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과,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한동안 취미처럼 김치를 담그곤 했다. 당시 살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제철 김치 재료를 파는 상인들이 항상 즐비했다. 봄이면 톡 쏘는 갓김치, 여름이면 시원한 열무김치, 가을엔 자극적인 파김치, 그리고 겨울엔 무와 배추로 김장을 했다. 반찬집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있을 리도 없고 가끔은 간을 잘 못 맞춰 ‘소태’가 되기도 하지만, 김치를 담갔다는 핑계로 주변 사람을 불러 소주 한잔 마시는 재미는 맛없는 김치를 계속 먹을 충분한 이유였다.

하지만 언제가부턴 더 이상 김치를 담그지 않는다. 재래시장에서 가격 흥정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흥정엔 젬병이라 상인이 부르는 값을 그대로 주고 물건을 사는 편이다. 바가지를 써봤자 몇천원이고, 재래시장이 마트보다 김치 재료 값이 싼 건 사실이지만, ‘호갱님’이 된다는 불쾌한 느낌은 취미를 접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에도 재래시장이 흥하지 않는 건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기 때문 아닐까.

시장이 시장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정가(fair price)로 사고 팔 수 있다는 신뢰가 필수다. 사전에 꼼꼼히 조사를 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흥정을 해야만 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다면 시장 참여자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필연이다. 사람이 모이지 않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이 원칙은 자본시장에도 적용된다. 자본시장의 가장 큰 역할은 잉여자본이 자연스레 산업에 투자돼 경제발전을 꾀하는 건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잉여자본을 가진 사람이 피와 땀으로 모은 돈을 기꺼이 특정 기업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주가가 공정가라는 확신이 없다면 자본시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호갱’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주식의 공정가는 오롯이 시장에서 결정된다. 삼성전자 같은 대장주는 거래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완전경쟁시장에 가깝고, 따라서 다른 기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공정가격이 유지된다. 하지만 소형주, 특히 기술주로 대표되는 혁신기업은 이야기가 다르다. 거래 자체가 많이 일어나지 않기에 완전경쟁시장의 원칙에 의한 공정가격 수렴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안정된 회사에는 꾸준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보고 투자하지만, 혁신기업에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 자체에 투자하게 된다. 결국 공정가에 대한 정량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게다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가격이 오르는 것이 좋으므로 공정가보다 현재 가격이 더 높게 성립됐을 가능성이 크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기에 가격이 높다고 시비를 걸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작전세력’이 붙는 주식이 대부분 무형자산이 핵심 자산인 혁신기업이 되는 이유다. 적당히 호재를 만들어 가격을 띄워 놓은 뒤 급등한 가격을 보고 들어온 ‘주린이’들을 잡아먹는 것이 전형적인 스토리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자본시장을 통해 혁신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코스닥이 혁신기업들의 자본 조달 창구로서 매력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매출이 많지 않은 코스닥시장 소형주에는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은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공매도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자본시장의 본질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공매도는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아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 위주로 시장가가 형성되는, 즉 가격이 상승하는 방향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큰 주식도 공정가에 수렴하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다. 현재 주식을 들고 있지 않더라도 남에게 주식을 빌려 팔 수 있게 함으로써 사자 세력과 팔자 세력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작전세력은 언제나 나타날 수 있으니, 이들을 잡아 먹는 ‘꾼’을 들여오는거다.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원리다. 공매도를 무기로 든 꾼들이 있으니 작전세력은 쉽게 작전을 걸지 못한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도 공정가로 주식을 구매할 수 있어 ‘호갱님’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기에 잉여자본이 쉽게 산업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건전한 선순환 구조를 형성케 한다. 공매도가 잘 작동한다면 말이다.


게임스톱 사건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키스 질(Keith Gill·레딧 아이디 deepf-kingvalue)이 2월 18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게임스톱 사건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키스 질(Keith Gill·레딧 아이디 deepf-kingvalue)이 2월 18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관계당국, 공매도 제대로 기능토록 손봐야

지난 1월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게임스톱’ 주가 폭등 사건은 공매도가 변동성을 극도로 확대할 수 있음을 보여줬던 역설적인 사례다. 현재 공매도 제도의 취지와는 상반된 결과였다. 게임스톱은 미국의 오프라인 게임 유통 업체다. 온라인 플랫폼이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되어가는 현실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사업이 악화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게임스톱이 아주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었다. 이에 헤지펀드들은 원래 20달러 전후로 거래되던 게임스톱을 고평가되었다고 판단하고 공매도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부터 주식 발행 수의 140%에 육박하는 과도한 공매도가 걸려있다는 것이 미국의 주식 투자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을 중심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공매도는 누군가의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이므로 언젠가는 주식을 사서 원래 주인에게 되갚아야 한다. 현재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단합하여 주식을 팔지 않고, 어쩌다 나온 물량도 높은 가격으로 사버리게 된다면 거래되는 물량 자체가 없기에 주가는 폭등한다. 공매도를 건 입장에서는 반드시 주식을 사서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므로 폭등한 가격에라도 주식을 사야만 한다. 이는 사자 주문을 더욱 늘려 추가적인 가격상승을 유발하게 된다. 작전세력을 잡아먹어야 할 꾼이 되레 작전세력에 잡혀 먹히는 셈이다. 이것을 숏 스퀴즈 (short squeeze)라 부른다.

결과적으로 게임스톱의 주가는 1월 말 장중 500달러까지 치솟게 됐고, 이 과정에서 공매도를 걸었던 헤지펀드들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게 됐다. 소위 ‘미친 1주일 (The Wild Week)’이 지나자 주가는 당연하게도 폭락해 4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매도를 건 헤지펀드들의 손실은 그들의 책임이다. 헤지펀드들은 공매도의 위험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 없이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부화뇌동식으로 매매해 큰 손실을 입었다. 이러한 사건이 반복된다면 공정가격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고, 따라서 자본시장을 통해 잉여자산이 산업에 투자되어 혁신이 일어나는 선순환 구조는 달성될 수 없다.

혁신은 비싸다. 성공적인 혁신에는 아주 큰돈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혁신의 주인공은 뛰어난 역량과 수도 없이 찾아올 어려움을 이겨낼 끈기를 갖춘 창업자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사기라고 생각할 아이디어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 소중한 쌈짓돈을 투자한 수없이 많은 투자자가 없었다면 구글이나 테슬라 같은 기업은 없었을 것이다. 지속적인 혁신은 건전한 자본시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공정가를 지키는 것은 혁신을 위한 선결조건이다. 따라서 공매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공매도 제도는 원래 목적과는 반대로 가격의 급등락을 불러올 수 있음이 증명됐다. 게다가 미국보다 한국의 공매도 제도는 허술한 점이 훨씬 더 많다. 관계당국은 공매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손볼 필요가 있다.

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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