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2005년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요즘 사용되는 개념으로 설명하면 ‘정보통신 기술(ICT)과 글로벌 밸류체인(GVC) 강화로 모두가 평등하게 경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어디서건 일할 수 있도록 연결돼 있어서 세상이 특정 국가에 유리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급망이 서로 연계돼 있어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와 원격회의가 일상이 된 지금, 지리적 격리가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화로 기술과 자본을 가진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근로자를 쉽게 고용할 수 있게 돼 오히려 선진국의 소득만 높아지는 데 기여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글로벌 밸류체인의 심화가 평화를 보장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전략적으로 중요한 상품을 무기화하려는 시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끼리만 밸류체인을 조성하거나 아예 리쇼어링을 통해 국내에서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가 ‘평평하지 않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평평한 세계를 만들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본 격차에 따른 인프라 수준의 차이 때문이다. 소득 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하는 비용이 개도국보다 오히려 더 낮다. 국가에서 정보통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기 때문에 개인이 지불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5기가바이트(㎇) 광대역 통신망을 사용하는 데 지불하는 비용이 선진국에서는 1인당 총소득의 1.3%에 불과한데 저개발 국가에서는 1인당 총소득의 67.5%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저소득 국가에서는 특정계층만 글로벌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저소득 국가 내에서도 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의 경제지형이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평평해지고는 있다고 하나 절대적으로는 여전히 기울어진 형국이다.


한국 비수도권 인프라 적극 개선해야

우리나라도 평평하지 않은 경제지형이 문제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소득 격차에서 나타난다. 2019년 전국지역총소득은 수도권이 전체의 55.6%를 차지했고, 비수도권이 44.4%를 차지했다. 같은 해 비수도권 1인당 지역총소득은 수도권의 79.7%에 머물렀다. 이는 2000년도의 80.5%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다. 20년 동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시·도별 1인당 개인소득에서도 서울은 2014년부터 울산을 앞질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다음이 울산, 경기도 순서다.

수도권이 이처럼 압도적인 경제적 위상을 보이는 대표적인 이유는 인프라의 격차다. 좋은 인프라 덕분에 기업과 전문인력 그리고 부유층이 수도권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는 세금으로 수도권의 인프라는 추가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반면 비수도권은 초기 인프라의 상대적 열위를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극복하기가 점점 더 불가능해지게 된다. 소득만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도 같은 맥락에서 그 격차의 확대를 이해할 수 있다.

요즈음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노선을 둘러싸고 지역주민의 갈등과 민원이 자주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관련된 지역의 주민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경험을 통해 알아차린 탓이다.

물론 지역별 인프라의 차이 외에도 자연환경이나 역사적 배경 등이 지역별 경제지형의 차이를 결정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정책을 통해 수정할 수 있는 요인은 인프라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수도권 규제보다는 비수도권에 대한 적극적인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 교통망뿐만 아니라 의료 시설, 문화 설비, 교육 시설, 기업 환경 등 종합적인 인프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지역별 경제지형이 평평해진다. 수도권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