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면서 글로벌 기관투자자와 연기금 등이 ESG 투자에 관심을 두고 있다. ESG 투자를 위해서는 각 기업이 ESG 관련 내용을 공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지속가능 보고 기준(ESG 공시 기준)’은 아직 국제적으로 통일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투자자와 기업을 중심으로 재무 회계 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처럼 국제 사회에서 통일된 공시 기준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지속가능 보고 기준이란 기존 재무보고와 달리 기업에 영향을 주는 기후·환경 등 비(非)재무적 공시 기준을 말한다. 이런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IFRS재단은 별도 기구인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11월 3일(이하 현지시각) 영국에서 출범시켰다. ISSB는 IFRS재단 산하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와 함께 자리한다. 앞으로 ISSB는 2022년 6월까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ESG 기준 제정에 나서게 된다. 먼저 기후변화 관련한 기준 제정에 매진할 예정이다. ISSB가 국제 단위의 ESG 공시 기준을 제정하게 되면 국제 사회에서 ISSB의 기준이 ESG 공시 기준을 주도할 전망이다. 그간 통일된 ESG 공시 기준이 없어 기업 등은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CFD)와 미국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 등 여러 비재무적 공시 기준을 이용해왔다. 그러나 체계성이 부족해 국제 기준으로 통용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 국제 사회에서 쓰이는 재무 공시 기준을 제정한 IFRS재단이 ISSB를 중심으로 ESG 공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합의도 돼 있었다. 한국도 ISSB 기준을 도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COP26 의장이 11월 13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회의를 마친 후 일어나고 있다. 사진 AP연합
COP26 의장이 11월 13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회의를 마친 후 일어나고 있다. 사진 AP연합
루크레치아 레이클린 런던경영대학원 경제학 교수현 IFRS재단 이사 및 IFRS재단 지속가능성기준 추진위원회 위원장, 전 유럽중앙은행 연구부장
루크레치아 레이클린 런던경영대학원 경제학 교수
현 IFRS재단 이사 및 IFRS재단 지속가능성기준 추진위원회 위원장, 전 유럽중앙은행 연구부장

올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①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민간으로 확실히 옮겼다. 각국 정부가 이해관계 조율에 실패하고 집단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민간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가. 이는 탄소 배출량 감축 등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자본시장이 가진 잠재력을 묻는 것이다. 금융자본이 부족한 건 문제가 아니다. ②  마크 카니 현 유엔(UN) 기후변화 특사는 COP26에서 ‘넷 제로(온실가스 순 배출량 ‘0’)’를 목표로 130조달러(약 15경3595조원) 규모의 자본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 엄청난 계획은 ‘탄소 중립을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으로 현실화했다. 카니가 이끄는 GFANZ는 전 세계 자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450개 금융 기관이 참여한 연합체다.

이런 재정 지원에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우선 그 많은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또 이번 자본 투입으로 얻은 이익이 소비자, 노동자, 투자자를 아우르는 전 세계인에게 적절하고 공평하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 우리는 COP26에서 발전된 논의에 주목해야 한다. 얼키 리카넨 IFRS재단 이사장은 11월 3일 COP26 회의에서 ISSB 설립을 발표했다. 현재 ISSB는 다른 무엇보다 기후변화 위기 관련 공시 기준 제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측정할 수 있어야 관리할 수 있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국제 회계 기준이 기후변화 위기 시대에 맞춰 측정 가능한 기후 관련 공시 기준을 제정하려는 큰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이미 IFRS재단은 140여 개국에서 쓰이는 회계 기준을 제정한 바 있다. IFRS 회계기준은 각국 회계 기준의 기초가 됐고 세계 자본시장의 ‘링구아 프랑카(만국 공용 기준)’가 됐다. IFRS 기준이 자리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기준이 분명할수록 정보의 투명성과 비교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IFRS 기준은 애널리스트, 회계사, 투자자, 채권자와 규제 기관, 기업 경영진에게 환영받았다. 자본시장 세계화에는 이런 통일된 공시 기준이 필수지만 아직 기후변화 위기 관련 기준은 제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ISSB, 통일된 기후 위기 기준 제공 예정

