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미국 국방부는 8월 30일(이하 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20년간 이어진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것이다. 미국은 이 전쟁에 2조2610억달러(약 2654조41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치르고, 2442명의 미군이 희생됐다. 그럼에도 20년 전쟁의 결과가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마무리되면서 미국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당초 철수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뤄졌지만 철수 절차를 집행한 조 바이든 정부의 군사전략 오판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국방부가 소규모 대테러 부대 또는 최대 4500명의 미군을 계속 주둔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군이 철수 후 탈레반이 군사행동에 나서더라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는 데까지 수개월에서 1~2년 정도 걸릴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오판이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8월 22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부가 11일 만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 특수부대원들. 사진 AP연합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 특수부대원들. 사진 AP연합
왼쪽부터 앤드루 셩 홍콩대 아시아 글로벌연구소 연구원 유엔환경계획(UNEP) 금융자문위원회 위원 샤오 겅 홍콩 국제금융연구소 소장 홍콩 중문대 선전금융연구소 연구위원
왼쪽부터
앤드루 셩 홍콩대 아시아 글로벌연구소 연구원 유엔환경계획(UNEP) 금융자문위원회 위원
샤오 겅 홍콩 국제금융연구소 소장 홍콩 중문대 선전금융연구소 연구위원

미군이 20년 동안 830억달러(약 974조4200억원)를 투자해 확보한 아프가니스탄(아프간) 경찰과 군대가 트럭에 올라탄 탈레반 민병대에 단 11일 만에 무릎을 꿇었다. 미국 최고의 지식인들과 군사 지도자들은 미군 철수로 인한 아프간의 재앙을 예측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후퇴 계획마저 세우지 못했다. 이는 분명 정책 실패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아프간 사태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다차원적 위기였다. 그런데 정책 의사결정의 실수는 복잡한 정책 이행 시스템과 전통적 패러다임(어떤 시대나 지역을 지배하는 사고의 틀) 간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의사결정의 기반이 되는 패러다임이 여전히 선형적이며, 기계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패러다임은 토머스 홉스 같은 정치학자들의 이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홉스는 ① 사회계약을 통해 국민의 권리가 군주에게 양도됐다는 패러다임을 보편적 진리로 설정, 하향식 의사결정 패러다임을 안착시켰다.

하향식 패러다임의 경우, 정책 결정에 문제가 있어도 수정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집단사고에 빠져 비판을 하지 못하고 대책도 내놓지 못한다. 나중에는 뚜렷이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현상조차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철수 결정 역시 지도부의 일방적인 하향식 패러다임에 기반했다. 복잡한 현대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반영한 새로운 패러다임 접근 없이는 이와 비슷한 정책 실패를 계속 경험할 수밖에 없다. 새 패러다임에 기반하려면 우선 본질을 살펴야 한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만물의 본질은 다른 부분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과 전체를 위해서도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칸트에게 만물은 일종의 유기체다. 칸트는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부정적인 의견과 긍정적인 의견 각 부분을 연결해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패러다임을 구성해야 한다고 봤다. 각 요소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건 유기적인 관계를 간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칸트는 통합적 관점을 포기하고 부분에 대한 개별적 패러다임만 유지하는 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국제 사회에서 제로섬 게임(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가 되는 게임) 논리에 기반한 정책과 양자택일의 부분적인 사고만으로는 외교적 정책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② ‘집단사고의 함정’으로부터 탈출을 강조했다. 집단사고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선 공동 아이디어, 재산, 가치, 의무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오스트롬은 당사자들의 운명과 이익이 결합돼 장기적으로 작용할 때, 그들은 ③ ‘공유지의 비극’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예로, 중국인들은 기(氣)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행동한다. 중국의 유기적 접근 방식은 통치 시스템의 붕괴와 재건이 반복된 오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중국은 정책 의사결정을 내릴 때 오랜 경험을 통해 상향식 패러다임과 하향식 패러다임이 결합됐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터득했다. 철저하게 검증된 쌍방 피드백 구조에서 국가 전체와 지역 공동체의 목표는 일치한다고 봤다. 또 정책 이행 과정에서 활발한 수정과 개선이 이뤄지고, 사회 구조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작은 행위들은 규제된다고 봤다. 만약 사회 구조의 일부분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면, 중국의 전문가들은 레버리지 포인트(하나의 작은 변화로 모든 것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지점)를 찾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규범이나 인센티브, 규제, 정보와 목표 등을 재정비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필자는 무엇보다 정책 결정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패러다임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능숙하게 형성한 사람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는 이 거대한 세계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여전히 제로섬 게임 논리나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무의미한 경쟁에만 매달리고 있는 걸까. 스스로를 제한하고 교착 상태와 혼란을 일으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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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을 통해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정의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를 끝내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자기 통치권을 포기, 군주에게 양도하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사회계약설이라 부른다. 공공의 평화가 확보되기 위해선 개인의 권리는 포기될 수 있고, 결국 자기 통치권을 양도받은 군주의 의사결정이 모든 개인을 대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군주주권론을 옹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 지도자와 개인의 관계는 수평적이거나 대등할 순 없고, 모든 정책 의사결정이 군주를 중심으로 하향식으로 이뤄진다.

결속력이 강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의사를 결정할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을 말한다. 집단 내 비판적인 사고는 배제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 개념은 미국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어빙 재니스(Irving Janis)가 1972년 출간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Victims of Groupthink)’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됐다. 재니스는 집단 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단결심이 강할수록, 독립적인 비판적 사고가 집단사고에 의해 배제될 위험성이 커진다고 봤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사고는 외부를 향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은 1968년 사이언스(Science)에 올린 그의 논문에서 공유지의 공유 자원은 강제성을 수반한 공동의 규칙이 없다면 많은 이의 무임승차 시도 때문에 결국 황폐화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공유지의 비극 이론이라 부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이해관계자들의 조정을 통해 공동 규칙을 만들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1920년대 미국 메인주 연안의 바닷가재 어장은 일종의 공유지였다. 이 어장은 어부들의 경쟁적인 남획으로 바닷가재의 씨가 마를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이해관계자인 어부들이 모여 규칙을 만들었고, 바닷가재 어장이 황폐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