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이 참여하는 주요 7개국(G7)은 2월 19일(현지시각) 화상회의를 한 뒤 공동성명을 내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빠른 해결을 위해 빈곤국 지원을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G7은 세계보건기구(WHO) 중심의 국제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 대한 지원금을 현행 35억달러(약 3조9000억원)에서 75억달러(약 8조3000억원)로 늘리기로 했다. 당초 코백스 퍼실리티는 빈곤국도 선진국과 같은 시기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나서는 걸 목표로 했다. 그러나 이 목표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백신 민족주의’에 밀려 실패했다. 그사이 러시아와 중국이 빈곤국에 백신을 적극적으로 공급하며 존재감을 키우는 분위기다. G7의 이번 합의가 러시아·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강화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포함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필자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선도국의 지원이 개도국을 위한 일인 동시에 선진국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한 상황에서 글로벌 수준의 집단 면역을 서둘러 시도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모든 국가가 감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Mohamed A. El-Erian) 알리안츠 수석 경제 자문, 전 국제통화기금(IMF) 중동 담당 부국장, 전 하버드대학기금 CEO
모하메드 엘 에리언(Mohamed A. El-Erian)
알리안츠 수석 경제 자문, 전 국제통화기금(IMF) 중동 담당 부국장, 전 하버드대학기금 CEO

주요 7개국(G7)은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모든 사람이 안전해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G7이 전 세계에 ‘코로나19 백신과 진료·치료에 대한 더 저렴하고 공정한 접근’을 촉구하기 위해 추가 대책을 발표한 배경이다. 이 대책을 실행에 옮기려면 각국은 정치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개발도상국 지원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① 공급의 불균형은 극명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에 따르면 10개 국가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75%를 장악했다. 반면 130개 이상의 나라는 코로나19 백신을 단 1회분조차 얻지 못했다.

G7은 이런 불평등을 직시하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관련 원조를 75억달러(약 8조3000억원)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또 G20 국가와 다자기구 등에도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글로벌 협력체(ACT-Accelerator)’를 통한 개도국 지원 강화를 촉구했다.

많은 개도국이 직면한 위기를 고려할 때 이 같은 조치를 하는 게 단지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선진국 이익에도 부합한다. 개도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퇴치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②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선진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 백신을 무력화하고 감염, 입원, 사망 그리고 국가 봉쇄라는 끔찍한 상황을 반복해서 만드는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미 코로나19에 맞선 인류의 전투는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등장한 변이 바이러스로 위기에 봉착했다. 변이 바이러스는 감염 속도마저 빠르다. 다행인 건 아직 지금의 코로나19 치료법과 백신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수준까지는 아니란 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은 더는 우승 후보가 둘뿐인 경기가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존 바이러스뿐 아니라 변이 바이러스도 퇴치할 수 있는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많은 국가가 난관을 만날 것이다. 그간 감염 억제와 백신 투여에 상당한 진전을 보인 국가라고 해도 해외에서 온 변이 바이러스를 그냥 감수하거나 자국민의 활동을 막는 봉쇄 조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 물론 둘 다 지속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

코로나19와 전투에서 다른 이를 돕는 게 국가적 우선순위가 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이미 다른 나라에 무상으로 방역 마스크를 나눠주는 이른바 ‘마스크 외교’를 통해 개도국 사이에서 입지를 더 강화했다. 중국은 코로나19 같은 예기치 못한 역경을 극복할 때 그들의 지배구조가 서구권 국가보다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제 중국은 러시아처럼 ③ ‘백신 외교’에 나서며 더 분주해졌다. ‘아프리카 의료용품 플랫폼’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아프리카연합(AU)은 3억 도스(1도스는 1회 접종분)의 러시아 스푸트니크 V 백신을 받았다. 더불어 스푸트니크 V 백신을 필요로 하는 나라를 위한 자금까지 함께 지원받았다.


2021년 1월 29일(현지시각)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도상국에도 공정하게 보급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 EPA연합
2021년 1월 29일(현지시각)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도상국에도 공정하게 보급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 EPA연합

G7이 개도국 백신 공급을 위한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한다면, 이들이 국제 사회 문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에 반박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세계화를 다시 이끌겠다”라고 선언한 것과도 흐름을 일치시킬 수 있다.

G7은 이번에 발표한 대책 이상의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개도국에 재정 지원을 하거나 선진국이 이미 확보한 백신 중 초과 분량을 그들에게 기부해야 한다. 또 G7은 지역 공급망이 망가지는 걸 극복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과 물류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 백신 제조 업체들이 생산 업체와 지식을 공유하는 일도 필요하다.

앞길이 막막한 게 사실이다. 집 안에서만 돈과 노력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코로나19 백신에서 나오는 이익을 차지하려는 사람, 백신 개발의 과학적 혁신으로부터 미래 이익을 보호하려는 사람 등 수많은 반대 세력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안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계속 안고 살거나, 벙커처럼 봉쇄된 국가 안에서만 살 수는 없지 않나. 어쩌면 둘 다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Tip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2월 17일(현지시각) UN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 화상회의에 참석해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75%를 힘 있는 10개국이 차지한 사실을 지적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매우 불균등하고 불공정하다. 백신 평등은 국제 사회가 중대한 시점에 치러야 할 최대의 도덕 시험”이라고 했다. 그는 주요 20개국(G20)을 향해 “과학자와 백신 제조사, 재정적 지원자가 긴급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공평한 백신 보급을 보장해달라”고 제안했다. 다음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지원은 다자주의의 시험대”라며 “우리가 가진 분량의 4~5%를 개도국에 신속히 할당하자”라고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데옥시리보핵산(DNA)보다 불안정한 리보핵산(RNA) 구조라 변이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2021년 2월 22일 기준)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감염 사례는 128건이다. 영국발(發) 변이 감염자가 109명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발 13명, 브라질발 6명이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변이 바이러스는 감염력과 항체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백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국내에 어느 정도 유입이 돼서 확산하는지 등은 집단 면역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변수이고 위험 요인”이라고 했다. 영국·남아공·브라질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변이 바이러스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월 21일(현지시각) “미국이 방관하는 사이 중국은 코로나19 백신을 활용해 ‘현대판 실크로드’를 깔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와 시노팜·시노백·칸시노 등 중국 제약 업체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 빠르게 개도국을 상대로 한 백신 외교에 나섰다. 에티오피아 공항 화물터미널에 축구장 크기의 저온 저장 시설을 마련해 중국산 백신을 아프리카 각지에 공급하는 식이다. 안전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60여 개 국가가 중국 백신을 받기 위해 앞다퉈 중국 정부와 논의 중이다. 러시아는 동유럽과 남미 지역에 자국 백신을 집중적으로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