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의 관광 브랜드 슬로건(왼쪽)과 산업 브랜드 슬로건. 사진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바젤의 관광 브랜드 슬로건(왼쪽)과 산업 브랜드 슬로건. 사진 브랜다임앤파트너즈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전 넷밸류코리아 한국지사장

1967년의 일이다. 피카소 작품을 소유한 기업이 파산 위기에 놓이면서 그의 그림이 미술관을 떠나 외부로 판매될 위기에 처했다. 작은 도시의 시청에서 피카소에게 작품 두 점을 사고 싶다고 연락한다. 피카소는 연유를 묻는다. 시청이 답한다. “시민들이 당신의 작품을 매우 좋아해서, 누구나 감상할 수 있게 공적 소유물 형태로 보유하고 싶다”라고.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 이야기다. 바젤 시민들은 주민투표를 거쳐 세금으로 피카소의 작품을 사기로 했다. 이에 감동한 피카소는 바젤에 두 작품을 팔고 추가로 두 작품은 아예 기증한다. 바젤 시민들의 문화 예술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1970년 ‘아트 바젤’이 시작될 수 있었다. 아트 바젤은 뛰어난 예술 작품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국제적 행사다. 아트 페어는 작품을 거래하는 시장이자 트렌드 전시장이기도 하다. 아트 바젤은 프랑스의 ‘피악(FIAC)’, 미국의 ‘아트 시카고(Art Chicago)’와 더불어 세계 3대 아트 페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 바젤의 도시 브랜딩은 ‘아트’를 중심으로 풀면 되는 것일까. 물어보겠다. “세계 3대 아트 페어를 알고 있었습니까?”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질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바젤 하면 ‘아트’ 혹은 ‘아트 바젤’이 떠오를 것이다. 문제는 브랜딩의 타깃이 소수의 전문가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1999년 본격적으로 브랜딩에 나선 바젤의 고민도 ‘아트만으로 충분할까?’라는 의구심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바젤은 1970년대부터 국제적인 아트페어를 개최했을 만큼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이지만 바젤의 대표적인 산업은 뜻밖에도 제약·화학·금융이다.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를 끌어내는, 그래서 시민의 풍요로운 삶을 이끄는 산업 분야는 ‘아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젤은 현실적인 부조화를 어떻게 브랜딩에 녹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바젤은 내부지향 목표와 외부지향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손쉽게 ‘아트’만으로 풀지 않았다. 내부지향 목표는 안에서 사는 시민이 안 떠나고 더 잘 살도록 하는 것이다. 외부지향 목표는 바깥에서 많은 사람이 오게 하는 것이다. 바젤은 내부지향 브랜딩의 타깃이 되는 지역주민과 기업·투자자, 외부지향 브랜딩의 목표 고객인 관광객과 MICE(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업체 모두를 아우르는 전략을 수립한다.


산업과 문화로 커뮤니케이션 이원화

가장 돋보이는 전략적 결단은 산업과 문화로 커뮤니케이션을 이원화한 것이었다. 이원화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동시에 선보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영역이더라도 핵심 연상을 공유하면서 각각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로 그러나 또 같이’ 하는 것이다. 내부지향 목표와 외부지향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 바젤은 문화 예술 수준이 높은 것도 산업이 발전한 것도 모두 납득시킬 수 있어야 했다.

바젤은 지리적인 위치에 착안했다. ‘바젤-뮐루즈-프라이부르크 공항’이 바젤 공항의 정식 명칭이다. 바젤은 독일·프랑스·스위스의 국경이 맞닿은 곳에 있다. 그 위치는 유럽 전체 지도를 놓고 보면 중심에 있다고 우길 수 있을 정도다. 외부에서 들어올 경우라면 바젤은 교차 지점이 된다. 즉 바젤은 ‘크로스(cross)’하는 곳이다.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기에 예술이 다양하게 발전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내부에서 나갈 경우라면 한 곳에서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중심부, 즉 ‘허브(hub)’라고 할 만하다. 라인강을 따라 비즈니스가 퍼져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세 나라가 맞닿은 곳의 작은 도시 바젤은 ‘다양한 것이 교차하는 허브 도시’를 목표 연상으로 정립했다.

바젤의 도시 브랜딩이 빛나는 부분은 이원화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다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문화와 산업 모두 교류로 풍성해지는 ‘The Small Metropolis’를 지향하면서 ‘문화’와 ‘산업’이라는 두 영역을 마치 하위 브랜드처럼 운영한 것이 바젤 도시 브랜딩의 빛나는 부분이다.

