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정감사에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가 부패방지경영시스템(ISO 37001) 인증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즉, 제약회사가 불법 리베이트 제공 관행을 척결하려는 의지 없이 단순히 제재처분이나 형사처벌의 수위를 낮추고 대외적인 이미지를 쇄신할 목적에서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적발돼 행정처분이 이뤄진 35건 중 22건(62.8%)이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은 제약회사에 의해 인증 전후로 이뤄졌다.
제약회사는 이런 지적이 억울할 수 있다. 불법 리베이트 제공에 따른 행정처분은 리베이트 제공 시점으로부터 상당 기간이 지난 후 적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관련 형사판결이 선고된 이후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행정처분 시점과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또는 갱신) 시점을 단순 비교해 제약회사가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악용하고 있다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약일 수 있다. 실제로 불법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적발된 제약회사 중 잘못된 영업 관행을 철폐하기 위한 자구 노력으로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도입한 회사가 적지 않다.
여하튼 분명한 사실은 최근 제약업계에서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받는 것이 활성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은 제약회사는 55개사에 달한다. 이와 같은 추세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맞물려 있다.
ESG 경영과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
ESG 경영이란 투자자의 관점에서 기업 경영의 비재무적 요소, 즉 환경∙사회∙거버넌스를 평가해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거버넌스 측면에서 법의 준수와 내부 통제 시스템의 마련은 ESG 경영의 핵심적인 사항이다. 법 위반 행위가 당장에는 기업의 매출 또는 영업이익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 기업이 종국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비용이나 위험을 감안한다면, 법의 준수와 내부 통제 시스템 마련은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서 기업의 이윤 극대화라는 본질적인 목적에 부합한다.
부패방지경영시스템이란 ‘국제표준화기구’가 규모와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조직 내에 적용될 수 있도록 기획 및 설계한 글로벌 수준의 반부패 모범 규준이다. ISO 37001은 조직의 상황을 토대로 부패방지경영시스템을 기획하면서 리더십과 의지를 분명히 하고, 그 운용 및 지원 결과를 평가해 개선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됐다.
부패방지경영시스템 도입은 그 자체로 대내외 이해관계자들에게 조직이 글로벌 기준에 따라 강력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 신뢰를 주고, 부패로 발생할 수 있는 경영상 리스크를 예방하며, 반부패 문화가 조직 내 확산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처럼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은 해당 기업이 부패와 관련한 비재무적 요소를 평가하고 그 위험을 관리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ESG 평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받는 제약회사가 늘어나고 있고 각 제약회사가 이를 ESG 경영의 홍보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제약회사가 더 이상 불법적인 리베이트 제공 행위를 단순히 매출 증대를 위한 불가피한 영업 관행으로 인식하지 않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협하는 주된 위험 요소로 관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제약회사가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다.
리베이트 관련 규제 강화와 ESG 경영의 필요성
약사법 제47조 제2항은 의약품 공급자(의약품의 품목 허가를 받은 자, 수입자 또는 의약품 도매상)가 의약품의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의료인 등에게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적으로 견본품 제공 등의 행위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리베이트 제공 금지 의무를 위반할 경우, 제약회사는 판매 업무 정지 등의 제재처분(1차 3개월, 2차 6개월, 3차 품목 허가 취소)을 받게 된다(약사법 제76조 제1항 제5의 7호 등). 또 그 행위자는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고, 제약회사에 대해서도 양벌규정이 적용되어 원칙적으로 벌금이 부과된다(약사법 제94조 제1항 제5의 2호, 제97조).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이 보건소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 등 제반 사정에 따라서는 형법상 뇌물공여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의율(擬律⋅법원이 법규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일)될 수도 있다(형법 제133조 제1항 등).
또 리베이트 관련 의약품이 국민건강보험 요양 급여 대상인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약제 상한금액 감액처분(1차 20% 한도 감액, 2차 40% 한도 감액, 3차 이상 요양 급여 적용 정지) 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의 2 등).
사안에 따라서는 혁신형 제약기업인 경우에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취소 사유가 되기도 하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부당한 고객 유인 행위로 판단돼 과징금 부과처분 및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리베이트 자금 조성 행위나 비용 처리와 관련해서도 업무상횡령, 조세범처벌법 위반 등 형사처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법인세 추징, 소득처분 등 세법상 문제가 파생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약사법 개정에 따라 의약품 공급자의 경제적 이익 등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 작성∙보관∙제출∙공개 의무가 도입되고, 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출보고서 실태조사 및 결과 공표 권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한편, 종래 의약품 공급자로부터 의약품 판매 촉진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던 CSO(영업전문 대행 업체)의 리베이트 제공 금지 의무 및 지출보고서 관련 의무가 명시됐다(약사법 제47조, 제47조의 2).
이처럼 불법적인 리베이트 제공 행위의 적발에 따라 제약회사가 부담하게 되는 비용과 위험이 날로 커지고 있고, 그 적발이 용이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불법적인 리베이트 제공 행위는 더 이상 불가피한 업무 관행으로 용인되기 힘들다. 제약회사는 ESG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그 위험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된 제약회사는 이런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게 되는데, 최근 이들이 적극적으로 부패방지경영시스템 인증을 받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 결과로 봐야 한다.
구조적 문제와 법경제학적 접근의 필요
제약회사들의 인식 전환과 ESG 경영을 위한 노력에도 불법적인 리베이트 제공 행위가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 데에는 제네릭 약제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품질은 비슷하고 약값은 동일한 제네릭이 난립하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영업사원들이 차별화된 판매 전략을 마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불법적인 리베이트 제공의 유인이 된다. 지난 10여 년간 리베이트 관련 규제를 계속 강화했음에도 그 성과에 한계가 있었던 이유다.
따라서 불법적인 리베이트 제공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리베이트 관련 규제의 강화, 제약회사들의 인식 전환과 함께 제도적인 유인 설계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즉, 제네릭 난립을 방지하고 가격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환자의 의약품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실거래가 상환제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제네릭 난립 방지 방안의 마련, 의약품의 성분 처방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인 자세로 수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약사법 개정으로 생물학적 동등성 자료, 임상시험 자료의 사용 동의 횟수를 3회 이하로 제한한 것도 제네릭 난립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볼 수 있으나, 의약품 판매촉진을 위해 리베이트를 제공할 유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