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나왔지만, 세계 일부 국가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족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백신은 1980년대 공산주의 체제 동유럽의 물자 부족을 상기시킨다. 만약 백신이 보급되는 방식으로 식량을 배급한다면 우리는 꽤 많이 체중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부는 백신의 성공적인 개발을 ‘정부가 다시 작동한다’는 증거로 본다. 과거 미국은적극적인 정부의 역할 아래 대륙 횡단 철도, 그랜드 쿨리 댐,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주간(州間) 고속도로, 우주 프로그램 등을 선보인 바 있다. 현재 미국의 경우 중국 연구원들이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의 유전자 서열을 발표한 다음 주에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모더나가 백신을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적극적인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를 ‘산업 계획’의 긍정적인 사례로 본다. 공화당 소속 미국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에서부터 급진적인 케인스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 런던대 교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지층을 끌어모은 문구이기도 하다.
美 백신 신속 보급은 시장 혁신의 승리
그러나 코로나19 백신은 통계와 계획이 아닌 혁신의 승리다. 민간이 주도하고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져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좋은 제품인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많지만, 자본주의에서 부(富)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약 업계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혁신적인 일을 하는 동안 미국 정부는 이를 훼방 놓았다. 캐나다로부터 값싼 의약품을 수입하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록 트럼프 행정부가 일시적으로 보수적인 연방 규제에서 제약사들을 벗어나게 했지만 말이다.
1961년 ①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신약 승인에 신중을 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4년 전인 1957년에는 미국 미생물학자 모리스 힐먼이 홍콩을 초토화한 H2N2 인플루엔자 백신을 개발했고, 넉 달 만에 이를 만들도록 제약사 머크를 설득한 일도 있었다.
미 연방정부는 이번에 코로나19 백신에 자금을 대는 대형 은행 역할을 함으로써 민간에 도움을 줬지만, 제약사의 영향력에 따라 자금 지원을 하진 않았다. 대신 ② 워프 스피드 작전을 통해 좋은 백신을 사겠다고 약속했고, 보장된 백신 물량에 대한 대금도 미리 지불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도 비슷했다. 정부는 미국 자동차 회사인 오스틴 같은 소규모 혁신기업과 제너럴모터스(GM) 등의 대기업에 돈을 쏟아부었다. 경제사학자 알렉산더 필드는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봤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서두를 필요가 있었고, 결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워프 스피드 작전도 마찬가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코로나19 세계 대전 민간 경쟁이 무기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동안 미국 정부는 업계 영향력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 민간 기업끼리 경쟁하도록 했을 때, 윌리스와 포드가 협력해 군용 차량 지프를 제조하는 일이 일어났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은 지붕이 없는 사륜구동 자동차를 “전쟁의 3대 결정적 무기 중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코로나19 세계대전에선 모더나와 화이자-바이오엔텍, 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J&J)이 핵심 무기를 개발했다. 비록 사노피가 아직 화이자와 협력하고 있지만, 사노피와 머크는 패자가 됐다. 중국의 코로나19 백신이나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V가 승자인지, 패자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는 산업 계획에 따라 승자를 미리 정했고, 안전성과 효능을 판단하기에 너무 적은 데이터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산업 계획은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산업 계획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건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와 같은 실패 사례였다. 워싱턴의 관료들이 승자를 잘 선정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케인스는 “정부가 장기적이고 일반적인 사회적 이익에 근거해 자본재의 한계효율을 계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마추카토 역시 이에 동의하며 정부가 혁신에 ‘방향성’을 부여함으로써 경제를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우리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령 국가 주도 산업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승리의 사례로 든다. 하지만 인터넷은 수년간에 걸친 시행착오를 겪으며 개발된 기술과 혁신의 묶음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가 사용한 상용 인터넷은 정부 지원과는 관련이 없다. 그것은 군용 네트워크 프로토콜일 뿐이다.
물론 미국 정부가 약간의 자금을 제공했지만, 미국이 아마존과 구글을 만들기 위해 냉전을 벌였다고 믿지 않는 한 혁신에 ‘방향성’을 제공하진 않았다. 핵심은 민간기업의 시행착오, 즉 혁신이다. mRNA(전령 RNA) 기술의 시행착오는 제약 업계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도록 한 원동력이다. 이는 산업 정책과 국가 방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① 독일 제약사 그뤼넨탈은 1958년 탈리도마이드 성분을 바탕으로 임산부 입덧방지·수면제인 ‘콘테르간’을 출시했다. 동물시험에선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 약을 먹은 임산부들은 팔, 다리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를 출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1962년 판매가 금지될 때까지 전 세계에서 1만2000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나는 참사가 일어났다. 유럽에서만 8000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단, 미국에서는 17건의 사례만 보고됐는데, 동물시험이 인간에게도 적용될지 미심쩍어한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② 미국 보건복지부와 국방부 등 연방정부와 민간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가속하고 이를 배포·관리하기 위해 맺은 민관 파트너십이다. 2020년 5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미국 의회에서 2020년 3월 통과된 코로나19 지원 구제·경제적 보장법(CARES)에 따라 100억달러(약 11조4000억원)가 곧바로 워프 스피드 작전에 투입됐으며, 현재까지 투입된 자금은 180억달러(약 20조5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2021년 1월까지 3억 회분의 백신을 생산한다는 목표 아래 △백신 개발·테스트 △치료제 개발·테스트 △진단 개발·테스트 △백신, 진단, 치료제의 생산·유통 공급 △백신 안보와 진단, 치료제의 개발·테스트·공급·생산·유통 등 5가지 과제로 추진됐다. 2021년 1월 말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16개의 코로나19 백신 후보가 임상 3상 시험에 들어갔는데, 이 중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등이 개발한 백신 5종이 워프 스피드 작전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미 정부는 가능한 한 빨리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6개 회사, 9억 회분의 백신을 사전 확보했다. 이는 모든 회사가 성공적으로 백신을 개발한다고 가정할 경우 미국 인구 모두가 접종할 수 있는 양이다. 팅롱 다이 존스홉킨스대 캐리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캐나다 공영방송 CBC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좋아하거나 미워할 수는 있지만, 워프 스피드 작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엄청난 성공”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