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고려대 경제학 학사, 미 듀크대 법학대학원 연수,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전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투잡’의 시대를 넘어 ‘N잡러’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N잡러란 2개 이상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잡(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본캐(본캐릭터)’와 ‘부캐(부캐릭터)’라는 신조어도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 유래한 말로, 게임을 시작하면서 만들어 쭉 키워온 캐릭터를 본캐, 새로움을 찾기 위해 나중에 만든 캐릭터를 부캐라고 한다. 이러한 신조어들이 등장한 것은 그럴 만한 사회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해 노동시간이 줄면서 일부는 연장근로에 따른 수입(연장근로수당)이 감소했고, ‘긱 이코노미(gig economy·비정규 임시·계약직의 프리랜서 근로 형태)’의 등장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 단기 취업이 간편해진 환경이 마련됐다. 아울러 과거와 달리 기업이 정년까지 직원을 종신 고용하며 책임지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는 노동환경, 예컨대 상시적 인력구조조정 위협 등이 대두했다.

이에 따라 취업 후 정년퇴직까지 한 직장에서만 전념하며 일한다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다. 낮에는 정상적으로 회사에 다니면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새벽이나 야간에 택배 배송 혹은 대리운전의 부업을 하고, 주말에는 관심 사항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업로드하며 부수적인 수입 활동을 하는 식이다.


노사의 상반된 이해관계

사용자(기업)는 이런 트렌드가 탐탁지 않을 수 있다. 직원이 회사가 맡긴 일만 성실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부업을 하면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직원의 무리한 부업 활동이 일부 원인이 돼 근무 중 업무상 재해나 산업안전사고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회사에 사회적·법적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우려도 있다. 따라서 회사들은 부업을 갖는 것을 사규로 금지하거나 사전 허가사항으로 정하고, 이를 어겼을 때 징계 사유로 삼는 경우가 대다수다.

반면, 직원 입장에서는 부업을 통한 경제활동이 사규로 금지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근무시간 중에 부업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주말에 짬을 내 부업을 하는 것에 대해 왜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회사가 무슨 근거로 이를 금지할 수 있는가?” 또는 “월급을 주면서 회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시간은 근로계약에서 약정한 근무시간일 뿐이다”라는 생각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4월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4월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겸직에 관한 다양한 법원 판례

그렇다면 겸직에 대한 법원 판례는 어떨까. 겸직을 금지하며 그 위반에 대해 형사처벌 조항을 둔 행정사법의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5조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는 “누구든지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 종사하여 이를 영위하고 언제든지 임의로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자유와 여러 개의 직업을 선택해 동시에 함께 행사할 수 있는 자유, 즉 겸직의 자유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봤다. 다만 “일반적으로 겸직 금지 규정은 당해 업종의 성격상 다른 업무와의 겸직이 업무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으면 제한적으로 둘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사기업의 겸직 제한과 관련, 법원은 대체로 회사가 기업 질서나 노무 제공에 지장이 없는 직원의 겸직까지 포괄적으로 제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직원이 재직 중 사적으로 다방 영업을 수행했다는 것을 이유로 징계한 사안에서, 법원은 “근로자가 다른 사업을 겸직하는 것은 근로자 개인 능력에 따른 사생활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므로 기업 질서나 노무 제공에 지장이 없는 겸직까지 전면적,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면서 “그로 인해 회사의 기업 질서나 노무 제공에 지장이 초래됐다고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징계사유가 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일례로 연구원 소속 직원이 약 3개월간 원장의 사전허가 없이 매주 토요일 3시간씩 대학원에 출강했다는 이유로 당연면직 처분을 한 사안에서 법원은 “근로자가 겸업을 통해 사용자에 대한 성실의무나 충실의무에 반함으로써 사회 통념상 더 이상 근로계약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당연면직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출강해 받는 보수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당시 대학원 출강이 직무수행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연면직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겸직에 대한 사용자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인정된 경우도 있다. 연구기관의 직원이 명예 희망퇴직 신청을 해 명예 희망퇴직 인사발령을 받은 후 퇴직일이 도래하기 전에 허위로 병가를 받아 2개월간 다른 회사에 근무한 경우다. 국민연금이 이중으로 납부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통지받고 이를 알게 된 연구원은 위 명예 희망퇴직 발령을 취소하고 해당 직원을 해고했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허위진단서를 첨부해 병가를 받고 다른 직장에 취업해 겸직 근무한 행위에 대한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또한 은행 간부가 비상근으로 아파트재건축조합장을 겸직하면서 근무지를 무단이탈하고 노무 제공에 지장을 초래해 정직의 징계처분이 내려진 사안도 있다. 법원은 “비록 비상근으로 재건축조합장직을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근무시간 중 조합업무와 관련해 전화를 주고받고 근무지를 무단이탈하는 등 근무를 소홀히 한 점, 위 재건축조합이 전 조합장의 업무와 관련해 수 차례의 소송이 제기되는 등 분쟁이 있었고, 그 업무의 양이 방대할 뿐 아니라 조합원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시공사 등 관련 업체들과의 관계에서도 그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는 등 분쟁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조합장직을 수행함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노무 제공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음은 넉넉히 추인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징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회사 업무 지장 주는 겸직은 금지

정리하자면, 직원이 근무시간이 아닌 여가시간에 부업을 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는 사생활의 영역으로서 이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업 질서나 노무 제공에 지장을 주게 되는 경우 △회사와 경쟁적 사업을 운영하거나 경쟁업체에 취업하는 경우 △회사의 영업 기밀을 이용하는 경우 등은 사규에 의해 금지될 수 있다고 법원은 본다.

지금은 투잡조차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게 될 가까운 미래에는 N잡러가 아닌 것이 오히려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인 이유에서 N잡러로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선택하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며 이를 경제활동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지갑뿐만 아니라 마음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겸직과 관련한 미래 법원의 판단이 과연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