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그래도 경제학이 일본을 구한다.”

이 문장은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인 일본계 학자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가 저술한 ‘미국은 일본 경제의 부활을 알고 있다(2021)’라는 책 제4장의 제목이다. 하마다 교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으로 알려진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등 아베 전 총리의 경제 정책을 자문했다.

일본은 1990년 이후 버블이 붕괴되면서 2012년까지 20년이 넘는 장기 침체를 겪었다. 이 기간을 세상에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른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를 중단시킨 것은 2012년 정권을 잡은 아베다. 아베는 총리 시절 아베노믹스로 장기 침체의 고리를 끊는 데 성공했다.

아베노믹스는 소위 ‘세 개의 화살’이라는 정책으로 유명하다. 세 개의 화살이란 대담할 정도의 통화완화 정책, 적극적인 재정 정책, 그리고 규제완화 및 구조개혁 정책이다. 2차에 걸쳐 시행된 세 개의 화살 정책은 방향성에서 본다면 거의 유사하다. 그뿐만 아니라 언뜻 보면 아베노믹스 이전의 정책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일본은 그동안에도 완화적인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을 지속해왔고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제도적 변화를 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마다 교수의 정책은 무엇이 달랐을까. 가장 큰 차이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통화 정책이다.

아베노믹스에서는 통화 정책을 담대한 수준으로 완화했다. 목표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탈피와 엔화 평가절하였다. 소비자물가 상승 목표는 2%로 설정했다. 수단은 무기한 양적완화였다. 양적완화의 규모도 적극적으로 늘렸고 국채뿐만 아니라 민간 채권까지 매입했다. 2014년부터 매달 13조엔(약 130조원) 규모의 채권 매입을 지속한 결과 일본은행의 대차대조표(자산)가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에서 2019년에는 100% 이상으로 증가했다. 재정 정책도 적극적인 확대 정책으로 전환했고 대규모 중장기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10년에 걸쳐 100조~200조엔(약 1000조~2000조원) 규모의 국토 개조 공공사업을 벌였다. 성장 정책으로는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총리가 주재하는 ‘산업 경쟁력 회의’를 설치하고 민간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했다.

2013년부터 소비자물가는 플러스로 전환돼 디플레이션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엔화 가치도 하락했다. 명목 GDP는 2013년 3.5% 성장을 시현했고 플러스 성장은 2019년까지 지속했다. 닛케이지수는 57%나 상승해 1972년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고용 시장에서 나타났다. 구직자 수보다 구인 수가 크게 앞질러 구인난을 겪는 상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 지속했다. 덕택에 아베 총리는 8년 반이 넘는 재임 기간을 기록한 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경제 정책, 정치에 휘둘려선 안 돼

하마다 교수는 아베노믹스가 단순한 경제학 원리에 입각한 정책을 실시한 것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기존 일본은행 통화 정책이 경제를 변화시킬 만큼 충분히 완화적이지 않은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수준까지 경제학 이론을 믿고 정책을 지속한 것이 비결이라는 것이다. 통화량을 지속해서 증가시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기본적인 경제학 원론의 내용이다. 통화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엔화가 달러화 및 다른 통화들에 비해 고평가되고 있는 것은 일본은행의 통화 정책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덜 완화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마다 교수는 학부 수준의 경제학만 제대로 공부했어도 더 적극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엔화를 평가절하시킬 수 있다는 이론을 이해할 텐데, 일본은행이 경제학을 신뢰하기보다는 정치 행위에 빠져있었다고 비판했다. 정책 담당자가 바뀌거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달라지는 것은 경제학 이론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경제 정책을 시행한 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제학이 일본을 구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변화가 심한 우리도 되뇌어봐야 할 문장이다.

“그래도 경제학이 나라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