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순환 경제란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경제 모델을 뜻한다. 특히 순환 경제는 ‘자원 채취-대량 생산-폐기’가 중심인 기존 선형 경제의 대안으로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실가스 등으로 인한 기후 변화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감염병 확산 방지에 기여할 것이란 인식도 늘면서 자연 친화적인 경제 모델 구축과 자연 자산 중시의 경제 분석 및 경제 정책 설정도 늘고 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물 같은 자연자원을 생산 자본으로 활용하는 순환 경제 체제가 부각되고 있다. 순환 경제는 정부 당국자들의 목표에 머물지 않는다. 이에 기반한 사업 모델로 승부를 거는 기업도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 ‘팀코리아’ 공식 후원사인 영원아웃도어(노스페이스)는 선수 1명이 입는 단복에 500㎖ 페트병 100개를 재활용했다.
유럽연합(EU)은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강조하는 ‘순환 경제 행동 계획(circular economy action plan)’을 채택하고, 실행에 나서고 있다. 사진 EPA연합
유럽연합(EU)은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강조하는 ‘순환 경제 행동 계획(circular economy action plan)’을 채택하고, 실행에 나서고 있다. 사진 EPA연합

매년 4억t의 중금속과 산업 폐기물이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8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진다. 생산되는 모든 것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3억t의 식량이 손실되거나 낭비되고, 수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린다. 해양 생물은 남획되고, 땅은 황폐화하며 생물의 다양성은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 동시에 유럽과 중국의 이례적인 홍수, 미국의 대형 산불, 아프리카와 중동의 메뚜기떼와 같은 심각한 자연재해는 점점 더 자주 발생한다.

‘자원 채취-대량 생산-폐기’로 이어지는 글로벌 생산 및 소비 패턴의 지속 불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2050년까지 이런 생산 및 소비 패턴을 유지한다면 현재보다 3배 많은 천연자원이 필요하고, 연간 폐기물 발생량은 70% 증가할 것이다. 우리가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순환 경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이러한 경제 모델을 받아들였다. EU는 2050년 탄소 제로(0)를 목표로 하는 ‘그린 딜(green deal)’의 한 축인 ‘순환 경제 행동 계획(circular economy action plan)’을 채택하고, 실행에 나서고 있다. EU는 원자재 절약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복지 향상을 목적으로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예를 들면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설계 단계에서 80% 이상이 결정되는데, EU는 순환 경제 행동 계획에 따라 지속 가능한 또는 순환적인 제품을 설계하는 제조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궁극적으로 순환 경제는 제조 업체에 도움이 된다. 원자재는 제조 업체 비용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환 경제로 인한 원자재 등의 재사용은 수익성을 크게 높이고, 자원 가격 변동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중요한 원자재의 90%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한다.

EU는 순환 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0.5%를 추가로 증가시킬 수 있고, 약 7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추정한다. 또한 유럽이 제조업 강국인 것을 고려하면, 순환 경제 행동 계획은 제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국제 표준을 마련하고, 전 세계적으로 제품 설계와 밸류 체인 관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EU는 순환 경제와 관련 글로벌 협력도 진행 중이다. 올해 2월 EU는 ‘순환 경제 및 자원 효율성에 관한 글로벌 연합(Global Alliance on Circular Economy and Resource Efficiency)’을 출범했고, 글로벌 무역 협상과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순환 경제 관련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하려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순환 경제 개념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주류 경제 원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의 지배적인 경제 모델은 선형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이었다. 경제학자들과 수많은 정부 경제 정책 입안자들은 경제 활동에서 물, 산소 등 자연이 수행하는 역할을 간과했다.


최근 파르타 다스굽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균형 잡힌 환경을 위한 생물 다양성의 경제학’ 연구 보고서를 볼 필요가 있다. 다스굽타 교수는 더 이상 주류 경제학이 자연을 무시하고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한 나라의 자연 자산은 광역통신망이나 교량 등과 같은 기반시설과 마찬가지로 생산 자본의 일부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농부가 농작물 판매를 통해 얻은 소득은 국내총생산(GDP)에 산입되지만, 농작물의 수분을 매개하는 꿀벌의 역할이나 토양의 질은 GDP 산입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꿀벌이 죽거나 토양의 질이 나빠지면 농작물 수확이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전통적인 경제 통계가 잡지 못한 ‘자연 통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경제적 활동이 생물의 다양성이나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인간과 자연 양자 간의 상호보완 관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유엔(UN) 통계위원회는 지난 3월 서식지 및 조경, 생태계 서비스 측정, 생태계 자산 변화 추적, 경제 및 기타 인간 활동 등의 데이터를 분석·연계한 환경-경제 회계 시스템을 채택하고 구축 중이다.

중국도 이런 방향으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중국은 지난 2008년 8월 순환 경제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최초의 국가다. 2018년에는 헌법에 ‘생태 문명(ecological civilization)’이란 개념을 담았고,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에 순환 경제 모델 발전 전략을 넣었다.

EU와 중국의 순환 경제는 기술적·경제적·정치적 용도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체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방향이다. 또한 순환 경제는 유엔의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달성하고, 인류의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강대국들은 이러한 경제 성장 방향을 제시하고 경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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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그린 딜 EU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종합대책인 ‘그린 딜(green deal)’을 2019년 말 발표했다. EU의 자연을 보전하고 환경 관련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된 장기적 관점의 에너지 및 경제 정책이다. 그중 핵심은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탄소 중립’ 달성이다. EU는 코로나19 시대 이후의 경제회복을 위해서도 그린 딜 이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