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숙 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현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안명숙
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현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학령기 남자아이 둘을 둔 네 식구의 가장 김조선(가명)씨는 서울 송파구의 전용 60㎡ 아파트에 10년여간 거주해왔다. 아이들이 크면서 좀 더 큰 평형으로 옮기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청약에는 번번이 실패한 데다 본인이 거주하는 집보다 이사 가고 싶은 아파트 가격의 오름폭이 더 큰 탓에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반기 기회를 잡았다. 대출 규제 및 보유세 강화로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본인 소유 주택과 이사하고 싶은 아파트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었다. 김씨는 고민 끝에 모아놓은 자금과 신용대출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끌어 전용 85㎡ 아파트를 19억원에 계약했다. 이후 본인이 살던 아파트는 12억원에 한 부산 거주자에게 팔고 김씨가 다시 그 집에 반전세 임차 계약을 했다. 이제는 본인이 매입한 주택을 가급적 비싼 가격에 전세를 놓아 갭을 충당하면 일단락되는데 매입한 주택의 전세가 나가지 않아 은근히 속앓이를 하고 있다.

만약 현재 거주하는 집과 이사하려는 집의 차액만큼 대출이 가능했다면 김씨는 현재 거주하는 집을 시세에 팔고 매입한 주택으로 입주했겠지만, 대출 규제로 김씨는 갭투자를 통해 희망했던 주택의 자금을 조달하게 되면서 다른 주택의 임차인이 되었다.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어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던 김씨의 니즈(필요)와 서울에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하려는 부산의 갭투자자 니즈가 맞아떨어져 두 채의 아파트는 결국 갭투자자로 소유권이 바뀌었다.

매매 시 전세 보증금과 매매가의 차이(갭)만 지불하고 매입하는 갭투자는 이제는 주택시장에서 부인할 수 없는 투자 방식의 대세가 되어 버렸다. 물론 주택금융이 발전하지 못한 우리나라 실정에서 생겨난 전세제도가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사금융 역할을 하여 주택임대차 시장의 근간이 되어 왔기 때문에 갭투자도 예전부터 존재하던 거래 패턴이었다. 그러나 최근처럼 갭투자가 중요한 투자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나아가 주택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까지 확대된 것은 과거 집값 급등기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출규제, 갭투자 확대시켜

갭투자 확대 이유는 우선 정부의 대출규제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9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 한도가 축소되고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대출길이 막히자 상승하는 전세 보증금은 금융권 대출보다 이자 부담도 적고 한도도 높은 대출 상품이 되었다.

과거와 달리 갭투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정보의 비대칭 해소 및 집단지성에 의한 학습 효과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갭투자를 통해 소액의 자기 자금으로 전세보증금 레버리지를 활용, 거액의 부동산을 소유하게 되었고 주택가격 상승은 투자 수익을 극대화했다. 갭투자의 대상은 그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아 매매가와 전세가의 갭이 작고 다주택자라도 취득세 및 양도세 중과 부담이 작은 기준시가 1억원 이하의 지방 저가 아파트가 타깃이 되고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아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후 최근 3개월간 전국적으로 갭투자가 증가한 지역 1위는 충남 천안 서북구다. 191건을 기록해 전체 거래 중 8.3%를 차지했다. 2위는 충남 아산시 181건(갭투자 비중 7.1%), 3위는 경북 구미시 179건(6.3%), 4위는 인천 연수구 171건(7.2%), 5위는 경기 남양주시 165건(5.7%)순으로 나타났다. 이제 갭투자 대상은 이미 가격이 오른 서울이나 경기 인기 지역보다는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충남 아산 곡교천 너머로 늘어선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충남 아산 곡교천 너머로 늘어선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갭투자 증가,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져

갭투자 증가는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1월 25일과 2월 1일 조사에서 아산시는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전주 대비 각각 0.4%, 0.3%를 기록했고 충남 천안 서북구도 1월 25일 조사에서 전주 대비 0.3% 올라 비교적 매매가 상승세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은 충남권에서도 최근 3개월간 외지인 거래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한 곳으로 천안 서북구는 전체 거래 3174건 중 외지인 거래가 1095건으로 34.4%를 차지했고 아산시는 1931건 중 외지인이 31%인 599건을 매수했다. 결국 외지인의 갭투자가 늘면서 지방의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거래를 살펴보면 아산시 배방 자이 115㎡를 지난해 12월 1억9000만원에 매수한 뒤 1월에 2억원에 전세를 놓아 오히려 임대인은 단기에 마이너스 갭투자 차익을 얻었다. 최근 상승폭이 커지고 있는 경북의 경우도 마이너스 갭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포항 두호동 대림1차 109㎡를 1억669만원에 매입하여 올 1월에 1억3000만원에 전세를 놓아 2331만원의 차익을 얻는가 하면 구미시 형곡동 이천맨션 1차 72㎡는 지난해 11월 3000만원에 매입하여 12월에 5800만원에 전세 계약을 하여 한 달 만에 2800만원의 마이너스 갭투자 차익이 발생했다.

갭투자가 증가하면서 오히려 전셋값 상승세는 다소 주춤한 양상이다. 2월 1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0% 올라 85주 연속 오름세다. 다만 최근 4주 동안 전셋값 상승률은 0.13%→0.12%→0.11%→0.10%로, 오름 폭이 연속 둔화했다. 서울 도심권으로 놓고 보면 전셋값은 5주 연속 둔화세(0.14%→0.13%→0.12%→0.11%→0.08%)다. 지난해 임대차법 시행 이후 급속하게 감소했던 전세 매물이 증가하면서 상승 폭은 둔화했지만, 갭투자 전세 매물은 비교적 고가로 여전히 세입자들에게는 ‘넘사벽’이 되고 있다.

매매가와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아파트가 증가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떼일 것을 우려한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도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건수와 규모(금액)는 각각 17만9374건, 37조2595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전체 가입 건수(15만6095건)와 규모(30조6443억원)를 모두 넘어섰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집주인이 임차계약 기간 만료 후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HUG가 가입자(세입자)에게 대신 보증금을 지급(대위변제)하고 HUG가 추후 구상권을 행사해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청구하게 된다. 2013년 9월 출시한 이 상품은 2015년 가입 규모가 7221억원 수준에 그쳤으나 2016년 5조1716억원, 2017년 9조4931억원, 2018년 19조367억원 등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 서울보증보험 3곳에서 취급하고 있는데 기관별로 보증한도 및 연간 보증료율이 차이 난다. 전셋값이 급등하고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집값보다 전셋값이 높은 깡통전세로 인해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세입자들은 과도하게 오르는 전세보증금을 충당하기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보증보험을 가입하고 아파트 청약 당첨을 고대하며 청약종합저축을 매달 납입하고 있다. 이래저래 거주 비용이 증가하고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전세 물량도 많아지고 궁극적으로 집값이 안정돼야 그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

정부가 2·4대책을 통해 83만 호 공급을 발표했다. 조급해진 수요자들의 심리적 안도감을 줄 수 있을지 설 이후 시장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