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 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황부영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 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브랜드는 결국 ‘특정 대상에 대해 강렬하게 떠올리는 생각, 연상, 단어, 문장’이다. 할리 데이비드슨은 ‘자유’ ‘해방감’이다. 애플은 ‘쿨함’ ‘창의’다. 기업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의 이름을 자신의 기업명이나 제품명에 쓰려는 이유는 핵심 연상이 쉽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단순한 욕심 때문이다. 키플링(Kipling)이란 브랜드가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소설 ‘정글북’으로 유명한 러디어드 키플링의 이름을 쓴 벨기에 브랜드다. 누구나 어릴 적 한번은 읽어봤을 책이 ‘정글북’이지만 우리는 작가의 이름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영어 쓰는 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키플링’을 접하면 바로 정글북을 떠올린다. ‘정글북’이라고 하면 ‘정글’이 핵심 연상으로 바로 떠오른다. 정글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원시성, 원색과 같은 화려한 색채, 규범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아니던가? 그래서 키플링의 제품도 그러하다. 키플링에서 옷이 나온다면 최소한 정장은 아닐 것이다. 한때 키플링은 온라인에서 웹진(잡지 스타일의 페이지)을 발간한 적이 있는데 그 웹진의 이름이 정글북이었다.

‘에포님(고유 명사가 보통 명사가 되는 것)’ 브랜드를 쓰는 본질적인 이유는 기업의 철학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밝히는 데 있다. ‘우리 브랜드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선언하고 싶어서다. 에포님 브랜드를 통해 이름을 딴 사람의 업적이나 유산, 신념이 자신의 브랜드 지향점과 일치한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에포님 브랜드를 쓰지만 그 사람 하면 강렬하게 떠올려지는 업적, 유산, 신념과 상관없는 행보를 보인다면 그 기업의 브랜딩은 표리부동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미 확보된 인지도가 있다고 사람 이름을 함부로 브랜드에 쓰면 안 된다. 그 사람의 업적이나 신념과 궤를 같이하는 기업 활동을 견지할 의지가 없다면 특히 그렇다. 배려 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연상하게 되는 ‘고디바’를 쓰고도 거기에 걸맞은 기업 활동을 보이지 못하면 유명한 브랜드는 되더라도 성공적인 에포님 브랜드가 되지 못하는 이치와도 같다.

포크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 중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가 있다. 뜬금없이 ‘철새는 날아가고’로 번역된 노래다. 이 노래는 원래 라틴 아메리카 페루의 민속 음악이다. 페루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었다. 페루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투사가 있었다. 처절히 싸우던 그는 마침내 생포되었으나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사지가 찢겨 죽음을 맞는다. 그 독립투사가 ‘투팍 아마루(Tupac Amaru) 2세’다. 사람들은 그가 콘도르로 환생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엘 콘도르 파사는 스페인 식민 세력에 항거한 투팍 아마루가 죽어서도 콘도르가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비원이 담겨 있는 노래다.

투팍 아마루라는 이름을 승계한 뮤지션이 있다. 전설적인 힙합 가수인 Tupac Amaru Shakur(1971~96), 바로 2Pac이다. ‘투팩’이라 읽지 말라. ‘투팍’이다. 불법적인 지배에 항거하는 피지배자의 꺾이지 않는 투쟁심을 이름에 담고자 했다. 2Pac이 흑인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원주민의, 피지배계급의 저항정신을 기리는 뜻이었으리라. 자신의 지향점을 명확히 밝히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의 무덤에는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은 안 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을 바꾸는 생각에 불을 붙일 수는 있다고는 보장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2Pac은 힙합 뮤지션이자 시인이며 사회운동가로 추앙받는다. 빌려온 이름에 걸맞게 살았다.


테슬라는 미국의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활용한 에포님 브랜드를 만들어 ‘전기차를 쓰는 것이 섹시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 테슬라
테슬라는 미국의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활용한 에포님 브랜드를 만들어 ‘전기차를 쓰는 것이 섹시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진 테슬라
벨기에 브랜드 키플링은 소설 ‘정글북’으로 유명한 러디어드 키플링의 이름을 사용한 에포님 브랜드다.
벨기에 브랜드 키플링은 소설 ‘정글북’으로 유명한 러디어드 키플링의 이름을 사용한 에포님 브랜드다.

에포님에 걸맞은 사업하면 시너지 효과

무선 전력 송신 기술을 상용화하려 했던 과학자가 있었다.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인 출신의 미국 전기공학자이며, 미국 기업 GE를 등에 업은 에디슨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 바로 니콜라 테슬라다. 그는 웨스팅하우스와 손잡고 2상 교류 전동기를 최초로 상용화하여 오늘날 사용되는 교류 전기 인프라 구축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에포님 브랜드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뉴욕에 JFK국제공항이 있다면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는 니콜라 테슬라 국제공항이 있다. 자기장 단위 ‘T’도 테슬라에서 따온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의 보급과 대중화’라는 테슬라의 업적을 자신들의 지향점으로 삼은 에포님 브랜드도 있다. 그의 이름 ‘니콜라 테슬라’에서 니콜라를 에포님 브랜드로 쓰는 ‘니콜라 모터(Nikola Motor)’다. 미국의 수소차 기업인 니콜라는 작년 중반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엄청난 기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보유한 기술이 없다’는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서 추락하고 있다. 이름만 빌렸을 뿐 이름값은 못 한 경우에 해당한다.

사실 발명가 테슬라가 유명해진 것은 역설적으로 테슬라 전기차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새로운 에너지로 사람들의 삶을 바꾼다’는 테슬라의 가치를 기업 활동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한다. 테슬라의 직원들은 신념에 찬 목소리로 “우리는 그저 자동차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구를 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동의하든 안 하든 테슬라는 그런 신념으로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 브랜드 관점에서 보면 테슬라의 행보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테슬라에서 나온 자동차의 개별 모델에는 ‘모델S’ ‘모델X’ 등 모델이란 말을 앞에 붙인다. 자동차 회사 중 그런 식의 네이밍 형태를 취하는 곳은 근 100년간 없었다. 왜 그럴까?

100여 년 전, 1908년 포드는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그때 내세웠던 자동차가 모델T였다. 이전에는 모델A도 있었다. 머스크는 자동차의 대중화를 열었던 포드처럼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네이밍에 담은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테슬라의 모델은 ‘S, 3, X, Y’가 있다. 애초 모델3를 ‘모델 E’로 하려고 했으나 이미 등록이 되어 있어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애플이 ‘i’를 활용해서 네이밍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계만큼은 이미 다른 곳에서 등록을 해놓아서 ‘i-watch’로 못 쓰고 ‘apple watch’로 쓰는 것과 유사한 사례라 하겠다. 테슬라는 ‘3’을 표기할 때 알파벳 ‘E’와 비슷하게 보이게 한다. 머스크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전기차를 타는 것이 섹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