기업은 환경 파괴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기업은 갈수록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체감하면서도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정부 규제 영향도 받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기후변화 위기를 유발하는 요인과 관련한 통일된 국제 기준이 없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비용이나 기업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이는 금융 분야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기후 정책 등은 위험이 따르지만 일관적, 포괄적 공시 기준이 따로 없으면 위험을 측정할 방도가 없다. 그사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ISSB는 이런 배경에서 출범했다. IFRS재단은 처음부터 국제적이며 복잡한 지표를 다루는 통일된 기준을 제공하는 원대한 업무를 맡고 있다. 물론 기후 관련 위험 요소를 측정하는 건 단순한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IFRS재단 외 다른 대안이 없기도 하다. 특히 기존 회계 공시 기준이 오랜 시간 발전하며 자리를 잡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ISSB 출범으로 희망이 생겼다. ISSB는 향후 기후변화 위험과 관련해 기업이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투자자는 전 세계 기업의 기후 위기 관련 위험 요소를 비교할 수 있다. ISSB 공시 기준은 특정 국가에서만 시행되는 권위적인 공공 정책과는 다르다. ISSB 공시 기준 핵심에 각국의 특정 목표나 정책이 요구하는 새로운 사항이 추가될 수는 있어도 전혀 다른 공시 체계로 변질되지는 않을 것이다.

거버넌스(지배 구조) 또한 ISSB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IFRS재단은 재무적 회계 기준을 제정했던 과거 경험을 통해 과도한 하향식 지시가 결국 회계 기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IFRS재단이 전 세계 자본시장 당국 대표로 구성된 감시위원회, 독립 수탁위원회, 독립 기준 제정기구인 IASB로 구성된 3단계 지배체계를 구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회계 기준 수립 기관과 다국적 기업, 민간 기업 등도 몇몇 자문위원회를 통해 기준 제정 과정에 참여했다.

ISSB는 IFRS재단의 폭넓은 접근법을 그대로 가져와, IASB의 자매 이사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리고 IFRS재단은 각국의 기준 채택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 등 새로운 기관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ISSB의 거점 국가 또한 다양해질 전망이다.

ISSB 출범은 하향식과 상향식 접근을 새롭게 혼합한 것으로, 다양한 조직과 개인이 융합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다수가 자본시장 지속가능성 기준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전부터 기존 틀을 깨는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다. 가치보고재단과 기후정보공개표준화위원회 등 기관은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의 첫 개념을 완성하고 부분적으로 기업이 이 기준을 채택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기후 관련 금융공시 태스크포스(TF)와 세계경제포럼(WEF)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노력이 효과를 거뒀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여러 표준과 측정 기준들이 생겨나면서 기업이 혼란스러워하거나 ③ ‘그린 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로 통일된 기준으로 목표를 결합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기관의 하향식 접근이 필요하다. IFRS재단이 국제 회계 공시 기준 제정에 뛰어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감독 당국, 국제 기구와 정부는 IFRS재단에 이런 기존 역할을 수행하도록 권장했다. 이로 인해 ISSB 출범은 실용적으로 상향식과 하향식 접근이 합쳐진 주도권 아래 가능했다. 앞으로도 공익을 전달하기 위한 전 세계의 광범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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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10월 31일부터 11월 13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다. COP26에는 197개 당사국 정부대표단을 포함해 4만여 명이 참석했다. COP26 대표 결정문으로 ‘글래스고 기후합의’가 선언됐으며, 탄소저감장치가 없는 석탄 발전소의 단계적인 감축과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촉구하는 문구가 들어갔다. 다만 중국과 인도 등이 저항해 석탄 발전 문구가 ‘중단’에서 ‘감축’으로 바뀌었다. 또 각국은 2022년에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지구 온도 1.5도 이내 상승 억제에 맞게 다시 내기로 했다. 또 ‘파리협정 세부이행규칙’도 완성돼, 내년부터 국제 탄소시장이 본격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전 영란은행(BOE·영국 중앙은행) 총재이자 경제학자. 현재 GFANZ 의장과 브룩필드 자산운용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글로벌 금융시장 네크워크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2015년부터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 리스크(위험)를 경고했다. 최근 자신의 저서 ‘가치(Value)’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계기로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평했다.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 녹색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세탁을 뜻하는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의 합성어다. 기업이 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를 축소하고 재활용 등 일부 친환경 과정만 부각해 마치 친환경적인 기업인 것처럼 포장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