산업 영역에서의 브랜딩은 국가 브랜드와 도시 브랜드의 불균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체코에 가고 싶은가, 프라하에 가고 싶은가?” 많은 경우 체코보다는 프라하에 가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이것이 국가 브랜드와 도시 브랜드의 불균형이다. 바젤의 산업은 제약·화학·금융이 대표적이다. 스위스에서 만든 약품과 바젤에서 생산한 약품 중 어느 것이 더 신뢰가 갈까. 그래서 바젤은 산업 영역에서 국가 브랜드의 후광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지역 산업에 사용될 바젤시의 공식 BI에 ‘Made in Swiss’란 콘셉트를 부각하려 했다. 아예 스위스 국기를 공식 BI에 붙였다. 바젤은 스위스라는 국가 브랜드를 이용해 산업 부문에서 지명도가 높지 않은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다. 바젤 내부의 산업이 낮은 지명도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외부 투자자가 바젤은 잘 모르더라도 스위스 국기를 통해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부족한 신뢰도를 올리는 효과를 노렸다.

반면 문화 영역에서는 ‘Cross Cultural’이라는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지역성을 강조하는 전략이었다. 바젤의 위치 자체가 ‘크로스’하는 곳이란 걸 암시했다. 바젤은 문화 교류의 현장이고, 교류를 통해 예술의 수준이 높은 도시이며, ‘문화 다양성’을 품은 도시라는 의미다. 볼 것이 많은 곳임을 천명한 것이다. 바젤은 문화 영역의 브랜딩을 위해 ‘Culture Unlimited’를 슬로건으로 달았다. 바젤의 관광 브랜드는 이렇게 정해졌다.

아트 바젤도 한 단계 진화했다. 아트 바젤은 시민들의 자부심을 고양하는 역할을 한다. 바젤은 다양함이 ‘크로스’하는 허브 도시를 지향했다. 바젤은 아트 바젤이 ‘밖으로 뻗어 나가는 허브 도시로서의 바젤’을 대표하는 이벤트로 만들었다. 바젤이 도시 브랜딩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3년 후인 2002년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아트 바젤 인 마이애미 비치(Art Basel in Miami Beach)’가 열렸다. 2013년에는 홍콩에서 ‘아트 바젤 인 홍콩(Art Basel in Hong Kong)’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제 아트 바젤은 매년 3월 ‘아트 바젤 인 홍콩’을 시작으로 6월 ‘아트 바젤’, 12월 ‘아트 바젤 인 마이애미 비치’로 일 년 내내 등장하고 있다. 아트 바젤의 프랜차이즈화가 이뤄진 것이다. 이는 바젤이 ‘국제적인 예술 도시’로, 문화 예술의 허브 도시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국가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게 된 바젤

20여 년간의 노력 끝에 바젤은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의 모범 사례가 됐다. 올해부터 바젤은 비즈니스 브랜드와 관광 브랜드를 이원화해 운영하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BI를 도입했다. 바젤의 도시 브랜딩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셈이다. 바젤은 산업 브랜드에 ‘Made in Swiss’ 콘셉트를 더는 강조하지 않는다. 바젤은 현재 도시의 산업 브랜드로 ‘BASEL AREA’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바젤이란 도시 브랜드가 이제는 스위스라는 국가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의미가 된다. 20년 노력의 성과다.

‘BASEL AREA’를 만들어 낸 브랜드 컨설팅 회사 UP의 보고서에 따르면 “바젤은 다른 스위스 도시와의 중첩을 피하고자 더는 비즈니스 브랜딩을 스위스에 의존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바젤의 더 다양한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염원에서 ‘More To Discover’라는 슬로건을 개발했다고 한다.

한편 바젤의 관광 브랜드 슬로건은 ‘Cul-ture Unlimited’에서 ‘This is Basel’로 과감하게 변화했다. 전성기 시절 소니의 ‘It’s a SONY’에 버금가는 자신감 넘치는 슬로건이다. 바젤은 산업적 허브로서 기업가와 투자자에겐 매력적인 투자 장소가 됐고, 예술 도시로서 관광객에게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됐다. 바젤은 내부지향 브랜딩과 외부지향 브랜딩을 이원화하는 결단으로 또 그 결단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으로 도시의 다양한 니즈를 모두 아우르는 유연한 도시 브랜딩의 모범이 됐다.

황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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