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표적인 탄광 도시였던 졸페라인은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통해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찾는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재탄생했다. 사진 졸페라인
독일의 대표적인 탄광 도시였던 졸페라인은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통해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찾는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재탄생했다. 사진 졸페라인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세상은 빨리 변한다. 소비자의 취향도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때 잘나가던 브랜드가 위기에 빠지는가 하면 쇠락해가던 브랜드가 다시 활력을 회복하기도 한다. 어떤 브랜드가 힘을 잃어간다는 판단이 든다면 선택은 크게 두 가지가 된다. 그 브랜드를 없애고 대체할 만한 다른 신규 브랜드를 도입할 것인가 아니면 그 브랜드를 다시 살려 볼 것인가이다.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은 상당한 규모의 투자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쇠락해가는 브랜드를 되살리는 재활성화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상품 브랜드의 경우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없애고 새로 만들거나 되살리거나. 도시 브랜드는 사정이 다르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 도시를 아예 없애고 새로운 도시를 도입할 수는 없다. 남은 것은 브랜드 재활성화다.

브랜드 자산의 원천은 크게 인지도와 이미지로 구성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브랜드를 알고 마음속에 깊이 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인지도와 사람들이 어떤 연상을 통해 브랜드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이미지가 브랜드 자산의 두 가지 원천이다. 특정 브랜드를 재활성화하는 방법 또한 이 두 가지 요소를 손보는 것으로 귀결된다.


1 | 브랜드 인지도의 폭과 깊이의 확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라는 기존 자산을 중심으로 도시 브랜드를 강화해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중심지가 됐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라는 기존 자산을 중심으로 도시 브랜드를 강화해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중심지가 됐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쇠락해가는 브랜드의 경우 인지도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지도의 폭이다. 인지도가 높아도 소비자가 특정 상황에서만 그 브랜드를 떠올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쇠락해 가는 브랜드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상황보다 더 다양하게 소비할 수 있음을 알려주거나 더 자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브랜드 인지도의 폭을 넓혀주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시리얼 브랜드의 경우 자사 제품을 아침에만 먹는 것이 아니라 낮에도 스낵처럼 먹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아예 브랜드의 새로운 용도를 개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암 앤드 해머(Arm & Hammer)는 자사 베이킹소다의 탈취 효과와 미백 효과 등 새로운 용도를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소비 행태를 만들어 낸 바 있다.


2 | 브랜드 이미지 개선

브랜드 이미지 개선은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브랜드를 재활성화하는 것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요소(네이밍·디자인·슬로건 등)를 바꿔서 아예 브랜드를 새롭게 포지셔닝해야 한다. 브랜드 요소를 변화시키는 경우 가장 근본적인 접근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도시 브랜드의 예로는 비극적인 사건의 이름으로 계속 불리지 않기 위해 이리역 폭발사고 이후 도시명을 익산으로 바꾼 것을 들 수 있다. 삼천포에서 사천으로 도시명을 바꾼 것도 비슷한 예다. 물론 둘 다 예외적인 사례다. 도시명을 쉽게 바꿀 수는 없다. 브랜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은 기존 충성 고객을 잃지 않으면서도 추가로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하기 위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 박카스 캠페인이 대표적인 예다. 나이 드신 분을 위한 피로 회복 드링크에서 벗어나 젊은층을 대상으로 리포지셔닝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도시 브랜드 재활성화 전략은 브랜드 강화와 리포지셔닝으로 나눠볼 수 있다.


브랜드 강화(Reinforcing)

기존의 핵심가치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브랜드 재활성화의 첫 번째 방법인 ‘인지도의 폭과 깊이’를 강화하는 것이다. 도시를 대표해온 역사, 문화, 산업적 요소 등의 기존 자산을 더욱 강화해 도시의 매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기존 핵심가치를 강화해 브랜딩에 성공한 도시로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를 꼽을 수 있다. 기존 자산은 ‘모차르트’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도 잘츠부르크에 있었다. 모차르트의 도시이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였다. 그래서 ‘음악의 도시’로 브랜딩했다. 슬로건은 ‘세계의 무대(Stage of the world)’로 뽑아냈다. 모차르트라는 기존 자산을 중심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도시로 브랜딩한 것이다. 브랜딩의 소재는 음악과 모차르트로 집중하고 브랜드를 경험하는 접점은 크게 늘렸다.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문화·예술 콘텐츠를 다방면으로 확장했다. 모차르트 생가와 동상을 관광 상품화하고 초콜릿 등 전용 상품을 판매했다. 매년 7월 하순부터 8월 말까지는 잘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 투어 상품도 개발했다.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과 함께 세계 음악의 도시라는 상징을 공유하며 유럽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도시 이미지를 상징하게 됐다. 브랜드 강화 전략의 핵심은 브랜드 경험의 소재는 하나로 집중하고 브랜드 경험의 접점은 여러 가지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좁혀야 넓어진다’는 원칙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브랜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

기존 자산을 다르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실체 개선에 적용해 기존 브랜드 자산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그래서 기존 자산에 대해 소비자가 새로운 연상이나 단어, 문장 등을 강렬하게 떠올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잠재가치를 활성화해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는 전략이다. 도시가 잠재적으로 보유해온 가치를 찾아내고 시대 흐름에 맞게 활성화해 새로운 핵심가치로 리포지셔닝하는 것이다.

잠재가치를 리포지셔닝한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 사례가 있다. 라인강 지류인 루르강이 흐르는 독일 에센 지역은 석탄·철강·중화학이 밀집된 곳이다. 에센의 북부 탄광 도시인 졸페라인(zollverein)은 채탄 작업을 시작한 이래 항상 독일의 공업 중심지였다. 1980년대 들어 탄광의 경제성이 낮아지면서 많은 탄광이 문을 닫았다. 도시의 활력은 사라졌고 환경오염과 실업 문제만 남았다. 연간 석탄 100만t을 생산하던 세계 최대 탄광이 폐쇄되고 덩그러니 남은 건물들은 그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해서 도시 분위기를 더 음산하게 만들 뿐이었다.

졸페라인 인근 지역은 아예 공업 시설을 허물고 새로운 공장과 주거 시설을 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졸페라인의 선택은 달랐다. 졸페라인은 ‘문화’를 도시 재생의 돌파구로 찾았다. 기존 공장의 역사성을 유지하며 남아있는 건물의 용도를 문화 관련 시설로 바꿔 나갔다. 공장으로 쓰였던 곳은 루르 트리엔날레가 개최되는 세계적인 공연과 축제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가 담겨 있는 문화 도시로 브랜딩한 것이다. 졸페라인의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유네스코는 이 도시 탄광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졸페라인은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통한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으로 1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연간 2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재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