자주 체결된 포괄적인 저작권 양도계약의 불공정성 여부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다. 계약 체결 시 양 당사자가 계약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 처한 상황 및 상대적인 지위의 우월관계 등은 사례별로 다르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방 당사자에게 불리한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계약이 민법상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면 무효지만,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면 균형이 맞지 않는 계약도 효력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

계약의 불균형은 입법을 통해 시정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저작권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추가보상청구 조항을 신설했다. 저작자가 저작재산권을 양도한 대가로 받은 보상과 양도 이후에 양수인 등이 해당 저작물 이용에 따라 취득한 수익 간에 현저한 불균형이 발생한 경우에는 저작자가 양수인에게 추가적인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후적인 추가 보상을 통해 저작자에 대한 보상과 양수인 등이 거두는 수익 간의 불균형을 시정하고자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두 차례 공청회를 거쳐 추가보상청구권의 주요 골자를 유지한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큰 폭의 개정안)을 올해 1월 중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다.


구름빵 그림책. 사진 조선일보 DB
구름빵 그림책. 사진 조선일보 DB

저작재산권 가치 예측의 어려움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계약의 체결, 상대방, 내용, 형식을 자유로이 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계약자유 원칙은 민법의 대원칙이다. 계약이 성립된 이상, 무효 사유나 의사 표시의 하자가 없는 이상, 계약의 내용은 당사자를 구속한다. 계약에서 정한 대가 외에 추가 지급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률로 저작재산권의 양도에 계약자유의 원칙을 일부 제한해 추가적인 보상을 제공하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계약의 양 당사자가 대등한 관계가 아닐 경우 법이 양 당사자의 계약 관계에 관여하는 경우가 있다. 저작재산권 양도에서도 출판사, 기획사, 영화제작사 등에 대해 저작자가 열위에 있고, 협상력도 약한 경우가 있기에 그러한 관여의 필요성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이유뿐일까? 관계의 우열은 다른 계약에서도 있을 수 있다. 여기에는 저작재산권의 무체재산권으로서의 성격도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저작권의 대상인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저작물을 창작한 저작자가 가진다. 그중 저작재산권은 저작물을 복제, 공연, 공중송신(방송, 스트리밍 등이 이에 속한다), 전시, 배포, 대여, 이차적 저작물의 작성·이용 등을 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다.

유체물에 관한 소유권자는 해당 유체물을 팔거나 사용해 얻는 이른바 교환이익과 사용이익을 독점적으로 향유한다. 그런데 그 이익은 대부분 한정적이다. 집을 예를 들면, 매매가와 임대료는 거의 예측 범위 내에 있다.

그러나 무체재산권인 저작재산권은 다르다. 웹툰에 대한 복제권과 배포권을 가지고 있으면, 해당 웹툰을 횟수에 제한 없이 인쇄해 사람들에게 인쇄본을 양도하거나 빌려줄 수 있다. 공중송신권을 가지면 전 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어디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게 할 수 있고, 이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가지면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독점적 권리는 원칙적으로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 후 70년까지 행사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해당 저작물을 많이 보면 볼수록 수익도 많고 저작재산권의 가치도 높아지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수익도 적고 저작재산권의 가치도 낮게 형성된다.

이처럼 문화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이 해당 저작물을 향유할지, 얼마나 오랫동안 해당 저작물을 향유할지 등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따라 해당 저작물의 저작재산권 가치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문제는 저작물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구름빵처럼 구체적으로 창작되기 전이거나 사람들에게 공표되기도 전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기에 저작자나 출판사 모두 일시금으로 포괄적인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서로 분담하는 것이 된다. 출판사는 아무래도 저작물에 대한 이용 허락만 받는 것에 비해 저작재산권을 포괄적으로 양도받기 위해서는 대가를 더 지급해야 한다. 저작물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양수한 저작재산권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이것이 출판사가 부담하는 위험이다.

저작자는 이용 허락만 하는 경우에 비해 저작재산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하면 대가를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저작물이 상업적으로 성공해도 추가적인 대가를 받을 수 없다. 이것이 저작자가 부담하는 위험이다. 법원은 구름빵 사건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서로 위험을 분담한 부분에서 결과적으로 발생한 현저한 불균형은 사후적 이해조정의 영역은 될 수 있을지언정 거래 자체를 무효로 할 불공정의 영역은 아닌 셈이다.


이해 균형 달성할 저작권법 필요

저작물의 창작성과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작물의 성공에 저작자의 창작성이 기여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저작자가 일시금을 받고 저작재산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해 저작물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관한 위험을 부담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실제 해당 저작물이 크게 성공했음에도 저작자에게 아무런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저작자의 창작 의욕은 크게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판사, 기획사, 영화제작사, 투자사 등 문화 산업 종사자들은 저작물의 이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화·예술계의 종사자인 저작자와 예술가의 창작을 유도하기도 한다. 저작물의 성공에는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하거나 판촉하는 행위 등도 필요하다. 문화 산업 종사자들은 이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잦다. 저작물의 성공에는 이들의 기여도 적지 않기에 이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도 열어 둘 필요가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저작권법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저작자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문화 산업 종사자들에게 투자 동기를 지속해서 부여하는 조화롭고 균형 잡힌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저작권법 전부개정안이 조만간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