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학 박사, 현 윤경ESG포럼공동대표, 현 정부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 전 미국 하버드대 방문연구원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학 박사, 현 윤경ESG포럼공동대표, 현 정부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 전 미국 하버드대 방문연구원

한국 경제는 제2 창업기를 맞이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으로 대표되는 제1 창업기를 지나 인공지능(AI)과 플랫폼 혁명을 주도하는 수많은 스타트업과 벤처 기업들의 전성시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2 창업기가 만들어낸 벤처 기업의 일자리 수 67만 개는 제1 창업기 4대 그룹 일자리 수 69만 개에 육박하고 있다. 벤처 기업은 기업가정신 혁신과 일자리의 화수분이다.

특히 제2 창업기에는 업(業)의 본질과 기업가정신의 지향점이 달라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세상의 문제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문제가 달라지면 시장도 달라지고 기업의 목적도 달라진다. 그래서 기업가정신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업의 본질이 기업의 미션이고, 업을 기획하는 사람은 기업가다. 기업가의 문제 해결 방법이 창업과 혁신이다. 업의 본질은 고객 및 사회와 관련해 정의돼야 한다. 기업의 임무가 지구와 사람의 문제를 가장 생산적으로 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객과 사회의 기업에 대한 요구가 크게 달라진 만큼, 제2 창업기 한국적 기업가정신이 기업의 ‘업’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이유다.

많은 기업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 업을 기획하는 정신인 기업가정신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가? 기업은 돈을 벌고 싶어 경제적 가치를 택하지만, 소비자들의 또 다른 이름인 국민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기업 실패다. 그리고 이는 주주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다본 탓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콜린 메이어 석좌교수는 이런 상황에 대해 기업의 특수이익집단인 주주들이 기업을 ‘하이재킹(hijack­ing·공중 납치)’했다고 지적한다.

과거 국내 통신 3사 유료 문자 메시지 시장이 2조원 정도였다. 이것을 지키려다 무료 문자가 가능한 카카오에 모든 것을 내주고 말았다. 지금은 통신 3사 전체 기업가치의 약 2배가 카카오의 기업가치가 됐다. 이것이 주주에 의한 기업 실패의 사례다. 보수적·방어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지키려 하지만 방어할 수 없다. 이제 기업가가 지켜야 할 가치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경영학의 인기가 과거에 비해 시들한 이유도 이 학문이 시대정신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세상 문제를 생산적으로 해결하는 곳

기업은 세상의 문제를 가장 생산적으로 해결하는 곳이다. 이제 기업이 적법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개념은 끝났다. 기업가정신은 더 나은 세상에 도전하는 정신이 돼야 한다.

2019년 미국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주주 중심의 기업 목적을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선언했고, 올해 미국마케팅학회(AMA)에서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한 더 좋은 마케팅(BMBW·Better Market­ing for a Better World)’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케팅도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양극화를 해소하고 더 나은 포용적 세계를 지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가정신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가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도전해야 한다. 제2 창업기의 기업가정신은 직원, 협력 업체, 사회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가는 기업가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정신의 출발이 도전과 성공이었다면, 그 끝은 나눔과 상생이어야 한다. 기업가정신의 정점은 나눔과 기부다. 기업가정신에서 기업가적 자선(entrepreneurial phil­an­­thropy)을 포함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빌 게이츠 재단이나 록펠러 재단처럼 성공한 부를 가지고 자선가로서 박수를 받으며 공헌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올해 재산 10억달러(약 1조1960억원)가 넘는 부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약속을 하는 자발적 기부 모임인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앞으로 한국적 기업가정신은 ‘혼자 하는 혁신에서 직원과 함께하는 혁신으로’ ‘도전을 넘어 나눔으로’ ‘개인의 부를 위한 독불장군형에서 이해관계자들과 상생하고 동반 성장하는 생태계형’으로 재정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