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분야 투자자는 단순히 바이오 파이프라인의 절대 개수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적응증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사진 셔터스톡
바이오 분야 투자자는 단순히 바이오 파이프라인의 절대 개수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적응증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사진 셔터스톡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과대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서울대 의과대 박사, 전 텍사스 주립대 휴스턴 MD 앤더슨 암센터 암생물학부 암전이 및 임상이행연구센터 교수

바이오산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 용어 가운데 ‘파이프라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투자자가, 특히 바이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이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용어가 낯설 뿐 아니라, 파이프라인의 개발 상황 등 다른 변수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산업에선 연구실에서 연구개발(R&D) 중인 신약 제품군을 파이프라인이라 부른다. 우선 파이프라인의 어원을 통해 의미를 살펴보자. 파이프라인은 1868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에서 기름을 운송하기 위해 약 10㎞의 목관을 부설한 데서 유래한 석유, 천연가스 등의 유체를 운반하는 관로(管路) 또는 송유관(送油管)을 지칭한다.

종합해보면 무엇인가 연속적인 개발 과정에 포함된 물질과 진행 상황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특히 물질들의 확보와 개발이 끊김 없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진행된다는 어감이 강하다.

‘투자를 해야 할까. 한다면 얼마를 해야 할까. 내가 기대하는 수익을 거두려면 얼마를 투자하고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등 여러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회사의 정당하고 올바른 가치를 추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파이프라인에 표시된 많은 내용을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회사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까.


치료 효과 기대되는 병을 먼저 평가해야

많은 사람이 첫째로 물질을 봐야 한다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적응증(의약품이나 수술로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병이나 증상)’을 우선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과거와 달리 표적을 설정하고 물질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개념과 시간표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고전적인 방법이 건재하고 개발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최소화해 쓰이고 있지만, 새로운 알고리즘이 장착된 빅데이터를 이용한 신물질 발굴 등으로 후보 물질 발굴의 조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표적이 정해지면 긴 시간 동안 수천만 개의 물질이 들어 있는 물질의 방대한 자료 속에서 탐색 과정의 시행착오와 최적화 과정을 거쳐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데 걸리던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바이오 신약 개발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사고방식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 물질의 독점성이나 배타성이 많이 축소됐다.

다만 물질을 확보한 이후의 연구자들에 의한 개발 과정은 아직 변하지 않았고, 물질의 특성에 기반한 적응증 등 올바른 TPP(Target Product Profile·목표 제품 특성)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올바르지 않은 TPP를 기반으로 임상시험을 시도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최적화된 사용법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빛나는 재능을 갖고 피땀 흘린 노력을 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키워주는 감독을 만나지 못해서 매일 유망주 소리만 듣다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은퇴하는 불운한 운동선수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많은 바이오벤처가 병원의 환자 데이터를 특정 형태로 전환해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AI(인공지능)를 이용해 여러 가지 질병의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작업에 도전하고 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질의 임상적 유효성이 있는지, 실용화와 상용화가 가능한 것인지, 시장성이 있는지 등등을 선택된 적응증을 통해서 예측할 수 있다.


파이프라인 수량 절대 지표 될 수 없어

다음이 파이프라인의 개수다. 파이프라인의 수량이 산술적으로 회사의 가치로 반영되지 않는다. 즉, 파이프라인이 2개인 회사의 가치보다 10개인 회사의 가치가 5배가 되지 않는 이치다. 파이프라인의 수를 따지는 것은 특허의 개수를 헤아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 제한된 자금과 인력을 가진 바이오벤처가 한두 개 물질의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신약 개발의 낮은 성공률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많은 수의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파이프라인의 물질 수와 적응증의 수가 같은 경우를 보자. 간혹 한 가지의 물질에 다른 이름을 붙여, 여러 적응증을 겨냥한 신약으로 개발하고 있는 회사가 있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각각 다른 물질을 서로 다른 적응증을 타깃으로 개발하고 있다면 적어도 물질의 특성과 그에 따른 임상적 유효성에 신뢰가 간다. 개발 타임라인과 개발비에 여유가 있다면 추천해 주고 싶은 가장 안정적인 개발 전략이다. 물론 바이오산업의 특성상 높은 실패율은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한두 가지 물질로 여러 가지의 적응증과 관련된 개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만병통치약을 개발하나’ 하는 선입견으로 무조건 개발 주체를 신뢰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한가지 물질이 여러 표적을 제어하는 가능성이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질병이 동일한 기전에 의해 유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를 검증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다. 물질에 의해 제어된다고 홍보하는 표적들을 살펴보면 어떤 독성이 나올지 예측이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발표하는 데이터와 함께 살펴보면 여러 가지 표적을 제어하는 물질의 실용화, 상용화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과연 실제 환자에게 투여해 충분한 효능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다.

여러 가지 표적을 동시에 제어할 경우 물질에 의해서 유발되는 독성도 많은 경우에 증가한다는 원리를 잊지 말자. 또한 적응증이 되는 질환에 대한 데이터는 일반인도 쉽게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이미 생물학적인 이질성에 의해서 동일한 질병도 표적 치료제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해당 적응증에 대해 동일하거나 유사한 표적을 제어하는 물질을 이용한 신약 개발 역사나 그 결과를 검색해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구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파이프라인에 있는 물질의 수에 대한 판단은 ‘소수의 똘똘한 정예부대’를 앞세운 개발 전략의 선택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위에 열거했듯이 다양한 경험이나 전문 지식 혹은 부지런한 정보 수집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이프라인 개발 타임라인도 고려해야

파이프라인의 개발 타임라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투자금을 정해진 시간에 회수해야 하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소규모의 투자사나 빨리 수익을 내고 싶은 개인투자가들일수록 바이오 회사들이 갖고 있는 파이프라인에서 유독 개발 단계를 강조하는 경우를 보곤 한다. 특히 투자사의 경우 무리한 요구로 바이오 회사의 가치 자체를 훼손시키는 경우가 있다. 상장이나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요건을 맞추자는 것인데 이는 진정으로 신약 개발을 기원하는 자세가 아니며 특히 이 점을 투자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불완전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무리하게 다음 개발 단계로 넘어가거나 기술 수출을 한 결과가 어떤지는 충분히 학습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모든 물질의 개발 진행 상황이나 기술 수출 등의 성과를 색안경을 쓰고 봐서는 절대 안 된다. 일단 물질의 가치를 현재의 개발 단계, 즉 발굴, 전임상, 임상 단계에 따라 다르게, 특히 임상 단계에 근접할수록, 임상 승인 단계에 근접할수록 높게 평가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일종의 왜곡된 선입견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개발의 각 단계를 완료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이 분야에서 꽤 짧지 않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필자도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얼마 전 해석에 골머리를 앓던 데이터를 퇴근 준비를 위해 가방을 꾸리다가 해석하고 혼자 웃었던 경험이 있다. 무리하지 않고 제대로 된 개발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면 파이프라인에 올라 있는 물질의 개발 단계 자체는 개발의 시계를 가리키는 절대 가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