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기후 변화는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의 숙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나 속도와 관련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일례로 우리 정부는 최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보다 40%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6%까지 줄이고, 석탄 발전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석탄 발전(37%)과 원자력 발전(26%)은 현재 우리나라 전기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정부의 권고는 사실상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력 대란’이나 신재생 에너지 발전 등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또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나 지원책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반면, 기후·환경 단체 등에서는 이런 감축안이 기후 위기를 막기에 부족하며, 속도 역시 너무 느리다고 주장한다. 10월 31일(이하 현지시각)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각국은 NDC를 발표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요 20개국(G20) 중 중국을 포함한 절반이 아직 NDC를 내놓지 않았다. 특히 전 세계 온실가스 최다 배출국(2019년 기준 27%)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번 총회에 불참 의사를 밝혀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시 주석이 이번 총회에 불참해 NDC를 발표하지 않고 친환경 전환을 약속하지 않으면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 협약)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195개국은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연 제21차 총회에서 파리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낮추는 내용을 담았다.
이탈리아 디자인 업체 CRA(Carlo Ratti Associati)가 ‘헬싱키 에너지 챌린지’에서 발표한 ‘뜨거운 심장(Hot Heart)’ 프로젝트 이미지. 사진 CRA
이탈리아 디자인 업체 CRA(Carlo Ratti Associati)가 ‘헬싱키 에너지 챌린지’에서 발표한 ‘뜨거운 심장(Hot Heart)’ 프로젝트 이미지. 사진 CRA
카를로 라티 (Carlo Ratti) 미국 MIT 도시연구소 책임 연구원 ‘카를로 라티 어소시어티(CRA)’ 공동 설립자
카를로 라티 (Carlo Ratti)
미국 MIT 도시연구소 책임 연구원 ‘카를로 라티 어소시어티(CRA)’ 공동 설립자

기후 변화에 관한 많은 오해 중 하나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이 따뜻한 지역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극지방의 기후를 더 온화하고 쾌적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추운 기후의 북유럽 도시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4월 발표한 ⓛ ‘2021 에너지전환지수(ETI)’에 따르면 지속 가능성으로 전환을 주도하는 10개국 중 9개 국가가 북유럽에 속한다. 북유럽 도시들은 기동력이나 원자재 소비, 에너지 생산과 관련한 다양한 조치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자 경쟁하고 있다. 일례로 덴마크 코펜하겐은 2025년까지 최초의 ‘탄소 중립 도시’를, 스웨덴 스톡홀름은 2040년까지 ‘화석연료 없는 도시’를 목표로 한다.

특히 핀란드 헬싱키의 행보가 흥미롭다. 핀란드는 전후 국가 발전의 세 축(모든 시민의 평등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건강한 일과 생활의 균형을 기초로 한 경제 문화·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과 함께 지속 가능성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런 특성은 헬싱키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순위 상위권에 꾸준히 오를 수 있도록 했다.

1990년부터 2019년 사이 헬싱키 인구는 상당히 증가했지만, 탄소 배출량은 26%나 감소했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여전히 큰 문제가 남아 있다. 도시의 실내 난방 시스템이 석탄 화력 발전소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헬싱키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절반 이상이 실내 난방 시스템에서 나온다. 이에 헬싱키의 주요 정치 의제 중 하나는 2029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이나 정치인) 대부분은 화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문제는 화력 발전소를 대체할 난방 시스템이 아직 없었다는 점이다. 기술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도 없었다.

