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을 계속 괴짜 도시로 유지하자(Keep Austin weird).’ 공식 슬로건보다 더 알려진 이 비공식 슬로건은 지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오스틴을 계속 괴짜 도시로 유지하자(Keep Austin weird).’ 공식 슬로건보다 더 알려진 이 비공식 슬로건은 지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우리는 ‘차별화’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다. 어떻게든 튀기만 하면 차별화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다르면 차별화된다고 믿기도 한다. 정치 분야에서 차별화는 조금 더 무식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전임자를 깎아내리거나 상대를 때리고 나서 차별화라는 말로 포장하기도 한다.

브랜딩에서 차별화는 단어 찾기 싸움이다. 잘 안 쓰는 말, 잘 모르는 단어를 선점하는 것을 으레 차별화라고 여기는 셈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거의 없다. 그래서 차별화는 ‘다른 것’이 아니라 ‘달라 보이는 것’이 돼야 한다.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특이함만을 추구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할 때 우리만의 차별적인 키워드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개념어나 특이한 단어만을 찾아 쓰면 오히려 단어의 생소함만 부각될 뿐이다. 즉,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게 된다.

발견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이다. 관점에 변화를 주는 것에서 차별성을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도 모르는 개념어를 쓰는 것보다는 익숙한 단어를 재해석할 때, 효과는 더 크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단어’를 역설적(逆說的)으로 전달했을 때 재해석으로 인한 차별화가 극대화된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선거판에서 ‘대쪽’ ‘정통성’ 등 단어가 난무했을 때 ‘바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우직함과 끈기’로 재해석한 ‘바보 노무현’이다.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비슷한 브랜딩 사례도 있다. 10여 년 전 이탈리아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디젤(Diesel)이 전개했던 유명한 브랜드 캠페인, ‘비 스투피드(Be Stupid)–바보가 되라’다. 바보는 ‘멍청하고 덜 떨어졌다’는 부정적 의미가 있는 단어다. 하지만 디젤은 ‘창조적, 낙관적, 도전적, 과감한’의 의미로 바보를 재해석했다. 메시지를 스투피드(stupid·멍청한)와 스마트(smart·똑똑한)로 대비해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디젤은 “바보는 모든 원초적이고 꾸밈없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라며 “바보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있고 아무리 위험해도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받아들인다”고 주장했다. 이런 디젤의 재해석을 보고 나면 오히려 스마트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어의 재해석, 관점의 변화를 통해 디젤은 젊고, 도전적이며 혁신적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이탈리아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디젤은 ‘비 스투피드(Be Stupid)’라는 유명한 브랜드 캠페인을 전개했다. 사진 디젤
이탈리아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디젤은 ‘비 스투피드(Be Stupid)’라는 유명한 브랜드 캠페인을 전개했다. 사진 디젤

괴짜 도시, 그리고 ‘킵 오스틴 위어드’

미국 텍사스주(州)의 오스틴은 지역성이 강한 도시다. 오스틴 공식 도시 슬로건은 ‘전 세계 라이브 음악의 수도(라이브 뮤직 캐피털 오브 더 월드·Live Music Capital of the World)’다. 그러나 오스틴에는 공식 슬로건보다 더 유명한 도시 슬로건이 있다.

‘오스틴을 계속 괴짜 도시로 유지하자(킵 오스틴 위어드·Keep Austin weird).’ 공식 슬로건보다 더 알려진 이 비공식 슬로건은 지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위어드(weird)’는 ‘이상한, 괴상한’의 의미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비정상을 뜻하기도 한다. 오스틴은 위어드라는 단어를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그래서 창의적인’의 의미로 재해석했다.

