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가장 좋은 전략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략이다”라고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일본의 컨설턴트)는 말했다. 경쟁에서 벗어난다? 경쟁을 하지 말자는 말인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의 주장은 경쟁자보다 고객에게, 특히 고객이 원하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경쟁자의 움직임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지만, 고객이 돈 내고 받는 것은 해결책이다. 고객이 얻게 되는 해결책, 그게 바로 고객 가치가 된다. 일본의 경영 컨설팅 회사인 스트레티지&택틱스의 대표이사 사토 요시노리의 저서 제목인 ‘드릴을 팔려면 구멍을 팔아라’는 제품과 해결책의 관계를 잘 설명한 표현이다. 기업이 파는 제품은 드릴이지만 고객이 사는 해결책은 구멍 잘 뚫는 것이니까.

블루오션 전략도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쟁이 치열한 핏빛 레드오션을 벗어나 경쟁 없는 청정한 블루오션으로 가면 된다. 이상적인 주장이고 논박하기도 어려운 당위성을 지닌 말이다. 경영자가 내부직원을 다그치기에 이렇게 편한 말도 없다. “블루오션을 찾으라니까, 뭐 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닦달하는 최고경영자(CEO)를 대놓고 욕하기란 어렵다. 어쨌거나 맞는 말이니까.

경쟁 없는 곳으로 가라는 말은 경쟁자가 없는 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여기에서 오해가 생긴다. 경쟁자가 아예 없으려면 어쨌든 최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최초가 되려면 그동안 없었던, 하늘 아래 처음 나온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도입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기술혁신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신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로 착각하게 된다.

그게 아니다. 혁신적인 제품이 아니라 ‘가치 혁신’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이다. ‘가치 혁신’에서 가치는 고객이 호응할 수 있는 해결책, 고객이 잊기 어려운 의미를 뜻한다. 결국 고객 가치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고객 가치에 집중하여 기업의 미션이 정립되고 실천되는 것에서 경쟁의 슬기로운 회피는 시작된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를 한 번 생각해보자. 경쟁자는 무수하다. 서커스 공연단이 사라지진 않았다. 경쟁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쟁은 없다. 태양의 서커스는 고객에게 집중했다. 보기 어려운 묘기를 보여주는 것이 다른 서커스 공연단이 하는 일이다. 제품 관점의 서커스에 대한 정의와도 같다. 태양의 서커스는 자신의 업을 고객 가치에 집중해 정의했다. 고객은 비일상의 즐겁고도 놀라운 경험을 서커스에 기대한다. 기괴한 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태양의 서커스는 ‘기대하지 못했던 것을 창조하여 몰입의 경험을 주는 것’을 미션으로 규정했다. 자신들이 영위하는 업의 본질은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만큼의 몰입감을 주는 것’이라고 정했다.

미션이 정리되고 나면 실천이 따라야 한다. 그들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묘기를 보여주는 것 이상을 실천했다. 한 팀의 묘기에 손뼉 치고 나면 또 다른 묘기가 등장하는 것이 보통의 서커스 공연이었다. 태양의 서커스는 단발적인 공연의 연속이었던 서커스 공연을 하나의 흐름을 유지하는 스토리로 엮어서 전달한다.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무대장치와 소품의 예술적 수준도 높였다.

미션은 기업의 고유한 존재 이유다. 존재의 이유는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미션은 ‘하는 일’의 규정이다. 업의 규정이다. ‘업’이란 말은 비즈니스보다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업은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일이자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되는 업보가 된다는 말이다. ‘이런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나중에 보상을 받게 된다’는 관점과 ‘고집스레 우리 업을 착실히 수행하면 그렇게 쌓인 업 때문에 나중에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미션은 업을 정의하는 일이라고 보면 좋겠다. 일하는 것이 수행하는 것과도 비슷해질 수 있다.


롤스로이스는 자신들의 업을 ‘이례적일 만큼 특출한 것임을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좋은 차가 아닌 ‘럭셔리’를 제공하는 것이 업이라는 것이다.
롤스로이스는 자신들의 업을 ‘이례적일 만큼 특출한 것임을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좋은 차가 아닌 ‘럭셔리’를 제공하는 것이 업이라는 것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업의 본질을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만큼의 몰입감을 주는 것’으로 정했다. 사진 태양의 서커스
태양의 서커스는 업의 본질을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만큼의 몰입감을 주는 것’으로 정했다. 사진 태양의 서커스

소비자에게 고유 가치 전달하는 기업의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자신들의 업을 ‘독자에게 더 똑똑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것’으로 규정한다. 고객이 바라는 가치는 좋은 경제 기사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코노미스트’를 읽으면서 더 스마트해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객관적인 경제 기사를 쓰는 것과 읽는 고객이 똑똑해졌다는 느낌이 들게 기사를 쓰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에서 ‘이동(mobili ty)’을 이미 내세우고 있다. 몇 년 전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혁신’하겠다고 선포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업의 본질이 ‘좋은 자동차 생산’이 아니라 ‘사람들의 스마트하고 편안한 이동을 돕는 것’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렇게 업의 정의를 고객 가치 중심으로 정리해 놓으니까 우리는 현대자동차에서 차 말고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로 사람들의 이동편의성을 도와주려 할지 기대하게 된다. 자동차가 아닌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아도 ‘원칙 없는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난하지 못하게 된다.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업을 견지하는 곳이 있다. 영국의 자동차 제조 업체인 롤스로이스(Rolls Royce)다. 롤스로이스는 자신의 업을 ‘이례적일 만큼 특출한 것임을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롤스로이스를 타는 사람들을 ‘극히 예외적으로 특별한 존재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미션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브랜드 슬로건도 ‘위대함에 영감을 준다(Inspiring the Greatness)’이다. 따져 보면 좋은 차가 아니라 럭셔리의 극치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들의 업이란 얘기를 여러 방향으로 돌려 말하고 있을 뿐이다.

주목할 것은 그들의 고집이다. 롤스로이스는 자신들의 업을 흔들림 없이 지키고 있다. 롤스로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토스텐 뮐러 오트보시는 하이브리드 기술 도입에 관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롤스로이스는 하이브리드처럼 타협하는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우리는 호화로움을 추구하는 브랜드지 혁신적 기술을 선보이는 메이커가 아니다”라고. 주목해야 할 말은 다음이다. “하이브리드 같은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이는 데에 몰두할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재떨이를 더 우아하게 만드는 데에 그 시간을 쓰겠다.” 럭셔리에 대한 집착, 고객 가치를 업으로 삼고 그 업을 고수하려는 의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말이다.

하이브리드 기술은 도입하지 않았지만 최근 롤스로이스는 10년 내 전기차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어떤 전기차가 나올 것 같은가? 가장 럭셔리한 전기차가 나올 것이다. 물론 우아한 재떨이를 탑재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