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자전거 공유에서부터 승차 공유 서비스, 자율주행차, 비행택시까지 전 세계에 모빌리티 혁신 물결이 거세다. 주요 도시는 모빌리티 혁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시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모빌리티를 중심으로 한 스마트시티 혁신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 연구 전문가인 필자는 싱가포르 특유의 장기적인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며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일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른바 ‘도시 혁신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라고 이 도시국가를 칭한다.
싱가포르 시내 스카이 라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싱가포르 시내 스카이 라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카를로 라티(Carlo Ratti) 미국 MIT 도시연구소 책임 연구원 ‘카를로 라티 어소시어티’ 공동 설립자
카를로 라티(Carlo Ratti)
미국 MIT 도시연구소 책임 연구원 ‘카를로 라티 어소시어티’ 공동 설립자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티지아노 테르자니는 원래 싱가포르 팬이 아니었다. 아시아의 곳곳을 탐험했던 그는 베트남이 베트콩에 의해 함락되고, 캄보디아가 크메르루주(급진적인 좌익 무장단체)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 그가 싱가포르를 처음 방문해 공항에 내렸을 때 “싱가포르는 모범적인 도시가 보여야 할 모든 것의 집합 즉, 효율성, 청결성 그리고 질서의 상징”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싱가포르의 지루한 질서 정연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테르자니의 평가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실상 싱가포르의 ‘꼼꼼함’은 공항을 원활하게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는 놀라운 속도로 아이디어를 행동으로 옮긴다. 그 결과 ① 싱가포르는 ‘도시 혁신의 살아 있는 실험실’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나 역시 이 과정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싱가포르 독립 50주년을 앞둔 2013년,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는 역사적 이정표나 경험이 기념행사의 중심이 돼야 할지를 고민할 때 내 의견을 구했다. 나는 싱가포르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모빌리티 분야에서 혁신을 추진하라고 조언했다.

놀라운 건 이런 대화가 있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싱가포르 정부가 자율주행차 전환을 연구하는 워킹그룹인 ‘자율도로교통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출범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도 이 위원회에 초대받았다. 그 이후 모빌리티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민관 주요 이해당사자들을 여러 번 만났다. 싱가포르 정부의 혁신에 대한 자세를 알 수 있었다.

이후 싱가포르의 자율주행차 등 모빌리티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물론 기술적인 문제를 포함, 개발 과제는 만만치 않다. 도시 모빌리티 전환은 독립적인 차가 주행하고 주차되는 공간을 새롭게 제공해야 한다. 승차 공유 서비스가 대중교통과 개인 교통의 구분을 모호하게 했다면, 자율주행차는 그 구분을 아예 없앨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출근 후 그들의 집이나 사무실 밖에 주차할 필요가 없다.

이를 고려하면, 자율주행 택시는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주행 중인 자동차 수와 도시 주차장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있는 우리 연구실은 공유차, 자율주행차로의 전환을 통해 싱가포르가 약 130만 대의 주차 공간 가운데 80%를 없앨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기적인 비전과 결단력이 성공 비결

새롭게 이용 가능한 땅은 해안가에 줄지어 있는 자동차와 주차 미터기가 아니라 식당, 놀이터, 미니어처 정원 등의 야외 좌석이 있는 주택가를 다시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아울러 이 공간은 전기차 충전소, 전자상거래 상하역장 그리고 스쿠터와 공유자전거의 주차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대다수 도시에서는 이러한 모빌리티 비전을 잘 연구한 후 ‘매력적인’ 문서로 만들지만, 이 문서는 먼지 쌓인 캐비닛에 남겨진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다르다. 정부 기구와 주요 산업 주체들이 발맞춰 움직인다. 실제 2013년 이후 싱가포르의 발전은 놀라웠다.

이는 ② ‘누토노미(nuTonomy)’ 같은 새로운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싱가포르 경제개발위원회와 국부펀드의 지원을 받는 데 도움이 됐다. MIT에서 시작된 누토노미는 2016년 세계 최초로 완전 자율택시 서비스를 실험했다.

중요한 건 싱가포르에서는 그 이상의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몸담은 디자인 회사는 올해 말 개장 예정인 높이 280m의 빌딩 ③ ‘캐피타스프링(CapitaSpring)’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다. 이 빌딩은 싱가포르가 미래 스마트시티로 전환하는 것이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이 건물의 특징은 유연성이다. 주차장 수요가 줄어들면 마리나 베이가 내려다보는 사무실로 즉각 용도 변경이 가능한 신개념 건축물이다. 유연한 대응과 변신을 할 수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섬 싱가포르가 50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달성한 것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④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장기적인 비전과 결단력 있는 행동을 꾸준히 보여줬다.

물론 싱가포르가 아직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승진의 권리나 기회가 적은 데다 위험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많은 이민자가 혁신과 진보의 무게를 떠안아 왔다. 공공행정이 빠르고 진취적이지만, 중간 계층은 느리고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테르자니를 지루하게 했던 ‘질서 정연함’이 창의성을 억누르기도 한다. 최근 유럽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스타트업 경제가 싱가포르에서는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특히 모빌리티 분야에서 아시아 내 가장 발전된 도시 실험실일 것이다. 싱가포르는 사례 연구 가치가 뛰어나고, 여러 면에서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나라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 거점도시로 싱가포르가 1위를 차지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가 2020년 3월 발표한 ‘2020 글로벌 기술 산업 혁신 조사(Global Technology Industry Innovation Survey)’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를 제외하고 향후 4년간 기술혁신 허브를 이끌 글로벌 10대 도시에 싱가포르가 1위로 선정됐다. 싱가포르는 첨단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지식재산권(IP) 보호법, 다양한 인재풀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누토노미’는 자율주행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다. MIT에서 스핀 오프된 스타트업이다. 싱가포르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택시를 첫 시험 운행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는 세계 최초로 운전자 개입 없이 공공 도로를 주행한 자율주행차였다. 이 회사는 자율주행 택시가 싱가포르의 일반 승용차 수를 약 90만 대에서 약 30만 대가량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누토노미가 싱가포르에서 첫 시범 서비스를 한 것은 교통 인프라가 좋고 시민의 교통 의식 수준이 높은 데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자율주행 택시 사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피타스프링’은 싱가포르 상업의 중심 지구인 ‘센트럴 비즈니스 구역(CBD)’에 연내 완공될 51층 높이의 빌딩이다. 소유주인 캐피타랜드 및 미쓰비시 에스테이트주식회사 등은 이 건물에 JP모건 등 글로벌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캐피타랜드 측은 이 건물이 이른바 ‘코어 플렉스(core-flex) 솔루션’을 통해 혁신적이면서도 유연한 스마트빌딩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약 60년간 인민행동당의 일당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민은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와 인민행동당 정부가 이룩한 경제 발전과 부패 척결의 업적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다. 리셴룽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국민의 고통과 우려, 다양한 의견에 대한 열망이 표출됐다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