이런 재해석은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이는 지역성이 강한 오스틴의 역사와 맥이 닿아 있다. 오스틴은 히피 문화를 지역성으로 갖고 있다. 히피 문화는 1980년대 미국 생태주의 운동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원래 히피 문화는 주류 문화에 저항하고 자연 친화적인 대안적 삶을 추구했다. 1960년대의 히피 문화는 섹스와 마약 등 부정적이고 괴팍한 이미지로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과격함은 줄어들었고, 히피 문화도 주류 문화에 반항적인 미국 젊은층의 생활 문화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계획도시로 출발한 오스틴은 여러 대학이 모여 있어 대학생과 이민자가 주요 도시 구성원이다. 자연스럽게 히피 문화도 오스틴 곳곳에 퍼져 나갔다. 미국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모이는 젊은층과 텍사스 특유의 독립적인 성향이 만나 히피 문화는 오스틴을 규정하는 독특한 정체성의 일부가 됐다. 시작은 이랬다. 2000년, 오스틴 지역 라디오 방송에 “시에 기부하겠다”는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이는 지역 대학 사서로 일하는 레드 워세니치(Red Wassenich)였다. 라디오 진행자가 그에게 왜 돈을 기부하냐고 묻자 “오스틴을 괴짜 도시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이 이야기는 곧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워세니치는 책도 펴냈다. 책 제목도 ‘오스틴을 계속 괴짜 도시로(Keeping Austin weird)’였다. 그는 범퍼 스티커를 만들어 뿌렸고 2020년 사망할 때까지 웹사이트 ‘킵오스틴위어드닷컴(keep-austinweird.com)’을 운영했다.


2003년에는 오리건주의 포틀랜드가 오스틴의 비공식 슬로건 ‘킵 오스틴 위어드’를 자기 지역에 맞춰 쓰기 시작했다. 사진 셔터스톡
2003년에는 오리건주의 포틀랜드가 오스틴의 비공식 슬로건 ‘킵 오스틴 위어드’를 자기 지역에 맞춰 쓰기 시작했다. 사진 셔터스톡

다른 도시로도 퍼져 나간 ‘킵 위어드’

오스틴 주민은 타인에게 개방적이고 다름에 관대한 도시, 히피 문화를 받아들인 괴짜가 많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워세니치가 펴낸 책의 소제목이 ‘지역의 이상한 곳 안내서(A Guide to the Odd Side of Town)’인 것도 그런 이유다.

당시 워세니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뜻밖에도 지역 소상공인이었다. 지역색이 강한 소규모 자영업자가 많은 오스틴은 월마트 같은 대기업에 의해 지역 산업이 위축되는 것에 반발심이 컸다. 소상공인과 시민들은 킵 오스틴 위어드를 ‘우리 지역 물건을 사자(Buy Local)’나 ‘지역 비즈니스를 돕자(Support Local Business)’와 같은 태그 라인과 결합해서 쓰기 시작했다. 지역문화를 지키고 대기업에 대항하는 무기처럼 킵 오스틴 위어드 슬로건을 활용했던 것이다.

텍사스는 법인세가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낮게 책정돼 있다. 주 차원에서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고 최고 1%의 영업세(fran-chise tax)만 물릴 뿐이다. 이로 인해 높은 임대료와 세금에 시달리던 대기업이 앞다투어 텍사스로 이전했다. 실제로 오스틴은 테슬라, 스페이스X, 메타, 구글, 삼성, 아마존, 오라클 등 주요 대기업이 이전해오면서 차세대 실리콘밸리인 ‘실리콘 힐스’로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이 들어오자 오스틴 시민은 대기업을 히피 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오스틴 정체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여겼다. 그렇기에 계속 오스틴을 괴짜 도시로 유지하자는 슬로건은 지역민에게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오스틴 도시 슬로건은 타지역으로도 퍼져가기 시작했다. 지역성을 지키고 지역 소상공인에게 힘을 싣자는 취지에 동감하는 다른 도시도 이 슬로건을 앞다퉈 차용했다. 2003년에는 오리건주의 포틀랜드가, 2005년에는 켄터키주의 루이빌이, 2013년에는 인디애나주의 인디애나폴리스가 이 슬로건을 자기 지역에 맞춰 쓰기 시작했다. 이 도시들이 모두 좋은 의미의 괴짜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