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1월 6일 친(親)트럼프 시위대 일부가 미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 결과를 인증하려던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다. 이 가운데 최소 5명은 트럼프 대통령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월 13일 하원에서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내란선동 혐의를 적용한 민주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트럼프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에서 두 번 탄핵된 대통령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제이미 래스킨 하원의원은 소추안을 낭독하며 “트럼프는 미국의 안보와 정부 제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다”고 했다.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했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 정권교체를 축하한다며 ‘해방’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이제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프리 삭스(Jeffrey D.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현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 디렉터
제프리 삭스(Jeffrey D.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현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 디렉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실정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축하하며, 트럼프의 임기가 생동감 넘치는 미국 백인 우월주의 정치를 구현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종종 1960년대의 차별주의적인 미 남부 지역의 주지사처럼 말했고, 2020년 대선에서 패한 후에는 마치 미국 남북전쟁을 하루 앞둔 차별주의적 상원의원처럼 말했다. 트럼프의 분열적 정치에 대한 승리를 이어가려면, 우리는 그에게 권력을 부여해준 인종차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다민족 사회가 직면한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사회의 일부분인 백인, 노년층,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 남부와 서부 및 교외와 지방 거주민들 그리고 복음주의 기독교인에게 과거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적인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납득시켰다. 이런 모습에 미국 성인의 20~25%를 차지하는 유권자들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층이 됐다. 당시 트럼프는 300만 표 차이로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유권자 투표에서는) 패배했음에도, (선거인단 확보에서) 공화당을 사로잡은 뒤 승리할 수 있을 만큼의 지지층을 확보했다.

미국 정치의 다른 변수들이 2016년 트럼프의 승리를 돕기도 했다. 미국의 투표율이 높았다면, 다른 많은 국가처럼 유권자 투표 등록이 자동으로 이뤄졌다면, 투표가 장려되거나 의무화됐다면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흑인과 빈곤층,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마주하는 장애물들은 미국 정치가 오래 겪어온 문제다. 장애물은 부유한 백인들이 정치⋅경제적 패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한마디로 이 장애물은 트럼프 같은 사람의 당선을 가능하게 해줬다.

트럼프의 저속한 정치는 인종차별적 호소력을 집요하게 보여줬다. 트럼프 지지층은 1월 6일 당시 바이든 당선인의 당선 인증 절차를 진행하는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린치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인종차별주의적 정치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은 인종차별주의가 권력의 구조를 형성하는 다른 다민족 국가들에서도 나타난다. 부패하고 교활한 정치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생각해보자. 네타냐후는 아랍인을 폄하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기본적인 정의를 무시하며 권력을 유지해왔다.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우파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고,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배타주의적 정치를 공유해왔다.

‘열대지역의 트럼프’라 불리는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생각해보자. 보우소나루도 트럼프와 인연은 단순히 스타일과 기질 이상이다.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 단체들은 보우소나루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보우소나루는 아프리카-브라질 문화와 브라질의 토착민을 공격하며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밀한 관계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각에선 푸틴이 트럼프에 대해 ① 콤프로마트(Kompromat)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둘이 재정적 이익을 공유한다는 의견도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의 정치적 친화력이다. 푸틴은 자신이 러시아 다민족 사회의 진정한 지도자임을 러시아인에게 상기시키며 성공할 수 있었다. 푸틴이 러시아 정교를 정치적으로 수용한 것은 트럼프가 백인 복음주의자를 수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또 다른 트럼프 숭배자였다. 2020년 트럼프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디의 지지층은 인도의 이슬람 소수민족을 혐오하는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를 포함한다. 모디 정부가 2019년 다수의 이슬람교도가 있는 카슈미르(Kashmir)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것은 인도 내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민족 탄압의 적나라한 예다.

이처럼 민족우월주의는 모든 다민족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트럼프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거주하는 이슬람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탄압을 실제로 칭찬한 것이 우연은 아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2019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이슬람교도 수용소 건설 계획에 대해 ‘옳은 일’이라고 지지를 표명한 사실을 폭로했다.) 마찬가지로 미얀마가 무슬림 로힝야족을 강제 추방했을 때 트럼프 정부는 침묵했다.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 정치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토착민에 대한 박해일 것이다. 세계의 여러 토착민은 땅을 빼앗기고, 강제로 노예화되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가난에 내몰렸다. 하지만, 이 모든 약탈은 정복자들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해악과 대량학살까지 가해진 것에 더해 정복자들은 토착민을 비난했고,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고, 위험하다며 모욕했다.


퇴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월 20일(현지시각) 지난 4년간 생활해온 백악관을 나서 사우스론에 대기하고 있는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퇴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월 20일(현지시각) 지난 4년간 생활해온 백악관을 나서 사우스론에 대기하고 있는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트럼프 패배… 분열 사회 치유의 시작 기회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트럼프의 패배 그리고 미 의회 난입 사태를 주도한 폭도를 맹비난하는 미국의 여론은 우리가 최악의 본능, 두려움 그리고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훈을 알려줬다. 미국의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권력을 점점 잃고 있고, 그들도 이 사실을 안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권력에서 몰아냈다. 의회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전날, 두 명의 친트럼프 성향 현직 의원이 있는 조지아주의 유권자들은 처음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인을 상원의원으로 선출했다.

트럼프의 패배는 깊은 상처를 입은 미국 사회뿐 아니라 도처에 있는 다민족 분단사회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기회가 된다. 인종차별주의에 기반한 혐오 범죄와 민족우월주의로 통치할 수는 없다.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 세계 각국 정부들은 증오 세력을 쫓아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 1948년,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새로운 유엔의 모든 회원국은 ②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했다. 이 웅장한 선언은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신념, 국가나 사회적 기원, 재산, 출생지 그리고 기타 지위 등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 원칙을 바탕으로 했다.

세계 인권 선언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침서가 돼야 한다. 2023년 세계 인권 선언은 75주년을 맞이한다. 그리고 우리는 혐오 세력, 선동가, 분열자를 거부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40만 명을 남기고 떠났다.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린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사태를 종식시키고 깊게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Tip

러시아 말로 몰카나 도청 장치 등을 이용해 유명 인사들의 약점을 잡은 뒤 협박하는 공작을 뜻한다.

1948년 유엔 총회 가입국 58개 국가 중 50개국이 찬성해 채택된 최초의 포괄적인 인권문서.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연한 인권 침해를 반성하고 인간 기본권 회복을 위해 선언문을 채택했다.

제프리 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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