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무형자산의 가치 실현은 애플 등 성공적인 기업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오늘날 무형자산의 가치 실현은 애플 등 성공적인 기업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식재산대학원 프로그램(MIP) 책임교수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식재산대학원 프로그램(MIP) 책임교수

상장기업의 가치는 주식시장에서 결정된다. 즉 기업의 발행주식 수에 그날의 종가(終價)를 곱한 시가총액이 기업의 시장 가치다. 그런데 상장기업의 상업장부에 기재된 자산 가치는 시가총액을 크게 밑도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장부상 기재하기 어렵고 형체가 없는 무형자산 때문이다. 기업들이 보유한 무형자산의 가치는 상업장부에 기재될 수 있는 부동산, 장비, 재고 자산, 현금, 유가증권 등 유형자산의 가치에 비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식재산 종합금융회사(merchant bank)를 지향하고 있는 미국의 회사인 오션토모(Ocean Tomo)는 S&P500 기업의 시가총액 중 무형자산 대 유형자산 비율을 분석해 발표하고 있다. S&P500 기업의 시가총액 중 무형자산의 비율은 1975년 17%에 불과했으나 이후 점차 증가하여 2005년에는 80%, 2015년에는 84%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회사가 2020년 말 발표한 ‘무형자산 시장가치 연구(Intangible Asset Market Value Study)’ 보고서에 따르면 불과 5년 만에 무형자산 비중이 90%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처럼 급격한 변화를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의 영향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구체적 인과 관계가 규명된 것은 아니다. 최근 특허청의 발표에서도 2020년 디지털헬스케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 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특허출원이 전년 대비 11.2% 증가한 것을 볼 때, 코로나 시대에도, 혹은 코로나 시대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무형자산의 규모 자체가 더욱 커지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무형자산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회계와 투자 관점에서는 지적자본(intellectual capital)이라는 용어가 더 널리 쓰이고 있다. 시장조사기업인 포네몬 연구소가 발표한 2019 무형자산 재무제표 영향력 비교 보고서(2019 Intangible Assets Financial Statement Impact Comparison Report)는 미국 기업들의 무형자산 가치가 최대 25조달러(약 2경9700조원)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전통적인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특허, 저작권, 상표, 영업비밀, 노하우) 외에도 브랜드, 데이터, 라이선스, 사업상 신용(good will) 등 지식재산 관련 항목 4개를 무형자산 가치 산정 기준에 포함했다.

무형자산의 세계는 아직까지 연구자들이 충분히 탐험하여 밝히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흔히 지식재산이 무형자산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받기도 하지만, 특허, 저작권, 상표권, 영업비밀 등 그 보호와 활용 절차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것들을 특히 지식재산이라 부른다. 무형자산은 이러한 지식재산 외에 인적자본(human capital), 혁신적 아이디어, 신용(goodwill), 정보 자원, 사업계획, 제조공정 등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수많은 무형의 자원들을 망라한 개념이다.


1. 2001년 출시된 아이팟 스크롤 휠(Scroll Wheel) 모델. 사진 애플코리아 2. 케인 크레이머가 1979년 발명한 IXI 디지털 오디오 재생기의 그림. 사진 케인 크레이머 닷컴
1. 2001년 출시된 아이팟 스크롤 휠(Scroll Wheel) 모델. 사진 애플코리아
2. 케인 크레이머가 1979년 발명한 IXI 디지털 오디오 재생기의 그림. 사진 케인 크레이머 닷컴

무형자산 가치 기업의 활용 역량이 결정

다만 무형자산을 만들고 활용할 줄 아는 각 기업의 역량, 산업과 시장의 상황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어떤 무형자산은 사실상 무가치한 자원이 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막대한 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영국의 발명가 케인 크레이머(Kane Kramer)는 일부 매체들이 MP3 플레이어의 최초 개발자 또는 아이팟(iPod)의 최초 개발자라고 소개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크레이머와 그의 친구 제임스 캠벨(James Campbell)은 1979년 최초의 디지털 오디오 재생기를 개발했다. 다만 아직 MP3 압축 및 해제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이었고, IXI라고 명명된 이 기기는 고작 3분 30초간 음악을 재생할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우리나라의 디지털캐스트라는 회사에서 개발했다. 이 회사가 새한정보시스템과 제휴해 출시한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가 ‘MPMan F10’이다. 이에 대한 스토리는 이후에 별도로 소개하고자 한다.

크레이머의 IXI는 여러 나라에서 특허 등록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도 사업화 전망이 불투명했고, 회사로서는 특허를 유지할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 기술의 특허는 1980년대 후반에 모두 연차료 미납으로 소멸되고, 그 기술과 도면 등 관련 지식재산은 이른바 공공의 영역에 들어갔다.

그런데 영국 매체인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2008년 버스트닷컴(Burst.com)이라는 작은 회사와 특허 분쟁 중이던 애플이 크레이머를 증인으로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그는 애플을 위해 증언 녹취(deposition) 절차에서 10시간 동안 버스트닷컴 측 변호인의 질문에 답해야 했다. 애플이 크레이머의 IXI 발명을 선행기술(prior art)로 들어 버스트닷컴 특허의 유효성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크레이머의 증언이 그 과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애플의 소송은 결국 소송 외 합의로 무난히 마무리되었다.

언론 인터뷰에서 크레이머는 애플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으나, 애플이 그에게 법적으로 보상해야 할 근거는 없었다. 그가 IXI라는 디지털 오디오 재생기를 개발한 것은 사실이고, 아이팟의 1세대 디자인이 그의 IXI 디자인과 유사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모든 권리는 특허를 포기하는 순간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권리를 유지했더라도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했을 때는 IXI 특허가 만료되었을 시점이다.

한편으로는 크레이머가 시대를 많이 앞선 기술을 개발했던 것도 사실이다. 1970년대 후반 그가 발명한 IXI가 단말기에 그치지 않고 전화 회선을 이용한 아이튠즈와 유사한 디지털 음원 유통 시스템, 나아가 음원의 디지털권리관리(DRM) 기술까지 적용한 종합적인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경영 일선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2001년 출시한 아이팟은 아이튠즈와 결합하여 시장의 판도를 바꿨고, 이것이 그 후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성공을 위한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애플은 크레이머의 IXI 기술과 디자인, 디지털캐스트의 MP3 플레이어 기술, 기타 여러 무형자산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반면 시대를 너무 많이 앞서 IXI를 발명했던 크레이머와 그 회사는 그 무형자산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