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쓰는 2003년 일본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 마을’을 선포하고, 도시 슬로건도 ‘제로 웨이스트 마을, 가미카쓰’로 정했다. 사진 가미카쓰
가미카쓰는 2003년 일본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 마을’을 선포하고, 도시 슬로건도 ‘제로 웨이스트 마을, 가미카쓰’로 정했다. 사진 가미카쓰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마을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공포가 만들어낸 말이 있다. ‘한계마을(Marginal Village)’이란 말이다. 1990년대 초 일본에서 처음 제기된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마을 인구의 절반 이상이 65세가 넘는 노인이거나 가구 수가 20가구 이하인 마을, 주민 수가 50명 이하인 마을을 한계마을로 간주한다. 한계마을을 소멸까지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지방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역 재생을 위한 스몰타운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다.

한계마을의 한계를 넘어선 스몰타운 브랜딩 성공 사례를 소개한다. 일본 시코쿠(四國) 지방 도쿠시마(德島)현의 산골 마을 두 곳, 가미카쓰(上勝) 마을과 가미야마(神山) 마을이다. 도시 브랜딩의 목표는 두 방향이 있다. 경제 활동 기회를 풍부하게 해 사람이 떠나지 않게 하는 건 내부지향 목표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 내가 사는 도시로 찾아오게 만드는 건 외부지향 목표다. 두 마을 모두 한계마을이지만 가미카쓰 마을은 내부지향 목표에 초점을 맞춘 반면 가미야마 마을은 외부지향 목표에 집중했다.


주민의 자부심까지 끌어올린 가미카쓰

가미카쓰 마을은 오사카에서 차로 다섯 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다. 인구는 1500명 정도인데 65세 이상 노인이 절반을 넘는다. 전형적인 한계마을이다. 하지만 가미카쓰 마을은 ‘거주자가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을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조성’하는 도시 브랜딩의 내부지향 목표를 충실히 달성했다.

‘잎사귀 비즈니스’가 시작이었다. ‘이로도리(彩)’라 불리는 잎사귀 비즈니스는 1986년 농협 직원이었던 요코이시 토모지(橫石知二)가 고령자와 여성도 일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찾다가 발견한 틈새시장이다. 이로도리는 일본 고급요리 장식에 쓰이는 쓰마모노(妻物·나뭇잎 등)를 판매한다. 현재 일본 쓰마모노 시장의 80%를 이로도리가 점유하고 있고, 이로도리에 소속된 가미카쓰 마을의 180여 농가는 연평균 300만엔(약 32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얻는다.

최근의 가미카쓰 마을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곳은 다이옥신 배출 규제 법안이 제정되면서 쓰레기 소각로 두 개를 모두 폐쇄해야 했다.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을 찾던 가미카쓰 주민은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하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들은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브랜딩 프로젝트로 접근했다. 1994년 소각장이었던 곳을 재활용 센터로 전환했다. 1997년에는 본격적인 분리수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일본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 마을’을 선포했다. 2020년까지 쓰레기 발생량을 ‘제로’로 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이었다.

도시 슬로건도 지향점을 그대로 표현한 ‘제로 웨이스트 마을, 가미카쓰’로 정했다.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생각은 적극적인 재활용으로 이어졌다. 2006년에는 ‘쿠루쿠루숍’을 설치했다. 쿠루쿠루(くるくる)는 ‘빙글빙글’이라는 뜻이다. 리사이클링을 직관적으로 나타낸 네이밍이다. 물건을 리뉴얼하는 ‘쿠루쿠루 공방’도 있다.

