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학 박사, 현 윤경ESG포럼공동대표, 현 정부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 전 미국 하버드대 방문연구원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학 박사, 현 윤경ESG포럼공동대표, 현 정부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 전 미국 하버드대 방문연구원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을 위해 부하들과 논의한 것은 전략이고, 100만 군대를 러시아로 행군하게 만든 것은 문화였다.” 허브 켈러허 전 사우스웨스트항공 최고경영자(CEO)의 유명한 말이다. 무엇이 프랑스군을 움직이도록 했는가. 바로 문화다. 문화의 중요한 요소인 감정(emotion)은 밖을 의미하는 ‘이(e)’와 행동을 나타내는 ‘모션(motion)’이 합쳐진 것이다. 즉, 감정은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을 뜻한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나쁜 조직문화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사람은 논리적인 전략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최고로 감정을 일으키는 인간의 본성은 공감이다. 공감은 행동의 문을 여는 출발점이 되고, 인간공동체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에너지 원천이 된다.

경기가 나빠지면 경영이론의 혁명이 일어난다. 경기가 나쁠 때 비로소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미국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1970년 이후 기업들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실업률이 10%를 넘어섰다. 이때 우량기업을 통한 미국 재건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탠퍼드대의 리처드 파스케일 교수, 하버드대의 앤서니 애소스 교수와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의 톰 피터스 등이 모여 경기가 어려울 때도 성장하는 기업의 비밀을 찾아보고자 했다.

그때 발견한 이론이 기업을 움직이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사람이며, 초우량기업들은 시스템이나 전략 계획보다는 사람과 열정이 움직이는 가치공유의 문화를 가진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나라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전환기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2만달러(약 1218만~2436만원) 시대의 장비 투자를 바탕으로 한 투자주도 경제를 넘어 1인당 GDP 3만달러(약 3654만원) 시대의 혁신주도 경제로 전환되고 있다. 이때 기업경영은 전략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기업문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료주의적 기업문화 고쳐야

코로나19 사태는 관료주의(bureaucracy) 기업문화의 많은 약점을 노출했다. 수직적이고 룰에 의한 지배는 사람들의 대응을 느리고 소극적으로 만든다. 위기 때 위원회를 만들고 토론을 거친 다음 처방을 내놓는 관료주의 문화로는 새로운 문제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위기에서는 행동의 속도싸움이 중요하며, 위원회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많은 약점이 노출된 관료주의적 한국의 기업문화를 고쳐야 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기업 구성원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는 지시 위주의 관료제를 거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가치관이 전혀 다른 MZ 세대의 주류화는 지시와 복종의 관료주의 기업문화를 해결할 좋은 기회다.

개인의 창의와 아이디어를 억압하는 관료주의 문화를 버리고, 분권화, 자율, 팀 단위의 수평적 협업이 가능한 사람 중심주의(humanocracy)의 기업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사람 중심주의는 영국 런던대 경영대학원의 게리 하멜 교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관료주의를 대체해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안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업문화는 룰과 제도에 의한 지시적 관료적 문화가 아니라,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사람 중심주의 문화다. 직원들이 스스로 상상하게 하고, 새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자율적으로 혁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기업 리더들은 권위주의를 버리고, 위계적 계층을 버리고, 직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조직은 지금 ‘신세대’ ‘낀세대’ ‘센세대’ 등 3세대 간 3각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중 우리나라 인구의 36%를 차지하는 MZ 세대가 기업 구성원의 60% 이상으로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일방적 지시문화를 거부하고 있다. 관료적 근태를 중시하는 X 세대(1965~80년생) 지도자의 위기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와 MZ 세대의 등장은 우리나라 기업문화 전환의 좋은 기회다. 조직원들이 영감을 얻고,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사람 중심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전략보다 기업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기업가들의 사고 전환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