그러나 이 장애물은 헬싱키의 ② ‘문샷’으로 이어졌다. 2020년 2월, 얀 파파아부오리 당시 헬싱키 시장은 ‘헬싱키 에너지 챌린지’를 시작했다. 헬싱키 에너지 챌린지는 녹색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기술 제안 등을 받는 국제 대회다. 불과 몇 달 만에 250팀 이상이 아이디어를 제출했고, 올해 초 필자가 속한 팀을 포함해 4개 팀이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모든 수상작은 (기후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이나 ‘마술 지팡이’가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③ 우리 팀의 프로젝트는 도시의 지역난방 시스템에 활용할 열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물 위에 떠다니는 ‘섬’을 제안했다. 풍력이나 태양열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만든 열에너지를 ‘섬’에 저장하고 필요시 도시 난방 시스템에 활용하는 것이다. 곧 섬이 도시의 커다란 배터리가 되는 셈이다.


CRA의 ‘뜨거운 심장’ 프로젝트에서 지붕을 씌운 일부 ‘섬’을 공원으로 조성한 모습. 사진 CRA
CRA의 ‘뜨거운 심장’ 프로젝트에서 지붕을 씌운 일부 ‘섬’을 공원으로 조성한 모습. 사진 CRA

헬싱키의 에너지 챌린지는 전 세계 국가에 교훈을 준다. 첫 번째,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을 때 경쟁과 화합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헬싱키는 에너지 챌린지를 통해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비전을 모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혁신을 구체화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통상 정부는 기후 위기 해결 방안을 찾을 때 모범 사례를 기반으로 입증된 결과가 있는 프로젝트나 정책을 살핀다. 실패 위험을 줄이고 세금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후 위기는 시급한 문제인 만큼 더 과감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헬싱키의 혁신을 이끈 것도 모범 사례의 부재(不在)였다. 선행 사례라는 제한이 없어 오히려 더 창의적인 방안을 고안해 낸 것이다. 헬싱키는 혁신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단계를 설계했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만하다. 앞으로 많은 도시가 더 과감한 기후 정책을 추구하면서 헬싱키의 ‘문샷’을 따를 것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세계경제포럼(WEF)이 2015년부터 매년 발표하는 에너지전환지수(ETI)는 세계 각국의 에너지 시스템 및 에너지전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다. 평가 기준은 크게 환경적 지속 가능성, 에너지 안보·접근성, 경제발전·성장 등을 보는 ‘시스템 성과(system performance)’와 에너지 시스템 구조, 자본·투자, 법규·정치공약, 제도·거버넌스, 인프라·혁신 비즈니스 환경, 인적 자본·소비자 참여 등을 반영하는 ‘에너지전환 준비도(Transition Readiness Scores)’ 두 가지다. 올해 평가 대상 총 115개국 중 ETI 상위 10개국 대부분에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가 올랐다. 1위는 4년 연속 스웨덴이 차지했고,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각각 2위, 3위, 스위스(4위), 오스트리아(5위), 핀란드(6위), 영국(7위), 뉴질랜드(8위), 프랑스(9위), 아이슬란드(10위) 순이다. 한국은 49위에 올랐다.

‘문샷(moonshot)’은 달을 연구하기 위해 망원경을 고치기보다 달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처럼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특히 이런 혁신적 사고를 뜻하는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은 구글, 테슬라, 페이스북, 아마존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의 기본 정신이다. 일례로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는(CEO)는 지난해 새로운 ‘문샷 프로젝트’로 2030년까지 회사의 모든 데이터센터와 사무실을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로만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자 카를로 라티가 공동 설립한 이탈리아 디자인 업체 CRA(Carlo Ratti Associati)가 헬싱키 에너지 챌린지에서 발표한 ‘뜨거운 심장(Hot Heart)’ 프로젝트. 물에 떠다니는 원형의 ‘섬’에 풍력이나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데운 따뜻한 해수를 저장하고, 이 열에너지를 도시의 난방 시스템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부 섬에는 투명한 지붕을 설치해 열대 식물과 온수 풀장 등을 조성한 공원으로 만들어 관광지로도 활용할 수 있다. CRA는 이를 통해 10년 후 지금보다 10%가량 저렴한 비용으로 6000GWh(기가와트) 수준의 난방 전력 수요를 감당할 것으로 추산한다.

카를로 라티

정리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 김혜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