이런 노력 끝에 2016년 가미카쓰 마을의 재활용률은 81%를 기록했다. 20% 정도에 불과한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경이로운 숫자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는 100% 퇴비로 사용했다. 2020년에는 제로 폐기물 센터 ‘WHY’를 완공했다. 제로 웨이스트 활동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숙박시설, 제로 웨이스트 관련 스타트업을 위한 협력 공간, 지역 주민의 소통 공간 등으로 사용된다. 주민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가미야마는 한계마을에서 다양한 직업인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마을로 변신했다. 사진 가미야마
가미야마는 한계마을에서 다양한 직업인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마을로 변신했다. 사진 가미야마

외부 인재 이주해오는 ‘창조적 인구 감소’ 마을, 가미야마

산간마을 가미야마(神山)는 도시 브랜딩의 외부지향 목표를 꾸준히 추구하고 있는 곳이다. 가미야마는 소멸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 한계마을이었다. 인구가 5000명을 조금 넘지만 고령화율이 50%에 달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가미야마는 웹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예술가,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인이 자발적으로 이주해오는 마을이 됐다. 심지어 정보기술(IT) 벤처기업까지 많은 ‘첨단 산골 마을’이다.

변화는 가미야마가 고향인 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가업인 건설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국제적 감각을 가진 그는 1990년 ‘가미아먀 국제교류협회’를 만들었다. 1993년엔 외국인 청년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유치했다. 1999년엔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마을에 머무르면서 작품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 4명이던 예술가는 2015년 163명까지 늘어났다.

15년 이상 외국인 교사와 예술가가 머무는 공간이 수백 가구에 이르게 되면서 가미야마는 자연스럽게 개방적인 마을로 바뀌었다. 2004년 오미나미는 동료들과 함께 그린밸리라는 비영리기구(NPO)를 만들고, 마을 변화를 본격적으로 도모하기 시작했다. 외부 사람을 이주시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한계마을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2008년 그린밸리는 가미야마로 이주할 청년을 모집하는 이주 지원 사업, ‘가미야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주 지원 사업은 빈집을 활용해 마을의 미래에 필요한 사람을 유치하고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빈집이 있으니 와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빈집은 빵집을 할 사람에게 빌려준다’고 하는 식이었다. 우리 마을이 이주 희망자에게 이러이러한 인센티브를 준다고 유혹하기보다는 우리 마을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알리고 지원한 사람 중에서 고르는 식이었다. 즉 가미야마 마을에 일이 별로 없으니 창업이 가능한 사람을 이주시키자는 취지였다.

역발상이었다. 가미야마는 외부지향 목표를 추구하지만 인구를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대신에 인구는 줄더라도 인구 구성의 질을 좋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구는 줄더라도 인구 구성의 질을 좋게 하는, ‘창조적 인구 감소(Creative Depopulation)’는 가미야마의 대표 정책이 됐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2010년 가미야마 1호 IT 벤처기업의 위성사무실 유치다. 도쿄에 본사가 있는 ‘산산(Sansan)’이라는 IT 기업이 가미야마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가미야마에 온 이 기업 사장은 다양성과 개방성을 추구하는 마을에 끌리게 된다. 때마침 번잡한 도시의 삶에 지쳐 퇴사하겠다던 직원이 있었다. 사장은 그를 ‘가미야마 랩’으로 보낸다. 퇴사하려던 그 직원은 가미야마에서 자전거로 출근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실시간 영상으로 업무를 본다.

약간의 운도 작용했다. 세상의 모든 성공, 조금은 운도 필요하다. 바위에 앉아 노트북으로 도쿄 본사와 화상회의를 하는 그 직원의 영상이 2011년 NHK에 소개되면서 가미야마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이제 가미야마 마을에는 16개 기업의 위성사무실이 있다. 선순환이 본격화했다. 이주자가 늘면서 새로운 음식점이나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났다. 새로운 시설은 외부에서 새로운 손님을 불러들인다. 가미야마에는 주민과 이주자, 민간과 행정기관이 연대하는 ‘가미야마 연대공사’가 만들어졌다. 이 기관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가미야마는 인연을 연결하고 서로 연대하며, 느리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대안 마을이 됐다. 가미야마의 브랜드 슬로건은 ‘in Kamiyama’다. 자긍심의 표현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