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마케터의 생각법’ ‘레인메이커’ 저자

21세기 들어 브랜딩과 마케팅 그리고 기업 경영에 ‘진정성’이란 말이 유행처럼 돼 버렸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정치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정성이 일상 용어가 된 듯하다. 그 정도로 진정성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그놈의 진정성, 이제는 지겹다는 말까지 나온다. 진정성이란 말은 그리스어 ‘authentikos’에서 유래했다. 이 말 자체가 ‘진짜’라는 뜻이다. 즉 진정성이란 ‘거짓 없는 진짜배기’라는 말이다.

가짜가 판치는 곳에서 진짜는 ‘원본’이나 ‘독창성’을 의미한다. ‘독창적인 원본’을 만들어 내는 사람(author), 그런 사람은 권위를 갖기(authoritative) 마련이었다. 어떤 시기에 주목받는 화두는 그 시기에 가장 결핍돼 있다고 여겨지는 가치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성이란 말이 넘쳐나는 가장 큰 이유는 오히려 진짜보다 가짜가 아직도 판을 치기 때문이다. 내세우는 메시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 실체와 메시지가 상충하는 기업, 이 모두가 가짜다.

이런 가짜는 권위주의적(authoritarian)일 순 있어도 권위를 갖지는(authoritative) 못한다. 보통 진정성이 모자란 정치인이나 기업일수록 문제를 ‘소통’에 돌린다. 걸핏하면 ‘홍보’가 문제라고 투덜댄다. 우리는 잘 안다. 소통이 문제라고 둘러대지만, 문제의 핵심은 소통이 아니라 실체에 있음을. 소통의 부족이 아니라 실체의 부실함이 원인임을.

21세기 들어 진정성이 크게 부각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정보기술(IT)의 발달이 가져온 ‘정보 주권의 재편성’ 현상 때문이다. 온라인이 원인이다. 특히 활자 형태의 정보보다 훨씬 각인 효과가 있는 이미지나 동영상을 쉽게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공유와 전파를 손쉽게 만들어 주는 소셜미디어(SNS)의 활성화는 오랜 시간 정보의 수용자였던 소비자를 정보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주체로 만들었다. 정보 주권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는 기업 차원에서 나름대로 통제가 됐던 기업에 불리한 정보도 이제는 숨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요즘 소비자는 넘어가지 않는다. 진정성이란 말을 책 제목으로 쓰면서 진정성 마케팅이란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은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조셉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 교수다. 그들은 2007년 발간한 책 ‘Authenticity’에서 “이제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보면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은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말(메시지)대로 실천(행)하는 브랜드와 말만 번드르르할 뿐 행동은 엉뚱하게 하는 브랜드의 차이를.


영국의 괴짜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세운 민간 우주 관광 업체 ‘버진갤럭틱’의 우주여행선. 사진 버진갤럭틱
영국의 괴짜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세운 민간 우주 관광 업체 ‘버진갤럭틱’의 우주여행선. 사진 버진갤럭틱

진정성과 도덕성은 다르다

흔한 착각이 있다. 진정성과 도덕성을 같은 말로 오해하는 것이다. 진정성은 도덕적인 메시지와 행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이란 단어가 주는 인식의 착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진정성은 ‘진짜’이며 ‘독특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착하고 도덕적인’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무조건 착해지는 것이 진정성 마케팅이 아니듯 진정성 있는 브랜딩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일관성을 잃지 않고 소비자 경험에 반영되는 것이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무조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버진(Virgin)그룹을 생각해보자. 버진의 메시지는 ‘엄숙하게 사는 것, 재미없다. 날라리처럼 사는 게 즐겁다’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날라리의 즐거움’이나 ‘일탈과 해방’이라면 그 아이덴티티가 도덕적인 메시지라고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진정성 있는 브랜딩이 안 되는 게 아니다. ‘날라리의 즐거움’ ‘일탈과 해방’이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제품이나 서비스 그리고 임직원에게서 일관되게 묻어 나오지 않을 때 진정성이 결여된 브랜딩이 되는 것이다. 진정성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언행일치’다. 이런 면에서 진심 어린 브랜딩의 대표적 사례가 ‘Virgin’이 된다.

진정성의 핵심은 데이비드 마이스터의 ‘신뢰방정식’에 잘 나타나 있다. 방정식의 약자는 각각 trust, credibility, reliability, intimacy, self-interest를 가리킨다. trust나 credibility나 reliability 모두 ‘신뢰’라고 해석하면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 여기에 진정성의 핵심 개념이 숨어 있다. 신뢰방정식에서 신뢰(trust)는 전문성이 주는 믿음(credibility), 약속과 이행이 연결된다는 경험의 반복, 즉 일관성에 의한 확실성(reliability), 친밀감(intimacy)을 더하고 그것을 이기적 성향(self-interest)으로 나눈 결과란 것이다.


언행일치가 되는 기업인가

진정성의 요체는 이 일관성에 의한 확실성, reliability다. 언행일치라는 얘기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서로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메신저가 자신들의 메시지를 배반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성의 출발인 진짜배기의 요건이다. 진심 어린 브랜딩은 브랜드의 약속과 약속 이행이 연결된다는 경험의 반복, 즉 일관성에 의한 확실성과 예측 가능성(reliability)을 굳건히 지켜가는 것이다.

시류에 따라 변하지 않고 상황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 약속의 꾸준한 이행이 가장 중요하다.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성을 인정받고 싶다면 우리가 내세우는 메시지를 우리가 충실히 실체에 반영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먼저 살펴볼 일이다. 소통이 안 돼서 우리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라고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들들 볶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