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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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리나 칸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가 6월 15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Federal Trade Commission)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1989년생으로 불과 32세인 칸 교수는 2017년 예일대에서 박사 졸업논문으로 쓴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논문의 핵심 내용은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폐해는 현재의 반독점법이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독점법은 동종 업체들이 카르텔이나 트러스트를 구성하여 시장의 독점적인 위상을 획득한 뒤 가격을 높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규제한다. 칸 교수는 미국의 반독점법이 상품가격이 올랐는가를 기준으로 독점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가격이 오르지만 않는다면, 아마존과 같은 기업이 실질적으로 시장을 독점하더라도 현재의 반독점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비록 물건값은 싸질 수 있으나 모든 소매 업체가 자신의 경쟁자인 아마존을 통해서만 시장에 접근하게 된다. 결국 아마존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 업체는 규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어 시장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폐해를 낳을 수 있으므로 독점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골자다.

칸 교수의 논문은 2017년 출간 즉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마존의 펀딩을 받고 있다고 알려진 티모시 뮤리스 FTC 위원 같은 거물급 인사가 학위를 막 받은 햇병아리 학자에게 반박하기 위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은 미국 혁신의 상징이었다. 칸 교수의 주장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하지만 불과 4년이 지난 지금, 칸 교수의 논문은 독점을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다. 칸 교수가 FTC 위원장으로 취임하기 4일 전인 6월 11일, 민주당과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협력하여 소위 ‘빅테크 반독점법 패키지’를 하원에 발의했다. 온라인 플랫폼 독점을 필두로 총 5개의 세부법안으로 이루어진 패키지는 노골적으로 거대 디지털 플랫폼 기업만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시가총액 6000억달러(약 677조원) 이상, 월 활성 이용자 5000만 명 이상의 빅테크 기업만이 해당 법안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4개 기업뿐이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4개의 빅테크 기업은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 명확하다. 아마존은 자체 브랜드 상품을 팔 수 없게 되고, 구글은 유튜브나 구글맵 등 자사 서비스를 먼저 검색에 노출해선 안 된다. 애플의 제품과 서비스는 다른 회사와 호환 가능하게 바꿔야 하며 페이스북은 동종 업계 경쟁 업체를 인수할 수 없게 된다. 나아가 특정 고객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바꾸는 경우, 기존 업체는 수집된 해당 사용자의 데이터를 오롯이 신규 업체에 전송해야 한다.

칸 교수의 FTC 위원장 취임은 바이든 정부의 독점적 디지털 플랫폼 업체에 대한 입장과 정책적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먼저 초당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한 법안을 상정한 후 이를 젊은 패기로 두려움 없이 실행할 인사에게 전권을 준 형국이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진통을 겪을 것이 명백하다. 법안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웬만한 선진국의 GDP(국내총생산)에 육박하는 규모의 테크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무제한에 가까운 자본력을 활용할 것이고, 해당 법안에 반대하는 정치인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월 28일, FTC가 페이스북을 상대로 낸 반독점 소송을 연방법원이 증거불충분으로 각하하였고, 이는 바이든 정부의 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시도에 심대한 타격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평이다.

그러나 핵심은 빅테크 반독점법 패키지의 통과 여부가 아니다. ‘아마존 저격수’ 리나 칸 위원장의 취임이 상징하는 것은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 혁신은 그 자체로 더 이상 선(善)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세계 최강의 정치 권력인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것이 본질이다.

지난 10여 년간 혁신 기업들은 인류가 풀지 못했던 많은 난제와 부조리를 기술을 통해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이에 부응하여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기업들은 전통적 기업보다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반독점법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노동법의 칼날 역시 혁신 기업들에는 상대적으로 무딘 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이 이러한 혁신 기업이 기존 거대 자본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들은 데이터에 대한 독점적 권한과 기술력을 앞세워 기존 거대자본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한시적인 정치 권력마저 위협할 정도로 영원불멸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이를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적인 사건은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이례적으로 미 하원 낸시 펠로시 의장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들에게 6월 22일에 전화한 것이다. CEO급의 인사는 오해를 살 수 있기에 정치인에게 회사 현안을 직접 논의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쿡 최고경영자는 그 관례를 깼다. 현재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고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한국 공정위도 갈수록 바빠질 듯

미국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네이버의 사내 갑질 논란, 헌재의 타다 금지법 합헌 결정, 넷플릭스의 망 사용대가 지급 판결, 쿠팡이츠의 고객 갑질 그리고 쿠팡 물류센터의 소방관 순직까지. 마치 3~4년 전 미국에서 혁신 플랫폼 업체를 두고 벌어졌던 사회적 논란을 그대로 옮겨놓은 형국이다.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우리도 얼마 후 ‘혁신 기업 저격수’가 공정위 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강력한 규제는 혁신을 저해하는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혁신 기업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충실히 부응하는 모습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그런 규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일 게다. 소위 ‘민식이법’이 좋은 사례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새벽 3시 8차선 도로에 시속 30㎞ 제한을 하는 것은 역시 이상하다.

안타깝게도 혁신 플랫폼 기업의 특성상 ‘알아서 미리 기어’ 규제가 생기는 것을 선제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기술력과 자본력을 앞세워 해당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독점적인 권한을 획득하는 기업만이 생존하는 것이 게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쿠팡이 자랑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물류센터 화재 감지에 적용하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극단적인 효율화 추구를 통한 비용 절감 없이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절대적 지배자가 될 수 없고, 물류센터 화재 예방에 AI 기술을 적용할 여유를 부릴 만큼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혁신 기업은 혁신 그 자체를 기업의 존재 이유로 내세울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사회, 특히 정치 권력은 혁신 기업에 혁신의 결과가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지속해서 소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런 흐름이 지나가는 소나기인지, 아니면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앞으로 훨씬 더 바빠질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